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04-20 12:11

ㆍIP: 61.xxx.81

내 가슴에 옹이
내 가슴에 옹이

김 경렬

사월이 되자 온 천지가 향긋한 꽃 물결로 가슴이 설렌다. 하얀 벚꽃이눈부신 가로수, 군데군데 백목련 자목련이 우아함을 뽐내고 있다. 노란 개나리가 축축 늘어저 화사하게 웃으며, 붉은 진달래가 온산에 봄을 태운다. 황매화도 겨자색 얼굴로 수줍게 피어나고, 민들레와 제비꽃이 발목을 감으며 재롱을 부린다. 모퉁이를 환하게 밝힌 민들레가 언니의 웃는 얼굴로 피어오른다.
언니는 유달리 꽃을 좋아 했다. 봄이 되면 울안에 갖가지 꽃씨를 뿌리고 가꾸며 꽃속에서 살았다. 육이오 사변으로 학업이 중단된 언니는, 피난에서 돌아와, 학교가 타버려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한학자인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그러나 언니의 학구열을 채워주지는 못 했다. 언니는 성경을 읽으며 성당을 다니기 위해 교리문답을 달달 암송하였다. 그러나 완고하고 엄하셨던 유학자 아버지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엄마를 도와 살림을 하고 있었던 언니는 한숨을 머금었다. 시집가기 전에 종부였던 엄마의 알뜰한 살림과 손맛을 전수 받으며 호된 신부 수업을 하고 있었던 언니는 문밖 출입도 못하고 살았다.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땋은 머리에, 빨간 댕기를 매고 항상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어느 날 고모 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가 옷 보따리를 안고 우리 집에 아주 살러 오셨다. 우리 집은 잦은 제사와 끊임없는 손님접대로 항상 양식이 모자랐다. 저녁이면 죽이나 국수를 먹으며 양식을 아꼈다. 할머니는 고기반찬에 하얀 이밥만 잡수셨다. 언니의 음식 수발 고생이 시작 되었다. 아침에 보리밥 속에 쌀을 박아 그것만 들어내 밥상을 따로 차려 할머니 방으로 들였다. 할머니의 까칠한 성품이, 보리냄새가 베었다고 따로 밥을 지으라 했다. 우리 육남매는 할머니에 대한 좋은 추억이 하나도 없다. 사탕 공장을 하는 고모가 사탕을 가져오면 할머니는 벽장에 넣어두고 혼자만 잡수셨다. 할머니가 계시는 동안 우리집은 웃음이 없어졌다. 늘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엄마가 알 수 없는 병으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할머니 따라온 귀신 병이라고 했다. 엄마가 많이 아픈 날은 푸닥거리를 했다. 그러면 엄마는 며칠 반짝 했다가 다시 아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어나 초상을 치루고 눕지도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고생만 하던 언니도 서울총각과 약혼을 하고 결혼 날자를 받았다. 형부는 주말이면 내려왔다. 같이 나가 영화도 보고 다과점에 가서 빵도 먹자고 했지만 부모님은 허락을 하지 않아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완고하고 엄하셨던 부모님이 너무하다고 생각한 내가 총대를 멨다. 엄마에게 같이 따라 가겠다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다. 영화관 에 데려다 주고 친구네로 갔다. 약속한 시간에 언니가 나타나지 않아서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어느 다과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언니를 찾아내어 마구 화를 냈다. 이러면 엄마가 다시 못나가게 할 것 아니냐고... 엄마가 드실 빵을 사들고 돌아가 위기를 모면했다. 언니가 불쌍했다. 언니를 데려가면 좋은 곳 다니면서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형부에게 부탁도 했다.
이듬해 봄 언니는 서대문에 있는 우미 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에 나는 공무원으로 바쁜 일속에 묻혀 2,3년이 흘렀다. 어느 날 엄마는 이것저것 보따리를 싸주며 서울 언니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토요일 오후 기차로 여섯 시간을 달려서 언니 집에 도착했다. 때마침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불편해 하는 언니의 기분을 감지했다. 사연인즉, 세든 신혼부부가 결혼 육 개월 만에 아들을 낳았단다. 3년째 손자 소식을 기다리던 언니의 시모가 쓴 소리를 했다고 했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살림 잘 하고 애 잘 낳는 것이 본분이라고 하면서 돌각시가 들어와 속상하다고 했다는 것 이다. 이튿날 형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아침에 작별 인사를 했던 처제가 불쑥 찾아와 대접하는 차도 마시지 않고 아래층 다방으로 내려갔다. 뒤따라온 형부에게 ‘아버지께 고하고 언니를 데려 가겠다’ 고 엄포를 놓았다. 언니가 이런 대접을 받으며 마음고생을 하는데 형부는 장자가 되어서 부모 동생 앞에서 언니를 위해 한마디 변명도 못해주느냐? 언니가 이렇게 삼년을 살아왔느냐고 따졌다. 형부는 쩔쩔 매며 사과를 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형부는 옆에 있는 칠성제화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뿌리치는 나를 잡고 발 사이즈를 제 라고 했다. 최고로 좋은 가죽을 쓰라며 디자인까지 골라주었다. 비싼 구두를 맞춘 죄로 부모님께는 함구를 하고 말았다. 그 대신 언니에게 잘해주란 부탁을 누누이 전화를 걸어 당부를 했다.
