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07:48

ㆍIP: 125.xxx.48

얼간이 농부

오늘도 우리 부부는 예외 없이 아침 한술 뜨고 밭으로 나갔다. 고집인지 아집인지 아니면 미련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답이 없다. 그래서 의미나 제대로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고집은 “자기 의견은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지켜서 우김”이라 적혀 있고, 아집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고집”이라 쓰여 있으며, 미련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하는 행동은 고집불통에다 아집으로 미련한 행동을 하고 사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40여 년 학교에서 학생들과 즐겁게 살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는 집에서 쉬라고 정년퇴직을 시켰으면 집에서 남은 삶을 즐기며 보내면 될 것이지 제가 얼마나 잘났다고 남들이 다 어려워하는 농사를 짓겠다고 밭에 나가 호미를 들고 10여 년이나 설쳐댔으니 이제는 지칠 만도 하다.

우리 부부가 밭에 뛰어들게 된 것은 처음에는 운동 삼아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먹을 야채나 잡곡을 생산해 보자고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방법으로 이것저것 재배하다 보니 30여 가지가 넘었는데 이제는 무슨 발작이 낫는지 지난해부터 수입도 한번 올려 보겠다고 지금까지 우리 먹을 만큼만 재배하던 고구마 재배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내가 고구마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모임에 참석했더니 친구들 이야기가 내 또래의 교육장을 지낸 친구가 고구마를 생산하여 자기네 아파트에서 판매했는데 몇백만 원을 벌었다는 말이 있다며 대단하다고 떠들었다. 그 소문을 들은 우리 부부도 어차피 짓는 농사 우리도 한번 수입을 올려 보자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고구마 농사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장에서 모종을 구해다 심었는데 지난해부터는 모종을 재배하는 곳을 수소문하여 직접 현장에 찾아가 베니하루까(일명: 꿀 고구마)라는 신품종을 40단(4,000포기)이나 사다 심게 되었다.

고구마를 심는데도 전과 달리 정성을 들여 심었다. 전에는 밭이랑에 멀칭을 하고 모종을 심은 다음 주전자로 물을 주었는데 심어놓고 나면 모종이 사는 확률이 70% 정도로 두 번 세 번 또 심어야 했다. 그리고 모종마다 허리를 굽혀 주전자로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이 허리 환자로서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나 나름대로 물주는 방법을 찾아냈다. 등에 메는 충전식 분무기 통에 물을 넣고 노즐 대 끝을 쇠톱으로 뾰족하게 잘라 고구마 모종할 곳에 일일이 물을 준 다음 모종을 옮겨 심었다. 그랬더니 고구마 모종이 99% 이상 살게 됨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에 가물 때 수시로 고랑에 물을 흘려보내 가뭄이 타지 않도록 했으며, 이런 정성을 들여 재배한 결과 지난해에 판매 대금의 액수가 몇백의 수입을 올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수확기에 나는 캐는 것을 전담했는데 처음에 수확하려고 고구마밭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것을 내가 다 캐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겁을 먹곤 했는데 막상 밭에 주저앉자 한 포기 한 포기 캐다 보니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집사람은 판매를 책임지었는데 처음에는 이 많은 고구마를 처리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는데 고구마가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자 밭 앞에 있는 아파트 주민과 내가 사는 동의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신청을 하여 끝에 가서는 부족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수확량을 분석해 보니 내 손으로 캐낸 고구마가 10kg 박스로 300박스가 넘게 나왔다. 즉 3t이 넘는 고구마를 내 손에 든 호밋자루 하나로 캐낸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니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할 수뿐이 없었다. 하긴 인터넷을 검색하여 고구마 수확 방법을 알아보니 고구마 캐는 기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기계를 사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야 했고 또 기계를 사도 사용할 줄을 알지 못하며 사용 방법을 터득한다 해도 몇 년이나 할지 알지 못하니 살 수가 없어 옹 고집스럽게 호미 한 자루로 일일이 수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집사람은 여자가 그 많은 고구마를 혼자 선별작업은 물론 작게는 10kg, 크게는 20kg 박스를 집마다 배달해 주는 억척을 떨었다 그 결과 70이 넘은 여자가 무거운 고구마 상자를 들 만치다 보니 병이 나고 만 것이다. 결국 관절에 문제가 생겨 겨우내 이 병원 저 병원 쫓아다니며 고생을 하게 되었다. 아마 고구마 농사에서 들어 온 수입의 삼분지 일은 병원비와 약값으로 들어간 것은 그만두고 병만 얻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농사짓는 일은 그만두자고 겨우내 다짐했는데 봄이 되자 무슨 빈 덕인지 다시 시작했다.

