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채 가시지를 않은 이른 봄의 탓인지 왠지 모르게 싸늘한 날씨에 움츠렸던 몸이 마음까지도 울적함을 더한다. 눈이라도 내릴 듯 잿빛 하늘은 밤사이 온통 하얀 은빛으로 열어 놓았다. 아마 꽃샘추위도 기다림의 봄을 정녕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대지(大地)에 귀를 기울여 본다.

벌써 며칠 채 고즈넉한 기운이 맴돈 탓인지 문을 나서다 말고 무심코 시선이 간 곳, 쓰다 버린 낡은 의자 옆 화단(花壇) 모퉁이에 지난해 당신께서 어느 들에선가 모셔다 놓고 온종일 사랑과 정성으로 매만져 놓으신 당신의 풀꽃들도 제 각자 눈높이를 낮추어 기지개를 켜며, 움이 털 것 같아 조심스레 기다려진다.

아마, 지난겨울 저 자리에 빛바랜 낙엽 더미 사이로 추위에 움츠리다, 마음 둘 곳 없는 여러 시선(視線)에게 노란 얼굴을 내민 복수초 두 송이가 유난히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였던 기억이 새로워 애타게 기다리는, 봄꽃들 앞에 오히려 엄동설한에 더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꽃을 피운 적이 있어, 기다림의 설렘은 더 큰 것만 같아 보인가 보다.

그렇게 시선을 모아 유난히 관심을 가져본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다 말고, 가까이 다가가 봄을 기다리는 풀꽃의 소리에 귀를 기우여 깊은 긴긴 겨울잠, 꿈속에서 본 봄의 향기를 불러보듯이 기다림의 열망은 결코 모른 척하지 않은 것처럼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꽃이 눈에 쏙 들어왔다. 서너 평 남짓한 조그마한 화단에 자칫 눈에서 멀어질듯 한 작고 가냘픈 수줍은 듯한 모습의 자태, 봄을 기다리는 제비꽃이었다.

수많은 풀꽃 중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며 자랑스러워하던 제비꽃을 작년 봄에도 누군가가 살짝 몰래 가져가지 않았던가, 아마 벌써 여러 번째가 되어 당신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知人)들이 더 야단들이지만, 정작 당신은 섭섭함을 감춘 채 “뭐 내보다 이 야(아이)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가져갔겠지. 부디 죽이지나 말고 잘 키워야 할 낀데.” 그러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일을 지켜보다 못한 이웃집 아저씨가 고장이 나 작동이 되지 않는 감시카메라(?)를 구해 설치를 하여 그 밑에 ‘감시 카메라 작동 중’이라는 대문짝만 한 경고문을 붙여 놓아도 보았으나, 진작 당신의 나눔이라는 기쁨을 말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아름다운 당신 께옵선 재작년에 외손녀 시집가던 날, 식장에서 만난 칠순을 바라보는 제자(弟子)들이 당신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며 “선생님 요즈음 건강은 어떠하시냐” 라며 다가 설 때, 한복으로 곱게 단장하고 반기시던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아마도 작고 조그마한 당신이라는 제비꽃 속에 온 우주라도 품을 수 있는 깊고 포근한 사랑, 바로 그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매서워도 차가운 땅을 헤집고 다시 생명의 싹이 솟아나듯이, 봄이 오면 다시 피울 사랑도, 당신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온기도, 저 보잘것없는 조그만 화단에 아름다운 연분홍빛 제비꽃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어머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동안 활짝 핀 연분홍빛 제비꽃을 바라보며,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것처럼 행복해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옆에서나마 지켜 본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 라고 하였나, 그렇게 강건하셨던 당신도 이젠 많이 늙고 병들어 나약해지셨습니다만, 항상 무지갯빛 동심(童心)처럼 살아가는 당신 께옵선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며, 봄을 기다리는 제비꽃 열망(熱望)이 올해에도 당신의 행복으로 이어지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