발악하는 매미 소리와 함께 아침 9시가 좀 넘은 시간인데 간밤에 끌어올린 수은주에 더하기만 하였는지 새벽에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내 서재에 있는 선풍기마저 어제 밤늦게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네 가족이 사용하고 있어 가져왔으면 하면서도 어린 손녀들이 있어 마음을 접어야 했다. 너무 더워서일까? 아침 6시가 좀 못되어 평소에 아침 목욕탕에 가지 않은 아내가 오늘따라 목욕탕에 간다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 7시가 넘어 시어머님 생신상을 차리고 밥을 하겠다며 며늘아기가 쌀 있는 곳을 묻는다. 오랜만에 미역국도 끓여 놓고 기다려도 오시지 않으니 전화를 해보려 한다. 아니다. 좀 더 기다려 보렴. 기다려도 올 때가 지났는데 오지 않아 휴대폰으로 문자를 넣어둔다. 혹시 간밤에 잠을 설치더니 목욕탕에서 잠이 들었을까? 갖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사실은 우리 집에는 1남 2녀를 올해 5월까지 막내를 출가시키고 우리 내외만 살기 때문에 우리가 잠을 자는 큰방에만 에어컨을 설치해 두었다. 올해 들어 유례없는 무더위에 가정용 전기의 누진세 때문에 에어컨을 대부분 장식용처럼 달아두고 쓰지를 못하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각종 매스컴에 가정용 전기의 누진세를 손질해야 한다고 정치권 안팎으로 시끄럽다. 우리 집 역시 누진세 요금 폭탄 문제로 거의 에어컨을 별로 사용을 못 하는 처지다. 그런데 어린 손녀들까지 딸린 아들 내외가 미안스러워 간밤에 잠시 틀었다가 꺼버렸다. 아내가 이불을 덮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한두 시간 후 더위를 감지하고 에어컨을 틀었다. 아내는 추위와 더위에 민감하지만 나는 무척 추위를 못 타는 서로가 양극 형이다. 간밤에 나는 밤잠을 설치며 에어컨 작동에 신경을 썼다.

어제 밤늦게 서울에서 내려온 후 자정이 좀 못되어 아들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는 새벽 3시가 좀 넘어 들어 왔는데 술을 많이 먹었는지 위통도 벗어던지고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새벽 4시경 거실로 나와 아들에게 홑이불로 배만 덮어주고 창문을 열어젖히고 큰방 에어컨을 꺼버렸다. 열대야도 그치고 시원해진 것 같아서였다. 그랬더니 아내가 버럭 신경질을 부린다. 좀 더 틀어두지 에어컨을 꺼 버렸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다가 평소에 가지 않은 아침 시간 때 목욕탕을 가버린 아내에게 가뜩이나 신경이 쓰인다. 오늘 아침이 아내의 생일이 아니라면 좀 더 신경이 덜 쓰일 텐데 말이다. 그 후 세 시간이 지난 아침 9시가 되어서야 아내가 돌아온다.

아침에 목욕탕을 가지 않은 사람이 웬일로 갔냐며 묻고 싶지만, 꾹 참고 눈치만 살핀다. 늦게 오면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표정이다. 하얀 쌀밥에 오랜만에 며늘아기가 끓여놓은 미역국이 올라온 시어머니 생일상이다. 평소에 한 번도 밥을 하려는 생각이 없는 며늘아기 다른 음식을 모두 준비해두고 겨우 밥과 미역국만 끓여준 생일상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내색을 전혀 하지 않은 속 넓은 시어머니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며늘아기의 속내가 답답하다. 엄마의 생일이라며 아들딸이 이때를 휴가 겸 맞춘 탓으로 시어머니가 다 준비해둔 휴가준비를 차에 싣고 휴가 겸 길을 나선다. 아들이 예약해둔 휴가지는 광주에서 한 시간 좀 더 걸리는 강진 바닷가에 있는 원래 야구 야외 연습장이었다. 이곳은 애들이 물놀이할 수 있는 수영장과 야구부 선수들이 사용했던 숙박소가 인테리어를 마치고 관광객이 사용하기 좋게 해놓은 전망 좋은 바닷가 풍경이 여름철 사용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외할머니와 함께 가겠다며 목이 쉬도록 밤새 울었다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큰딸 내의 재롱둥이 외 손주만 오게 하여 태우고 막내딸 내외와 2대의 승용차는 강진을 향에 11시경 집을 나섰다. 무더위에 지친 초록색 가로수들이 누르스름하게 퇴색됨이 비라도 좀 왔으면 하는 무더위 속 아쉬움이다. 대체로 양수시설이 잘된 들판에 벼는 어떤 곳은 벌써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고개를 숙인 곳이 눈에 띈다.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편도 2차로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막힘 없는 질주에 한 시간이 좀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일정에 맞춰진 아내의 생일 겸 하게 휴가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시간 들이여야 할 텐데. 크나큰 두 개의 방이 딸린 예약된 방에는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진 일정을 분위기 조성도 겸해 처제 내외까지 함께하기 위해 초청하니 그곳으로 도착하였다. 좀 늦은 저녁에야 시댁 식구와 휴가 중이던 큰딸 내외도 도착하여 생일잔치가 시작되어 딸들이 준비해온 깜짝 선물도 전했다. 그리고 외손자 손녀들의 재롱과 생신 축하 행사에 가족여행의 밤은 모처럼의 가족이 함께하여 마음에 앙금이 풀어진다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 속에 포근함에 젖어든다. 생일 케이크를 자른 후 밤이 늦도록 가족의 하게 휴가 겸 아내의 생일 행사는 못다 한 이야기꽃으로 웃음꽃을 피우며 자정을 언제 지난 줄도 몰랐다. 나이든 가장으로 애들의 즐거운 자리를 위해 일찍 한쪽 방으로 자리를 비워주면서 말이다.

2016년 08월 13일 아내의 생일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