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더위에 열 받아 지친 몸으로 집을 찾는다. 말 못 하는 미물도 해가 지면 집을 찾듯이….

식사 후 이것저것 걸쩍거리다 책상 위 덩그러니 놓여있는 컴퓨터를 켜는 순간 우정어린 친구의 댓글에 밤새 비몽사몽간을 헤매다, 첫닭 울음소리에 눈을 뜨니 고즈넉한 이른 새벽이다.

양팔 벌려 기지개 켜며, 눈 비빌 짬도 없이 지난밤 허공에 맴돌던 말이 생각난다. “우정이 밥 먹여주나?” 어떻게 보면 이 각박한 세상에 가장 현실적인 말 같아 입가엔 살짝 쓴웃음이 스친다. 하기야 젊을 때 일하기 바쁘며, 또한 매일 새로운 환경에 부디 치며 여러 가지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당연할 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천년만년 갈 것 같아서나 뒤돌아보니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이 순간 눈앞에 가물가물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는 정말 우정이 밥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뿐이다.

작년 8월 일시 귀국하여 몇몇 친구와 지나온 추억들을 소주잔에 띄워 놓고 얼굴 주름살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허구적 그리며 회포를 풀었다. 또 우연히도 날짜가 맞아 참석한 지인들도 함께 자리했다. 그리고 만나고 싶었지만 여건상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더 그리움으로 변한 몇몇 친구도 있었다. 이 모두가 아무리 눈에 멀어져 있어도, 서로의 따듯한 배려 속에 건네지는 안부인사 한마디에 수많은 정이 묻어나는 것은 왜일까? 옛날 같지 않은 생각에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야릇한 감정은, 고향 뒤뜰 장독대 항아리 속에 곰삭은 간장 된장 맛과 같은 아름다운 우정의 향기였다.

세월에 곰삭은 우정의 향기에 몸이 움츠리도록 전율을 느끼는 것을 무엇으로 말하고 증명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우정으로 미화된 서술적 단어들은 온라인의 수많은 글이나 책 속에 싫증 날 정도로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감정은 누구의 말과 감정도 빌리고 싶지 않으며, 그냥 내 마음을 그리면서 전해오는 그 전율이 마냥 좋다. 이것은 아마 기나긴 세월 속에 곰삭은 진정한 우정 때문일 것이다.

“우정이 밥 먹여 주나?” 하지만 인간은 개나 돼지가 아니니 밥만 먹고 배불러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인간은 어차피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다가온 사월 벚꽃 사이로 벌 나비 너울너울 팔랑팔랑 춤출 때, 그동안 서운했고 잊혔든 친구에게 가슴 활짝 열고 내가 먼저 사랑하자. 인생의 봄날이 쉬 지나가기 전에................

* 이국땅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