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1-20 14:20

ㆍIP: 223.xxx.150

기적시리즈

-기적 - 8-2

권영심

몸을 관통하는 고통으로 눈을 뜬, 그녀 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남편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나 비명조차 나오 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 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몸 위에서 떨어져 나갔 고 ,그녀는 울음을 억누르고 그대로 꼼짝없이 있었지요.
-미안하데이... 자그라 -이불을 덮어주며 남편이 말했으나 그녀는 대답할 기운도 없었고 까무룩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습 니다.
그녀를 깨운 사람은 고모 중의 한 사람 이었습니다.
고모는 밥을 지어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 에 보내면서 그녀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다 알아 듣지는 못해도 이제부터 니가 해야할 일이다라는 것 정도는 알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자 남편이 들어 왔습니다.
남편은 새벽에 농사를 돌보러 나갔던 것이지요.
흙투성이의 남편은 어제 본 것 보다 더 나이들고 추레하고 볼품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절망감으로 다시 한 번 온 몸이 떨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를 위해서 다행이었을 까요?
이 베트남 여인은 만화 속의 켄디 만큼이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으며 천성이 바지런 했습니다.
남편은 집 안팎으로 다니며 계속 무언가 를 했고 ,아무도 말 걸거나 찾아오지 않았는데 그녀는 혼자서 할 일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깊은 우물 처럼 슬픔과 고통이 마음속에 있었으나 ,우선은 집 주위에 널린 일들 이 그녀를 놔두지 않았습니다.
마당에서 보니 집은 굉장히 넓고, 잘 지어진 집이었고 방들도 여럿이었으며 부엌도 넓고 환했습니다.
베트남의 큰 부잣집의 집보다도훨씬 더 근사했습니다.
그러나 넓은 마당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고 집 안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이 자고 나온 방부터 치우면서 ,옷장 정리도 하고 자신의 짐 들도 정리했습니다.
쉴 새 없이 일하자 생각들이 없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깜짝 놀랐습니다.
한 구석에 틀어 박혀 울고 있으면서 짐 도 풀지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베트남 아내는, 부엌의 식탁에 점심을 차려 놓 았고 방마다 청소를 하고 있지 뭡니까?
-밥.. 반찬 있는 것 놓았어요,
아직...한국 음식 못해요-
남편은 말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아내가 죽은 뒤 점심에 여자가 차려 준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그녀는 베트남에서 동생들에게 하던 대로 했습니다
씻게 하고 계란을 삶아서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고 아이들은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물어 가면서 저녁을 만들었고 그녀의 첫 음식은 거의 남편의 솜씨였으나 다른 것은 있었습니다.
깨끗한 밥그릇과 반짝반짝한 찌게냄비,
먼지 하나 없는 식탁이며 부엌 바닥 이었지요.

집의 저녁을 차려놓고 고모들이 왔을 때는 네 식구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깜짝 놀라, 집안의 여기 저기 를 살폈습니다.
여자의 손이 하룻만에 집안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래 새로 집을 짓고 장롱이며 가구들을 새로 했으나 올케가 암으로 죽은 뒤 방치하다시피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실의 소파조차 반들반들 윤이 나고 그릇들도 광택이 났습니다.
-아이고 베트남댁아 ! 우야꼬?
니가 이랬나?
손 끝이 맵기도 하지!
하룻만에 집안이 우얘 이리 바낄수가 있노? -
그녀는 가만히 고개만 숙였습니다.
그날 밤,남편은 술상을 앞에 놓고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하요.
나는 말할라캤는데 그 사람들이 가마이 있으라 해서... 속인거는 알라가 둘 있다는거하고 나이하고 재혼이라는 거요.
당신이 너무 어리서 안 할라캤는데...
낼로 보고 웃는 당신이 너무 예뻐서...-
그녀는 천천히 말하는 남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엄마라고 하지않는 것도 , 말을 걸지않는 것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매일 고모들에게 음식을 배워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줄 수 있었고 ,깨끗이 씻겨 세탁이 잘된 옷을 입혀, 학교에 가는 뒷 모습만 보아도 좋았습니다.
베트남에 두고온 동생들 같았으니까요.
조그만 여자가 무슨 힘이 그리 넘쳐 나는지, 날마다 집안팤을 쓸고 닦고 마당조차 반들반들.
신랑인들 가만 두었을까요?
그녀의 성화로 남편은 잘 생겨졌습니다.
고모들은 그녀가 어느날 도망갈까 마음 속으로 걱정했으나 남편은 어느새 아내 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이보다 스므살이나 어린 베트 남 아내를 그는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고생 끝에 집을 짓고 농토와 하우스도 넓혔는데 ,아내가 덜컥 암에 걸려 손 쓸 새도 없이 가버린후, 그는 참으로 마음 과 몸이 시리고 고되었습니다.

재혼을 안 하고 싶었으나 날로 추레해 지는 아이들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은 쌓여만 갔고 도움이 없는 농사일은 버거웠습니다
베트남 아내를 구한 것은 순전히 계산 적인 행동이었지요.
아이들 밥이라도 해주고 아내로서의 구실만 해주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인 아내는 도저히 구할 재주가 없었던 그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베트남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복일까요?
아니면 누님들 말대로 믿게 해놓고 주민증만 손에 쥐면 도망치려는 심보 일까요?
그는 매일 깨끗한 속옷을 입고 아이들이 뺨이 토실토실해서 웃으며 학교가는 것만 보아도 살 것 같았습니다.

내가 만난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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