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02-16 21:16

ㆍIP: 183.xxx.6

바보 엄마

연희동 김 숙 자

며칠 전부터 남편은 평상시보다 말이 부드럽고 친절하다.
'어, 웬일이지? 분명히 속셈이 있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시골 갈 준비를 하란다. 남편은 시골집의 관리나 일 때문에 가야 할 때는 나한테 필요 이상의 친절이나 미안함을 나타낸다.

사실 나는 시골집 문제에 대해서 점점 짜증이 나고 있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그 집의 관리도 헛일이지만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남편한테 자주 화를 내곤 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일하기도 어렵고 생산성이 전혀 없는 그 집의 관리가 노부부에게는 큰 짐이 되는 건 사실이다. 처분하자고 하면 화를 버럭 내고 삐쳐서 며칠 간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지난 12월에도 시골집에 내려가다가 말다툼을 하였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소머리 국밥을 먹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평일에다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통행 차들은 제 속력을 낸다. 가로수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추수를 끝낸 초겨울의 평택 벌판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사실 난 소득도 없는 시골집에 가기가 싫어요."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나는 그냥 한 소리인데 남편은 화가 난 음성이다. 아마 소득도 없는 집이란 말에 화가 난 것 같다.남편은 시골집에 대해서 소득이나 재산 불리기상의 이재에 연관을 지어 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 전부터 인부들을 사서 집수리를 할 때나 나무들의 전지와 잡초들을 제거를 할 때마다 헛일을 한다고 잔소리를 하였다.
"생산성 있는 농작물을 심어 친손과 외손에게 보낼 수 있도록 무엇을 심을까? 궁리나 하세요."

천안 가까이 올 때까지 말 한마디 없다. 아침 8시에 출발하였는데 10시가 되어간다. 갑자기 망향휴게소 가까이에서 차선을 3차선으로 바꾼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왜 화가 난 거야'
천안 요금정산소로 진입한다. 나도 화가 나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천안 종합버스터미널 뒤쪽에 있는 장남의 집 대림아파트에 도착했다.
"당신의 짐이 다 이것 뿐이지?"
차에서 내린 내짐을 주섬주섬 챙겨 아파트 현관 앞에 놓고 '휘-엥' 가버린다.
'못된 인간'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과 통화하고 커튼을 빨고 대청소를 하였다. 오후에 온양에서 동생이 오고 저녁은 아들이 최고의 식당에서 엄마와 이모를 대접한다.
"어머니, 시골집의 관리는 아버지의 취미생활 중의 하나에요. 돈이 들지 않는 취미생활이 어디 있나요?
아버지의 뜻을 존중 해 드리세요."
"언니, 그곳은 형부의 생가이니 형부로서는 더 애착이 가실거야."
"허허!"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남편을 불편하고 힘들게 한 것 같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식 맛이 아주 좋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목이 멜까?
'남편은 식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난 항상 가정사의 문제가 생기면 큰아들과 의논하고 아들의 판단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아들의 판단은 정확하고 매우 객관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정말 취미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든다. 거기에 남편은 자기 생가에 애착을 갖고 보존하려고 애를 쓰는데 난 소득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다음날 아침 일찍 아들은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 해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한다.
"아버지, 저녁 7시 50분까지 광주 고속버스터미널로 오세요. 어머니는 저와 함께 외조부모님의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오후 4시 20분 행 천일고속버스로 내려가실 것입니다."
외래 환자들을 진료하랴, 의대생들의 강의에,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실습시키랴, 몸이 열이라도 부족한 아들이다. 제 어미가 광주에 내려가기 전 2시간을 짬을 내어 '광덕산 천안공원묘원'에 계신 외조부모님, 외삼촌을 성묘하겠단다. 육중한 몸에, 훤칠한 키와 외모에, 막강한 실력에, 듬직한 외손자를 데리고 와서 부모님을 뵈니 마음이 한층 더 가벼워진다.
'아들한테 힘을 받는 바보 엄마.' 그런데 왜 이렇게 당당해지는 걸까?
아들은 제 차에 실었던 내 짐을 버스로 옮겨 준다. 그리고 아버지께 또 전화한다.
오랜만에 혼자 타보는 우등고속버스다. 초겨울의 저녁 햇살은 짧기도 하다. 창밖을 보다가, 누웠다가, 눈을 감았다가....... 자가운전보다 훨씬 편하고 즐겁다. 짐이 없다면 이용할만 하다.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은 부채꼴처럼 길고도 넓게 펼쳐져 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어두운 깊은 밤 같았다.
버스 문의 앞에서 기다릴 것으로 믿은 남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라! 이 할아비가.......'
가방을 챙겨 들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쪽저쪽을 살피며 10분을 기렸다.
'표를 사서 서울로 되돌아갈까?'
저쪽에서 뚜벅뚜벅 오는 모습이 남편이다. 말끔하게 머리 손질은 하였지만, 얼굴은 초취하다.
"왜 왔어? 그냥 서울로 올라가지."
짐과 내 손을 붙잡는다.
"닥터 때문에 억지로 왔어요."
아버지의 뜻에 따르라는 아들의 당부하던 말을 되뇌어 본다. 남편은 퇴근 시간 때를 고려해서 마중을 나가라는 아들의 전화부탁 때문에 좀 늦었다고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광주도착시각은 퇴근시간 때이니 집에서 좀 늦게 출발하세요. 어머님과 식사도 맛있게 드시고 집으로 가세요."
부모의 양손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이끌렸던 아들이 어느덧 노부부의 듬직한 보호자가 되어간다. 점점 몸과 마음이 왜소해지는 노부부는 울타리가 되어주는 자식들이 있어서 아주 자랑스럽고 행복해 한다.

