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03-31 22:00

ㆍIP: 1.xxx.229

요술쟁이 손
요술쟁이 손

김 경 렬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었다.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 칠순을 차려 드리겠다고 딸이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 정작 상 차릴 식재료 보다 갖가지 과일과 어른들 간식거리만 잔뜩 들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마트에 가서 재차 장을 보아 왔다. 가져갈 식재료들을 따로 한 상자 준비해 놓고 손이 많이 가는 반찬 몇 가지는 직접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메뉴는 갈비찜과 더덕구이, 그리고 북어보풀 무침으로 정했다.

먼저 손질한 갈비를 갖은양념에 버무려 숙성이 되도록 기다리는 동안에 더덕 손질을 시작했다. 우선 껍질을 벗겨 얇게 저민 다음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려서, 부드러워진 더덕을 양념 고추장에 재워 놓았다. 숙성된 갈비를 불에 올려놓은 후 황태 손질을 하였다. 특히 황태보풀 요리는 하나하나 가시를 제거하고 잘게 부수고 하는 과정에서 잔가시가 손에 박힐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손질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치아가 부실한 노인이나 아기들 반찬으로는 인기 있는 요리였다. 귀한 음식이기에 정성을 들여서 황태 살을 비벼 대자니 문득 어릴 때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북어 밖에 없었던지, 어머니는 다다미 돌 위에다 딱딱한 북어를 올려놓고 '화풀이' 라도 하듯이 빨래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댔다. 속절없이 몽둥이세례를 받은 북어는, 나무토막처럼 빳빳하던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뼈대는 물론 속살까지 부들부들해졌다. 어머니는 이렇게 해야 껍질이 잘 벗겨지고 억센 가시도 쉽게 발라 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발라낸 북어 살을 절구에 넣고 쿵쿵 빻아서 굵은 채에 내리기를 여러 차례 반 복 하면 보드라운 북어가루가 되었다. 여기에 참기름과 설탕을 뿌리며 한참을 조물조물 주물러 맛있는 북어보풀 무침이 완성 되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스며든 북어 살은, 부드러움과 구수한맛이 어우러져 그 맛이 일품 이었다. 종부인 어머니는 잦은 제사와 손님 접대에 북어 한가지로도 여러 종류의 음식을 장만 하셨는데 그때마다. 내 눈에는 엄마 손이 '요술쟁이 손' 이었다. 제사상에는 북어포, 어 탕, 어 찜, 어 적으로, 손님상에는 시원한 북어 국, 매콤한 북어찜, 고추장 무침, 쫀득쫀득한 졸임, 그리고 북어보풀 무침이었다.

아버지 생신날이면 푸짐한 음식과 손수 빚으신 국화주를 대접하셨다. 그때마다 손님들로부터 칭송을 많이 받으셨다. 다행히 어머니의 음식솜씨 DNA를 물려받은 나는 재료만 있으면 척척 음식을 만들고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 두세 가지 요리를 해내곤 하였다. 남편은 가끔씩 유명한 음식점에 데려가 맛있는 요리를 맛보게 해주었고 발달한 미각 덕분으로 그때마다 그 요리를 재현하는 즐거움으로 여러 종류의 요리를 터득 하였다. 무교동 낙지골목에도 갔다. 그곳엔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그것도 빌딩사이에 있는 그 집이 남편이 말하던 유명한 낙지요리 집이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무교동 도시계획으로 낙지골목이 다 떠났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버텨오던 이 낙지집이 곧 헐리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온 것이란다. 주인 할머니는 아예 상을 걷어치우고 오신 손님들은 다 드셔야한다며 방이며 마루에 쟁반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난민 수용소에 낙지 배급을 타 먹는 모습이었다. 이 무슨 난리인가? 밥상이 쟁반이다. 방바닥에 비집고 끼어 앉으란다. 그러더니 고추장을 덮어쓴 듯 시뻘건 낙지볶음 한 접시와 막걸리 두 잔을 금방 내왔다. 너무 매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그러나 그 맛은 기가 막혔다. 그 후 우리 집의 특별 요리는 낙지볶음 한가지가 더 늘어 났다.

어느새 구수하고 맛있는 갈비찜이 김을 뿜어내며 뚜껑을 들썩거렸다. 찜통속의 갈비찜은 뼈다귀를 드러내 익어가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손질해 놓은 황태 보풀에 설탕대신 올리고당을 넣고 참기름을 뿌려가며 주물러 무쳐서 그릇에 담았다. 참깨를 솔솔 뿌려서 뚜껑을 덮고 나니 새벽 3시를 가리킨다. 이튿날 일찍 서둘러 음식을 실어 보냈다. 딸의 수고를 덜어주었다는 위안으로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너머에서 사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사돈 안녕 하셨시유? 힘들게 음석 준비 꺼정! 워쩐데유, 염치없이 잘 먹것시유"
충청도 사투리의 사돈 인사말이 구수하게 들려왔다.
"예, 생신 축하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요, 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창 너머 흐드러진 벚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선목 2015-04-02 00:40	김경렬 시인님 놀러 왔심더 놀러 오라시더니 밤새 음식을 이렇게 많이 차리시면 어떡합니까? 갈비찜으로 마무리를 하시는 요술쟁이 손맛 시장기가 도네요? 책임지이소 작가 김경렬 시인님!

김경렬 2015-04-02 09:10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참 드시면 건강에 해로워요. 제가 책임 질께요. 시간날때 한번 날잡아요 기꺼히 쏠께요. 감사합니다.

백낙은 2015-04-09 09:18	김경렬 작가님. 정말 요술쟁이 손이군요. 옛날 어머님이 해주신 북어국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다다미 돌 위에다 딱딱한 북어를 올려놓고 '화풀이' 라도 하듯이 빨래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댔다. 속절없이 몽둥이세례를 받은 북어는, 나무토막처럼 빳빳하던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졌다."는 표현이 나를 60여년 전으로 되돌리는 듯 했습니다. 거기다가 국화주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일듯 합니다. 그리고 훈훈한 가족 분위기가 좋아 보입니다. "창 너머 흐드러진 벚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는 표현 처럼 지금 창밖은 비가 온 뒤 금빛 햇살이 쏟아지고 있답니다. 향필하소서. 샬롬.

김경렬 2015-04-09 21:28	와우!!! 목사님께서 오셨네요 안녕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쓸쓸하던 서재가 목사님 방문으로 훈기가 가득 차오릅니다. 저는 목사님 서재에서 지식 한자루 사랑 한자루 허락도 없이 챙겨왔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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