올해는 더 욕심을 부려 모종을 60단(6,000포기)을 사다 심은 것이다. 60단을 심으려면 물을 주는데 6,000번을 멀칭한 둑에 구멍을 뚫고 물을 줘야 했다. 3일 동안 나는 꼬박 고구마 심을 자리에 물을 주고 집사람은 심었다. 올해는 1,000만 원의 수입을 올려보자고 야심 차게 도전한 것이다. 이렇게 야심 차게 도전한 고구마 농사인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생긴 이래 장마가 제일 길었다는 47일간이나 계속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해는 가물어서 물주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올해는 비가 너무나 와 고구마밭에 물이 찰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동안 몇 년의 농사기술로 이제는 고구마 모종을 죽이지 않고 99%도 넘게 살리는 농부가 되었는데 이 정도 가지고는 아직 부족한 것인지 날씨가 우리 부부를 시험해 본 것이다. 가을이 되어 고구마를 수확하려고 9월 20일경 달려들어 보니 땅은 축축하니 물기가 가득하고 고구마는 햇볕을 밭지 못해서 그런지 실뿌리만 가득하고 이제 크는 중이었다. 고구마를 본 나는 문득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이 떠올랐다. 고구마는 녹말 저장 탱크로 고구마 잎이 햇볕을 많이 받아야 녹말을 만들어 뿌리에 저장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즉 올해는 장마 기간이 길어 햇볕을 받지 못한 고구마가 자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가을 햇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수확기를 보름이나 늦추었더니 역시 보름 사이에 고구마가 제법 많이 커 젖다. 그러나 작년보다는 덜 잘아 총 수확량이 40단 심었을 때나 60단 심었을 때나 같이 나왔으며 일만 많아졌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 보면 고구마가 크게 자라야 고구마 심은 둑이 저절로 갈라져 캐기가 쉬운데 고구마가 작다 보니 흙이 단단하여 캐는 데 힘이 훨씬 더 든 것이다.

수확하는데 지난해 경험으로 보아 20일이면 충분히 수확이 끝날 줄 알았는데 30일이 넘게 수확을 한 것이다. 말이 30일이지 3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호미로 고구마를 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수확을 하는 동안 지금 늙은이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 반성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먹고살 것이 없으면 먹고살기 위하여 한다고 하지만 밥술깨나 먹고살 만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판매는 지난해보다 쉽게 처리가 되었다. 지난해는 첫해라 그런지 이웃에 있는 아파트에 일일이 전화를 해서 사 주기를 부탁했는데 올해는 수확기가 되자 지난해 샀던 사람들이 먼저 연락이 왔으며 농장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단지에서 먼저 찾아와 주문하여 쉽게 처리를 했으나 말이 그렇지 늙은이들이 300여 박스를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때만 되면 이제는 그만두자고 이야기해 놓고 아침만 되면 내년에는 고구마 수확기를 하나 장만할까? 하는 것이 우리 부부다. 아마 겉으로는 그만두자고 하면서 속으로는 ‘내년에는 농사를 더 잘 지어 봐야지’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든다고 투정을 대면서 지금 이것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하며 농자 짓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놈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년에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지으리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우리 부부 둘 중의 하나가 쓰러져야 그만둘는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은 얼간이 농부가 된 것이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