"자네, 조카가 시골에 올 때는 꼭 따라서 오게나. 남자들은 혼자서 식사 관리가 잘 안되네."
광주에 사시는 시이모님(시어머님 동생)을 뵐 때마다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이숙( 이모님 남편)께서 순천과 여수시장 역임, 함평과 담양의 군수역임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하셨기에 가족을 떠난 남자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아시는 분이다. 난 시이모님의 이런 당부 말씀을 시어머님의 유언처럼 받아들였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남편의 식사관리도 신경을 쓰지만 시골집과 텃밭관리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

남편은 친구들이나 자기 주변의 지인들은 우리 부부를 부럽다고 말한단다. 가끔 바람을 쐬며 가보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고향의 집이 있다는 것이 부럽고 또 부인이 남편의 뜻을 따라서 동행한다는 것이 몹시 부럽다고 한다. 대부분 여자들은 시골에 가서 일하길 꺼린다. 뙤약볕 아래에서 거친 일을 누가 하고 싶겠는가?
남편의 친구들은 부인들에게 시골생활 좀 하자면 혼자 가라고 말한다니 이런 점에서 남편은 나를 고맙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기 생가의 일이고 아들이 간곡한 부탁을 하였으니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가능한 바보 엄마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번 6월에 시골에 가서도 아주 열심히 일하고 왔다. 일한 만큼 변한 시골집의 모습을 소개한다.

시골집

10년 동안 빈집을 지키고 관리하느라 2~3개월에 한번 씩 내려가 텃밭을 매고 집청소를 하고 옵니다. 6/22~29일까지 시골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엔 부부는 파김치가 되어 휴게소마다 들려서 찻속에서 쉬거나 잠시 눈을 붙이고 오며 고민합니다. 언제까지 이 집을 관리할 수 있을까?
갈 때마다 힘이 딸림을 느낍니다. 남편은 시골집을 애물단지란 표현을 하지말라고 하는군요.
성주신(집을 지키는신)이 듣는다나요? 그러나 내마음은 정말 애물단지 시골집입니다.

2012년 7월 1일 연희동 집에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