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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김숙자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10-08 04:13
ㆍIP: 108.xxx.86
가을과 지병
  김숙자

청명한 하늘, 서늘한 바람, 코스모스 길, 오곡 백 과가 만발한 황금 벌판, 추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왔다.
나는 풍성하고 화려하며 웅장한 이 가을철을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외국에서 보내고 있다.

작년 9월 말부터 10월 중순 까지 발칸 반도 여행을 하면서 먼 외국의 가을 풍경을 보며 즐겼던 아름다운
추억이 아른거린다.
여행 경유지 일곱 나라마다 오색 찬란한 아름다운 가을의 단풍잎에 가려진 도시들은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만,
발 붙일 틈을 주지 않을 듯, 낯이 서른 도도함과 외로움이 서려있는 듯한 쓸쓸한 가을의 풍경이었다.

올해는 서울의 집과 시골의 집을 홀로 비워둔 채, 느긋하게 딸네 가족과 노부부가 뉴저지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뉴저지의 가을 풍경은 풍성하고 웅장하며 화려하다.
기름진 땅 위에 잘 자란 아름드리나무들은 주로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꽃사과 나무, 참나무, 벚나무, 소나무,
도토리나무 등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웃자란 키에 무성하게 어우려진 단풍잎에 가린 하얀 주택들은 수줍은 듯 보일 듯 말듯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맑은 공기와 적당이 내리는 비, 자연조건이 잘 어우러져 일궈 낸 단풍잎은 거대한 산과 같은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뉴저지 도심은 물론 외곽의 곳곳을 뒤덮었다,
나의 마음을 끌고 있는 오색 찬란한 아름다움은 River Edge의 우리 집 주변은 물론 사방의 큰 길가와 주택 앞 길에
단풍잎 터널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가을 풍경도 꽃이 시들 때 초라함이 있듯,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낙엽진 빈 가지엔 썰렁함이 하늘을
향해 선들선들 퍼진다,
바람에 휘날려 뒹구는 낙엽, 알몸이 되어가는 앙상한 가지, 싸늘한 가을 바람, 짙은 단풍잎 속에서 보일 듯 말듯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짙어가는 가을과 함께 내 앞에서 어른거리다.

사계절은 철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나의 마음을 흔들며 삶의 변화와 즐거움도 주지만,
가을철은 행복한 삶의 의지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몸의 자유로움까지 방해 한다.
그래서 난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싫어 한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반하여 온 알레르기 천식은 가을철이 되면 내게 더 얽매여 모두를 포기하게 한다.
유독 나만 느끼는 아주 지독한 알레르기 천식은 한더위가 물러가기 무섭게 서서히 호흡이 불편한 것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증세로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외부의 먼지, 털, 향, 모기 에어졸 등, 가족은 느끼지 못하지만, 나만 자극을 받아 증세가 나타나는 가을철의 고질병이다.
남편은 틈만 나면 집안의 먼지를 뽑아내고, 쓸고, 닦고 한다.
가끔 태우는 담배도 밖에 나가 피우며, 온 가족이 협조하지만, 계절병은 물러서질 않는다.
재취기와 콧물, 기침, 눈가의 가려움 증, 호흡곤란. 감기 등으로 몸과 마음까지 뒤흔들어 삶의 질서를 뭉개 뜨리는 것이다.
이 순간만은 빨리 변절되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장남(호흡기 내과 전문의)이 지어준 약 보따리를 풀어본다.
6개월 치의 약 분량이 이 가을에 얼마나 줄어들까? 낱알을 세고 있다.
그리곤 약 알이 서서히 줄어들 듯 가을이 천천히 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을철이 지남을 아쉬워할 때 내 몸은 지병에서 좀 자유러워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내가 가을철을 아주 싫어 하지만, 계절이 아니라 내 지병인 것이다.
여름내 더위와 고된 삶 때문에 허약해진 체력이 가을철에 표출되는 것 뿐일진대,
난 계절을 탓하며 피하려고만 한다.
어떻게 대자연이 주는 혜택과 흐름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을까?.
다만 내 삶의 편의대로 지혜롭게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짙어가는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계절의 흐름에 적응하자고 다짐한다. 

                                                                                     2014년 10월 11일 뉴저지에서 Kim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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