그해 겨울 언니의 포태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아들만 줄줄이 넷을 낳았다. 와중에 언니의 시모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언니의 시모는 친정에 연락해서 흰 오리를 잡아 보내라, 잠종을 구해 보내라, 마치 맡겨 놓은 것 찾아가듯 요구가 많았다. 중풍에 좋다는 것은 다 해 드리고자하는 언니의 효성이 눈물겨웠다. 백방으로 청을 넣어 조달해 주었다. 이렇게 언니는 구년 동안을 시모가 원하는 곳이면, 등에 업고 목욕탕으로 영화관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한번 하지 않았다. 하루는 언니 집에 대문을 들어서는데 별안간, '와장창 쨍그렁'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어보니 언니의 시모가 밥상을 걷어찼던 것이었다. 언니는 말없이 치우고 나가더니 육 고기 한 점, 생선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상을 차려 들어갔다. 끝까지 지켜보던 나는 밥상을 하얗게 비운사실에 경악 하고 말았다. 나 같으면 사돈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바로 그 밥상을 받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문간방에 세입자 아줌마는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귀 뜸을 해 주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언니는 동네에서 효부라는 소문이 났다. 동회에서 어버이날 효부 상을 추대한다며 진상 파악을 하러 왔다. 심술궂은 시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동 직원을 내쫓았다고 했다. 동네에서는 효자효부는 부모가 만드는 것 이라고 수근 거렸다. 시모가 떠난 뒤 남은 건 수두룩한 약탕관뿐이었다. 시모가 떠난 후 언니는 집을 헐어내고 이층집을 새로 지었다. 이층 마루에 누워 언니와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눈물이 나오도록 웃어본 적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언니와의 즐거운 추억이었다.
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 하였다. 점점 야위며 때마다 약봉지를 달고 살았다. 단순한 위장병이라고 만 했다. 언니는 큰 시장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갖가지 상품들을 보며 없는 게 없다고 감탄을 했다.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었다. 언니는 시커먼 국수가 맛있다고 하면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 여기 시장도 처음 와보고 중국집도 처음이야.”
가슴이 짠했다. 정말 맛난 음식을 한번 대접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과천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언니 곁을 떠났다. 간간히 안부전화만 주고받으며 일 년에 한 두 번 보기도 어려웠다. 주부공채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회사에 적응 하느라고 많이 바빴다. 그 사이 언니는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년 중행사로 vip 고객 초청 행사를 한 번씩 성대하게 하였다. 그 해 봄도 어김없이 행사 일정을 잡고 준비를 하였으며, 과천호텔 뷔페연회장을 빌려 행사를 하게 되었다. 초청 명단에 언니 이름을 올리고 초청장을 보냈다. 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4인 별실을 별도로 예약해 놓았다. 그날 전국 매장관리 대상 수상식을 했다. 모든 진행을 준비한 나도 모르는 수상식 이었다. 갑자기 내 이름을 호명해서 깜짝 놀랐다. 행사를 기획한 나에게 비밀로 하면서 깜짝 쇼를 한 것이었다. 갑작스런 환호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언니는 영광된 자리에 너를 보면서 흐믓하고 자랑스럽다했다. 수십 가지 산해진미를 동생덕에 다 먹어보고, 생애 처음 호강을 했다며 고맙다고 하였다. 언니는 위암 말기였다. 삼키지도 못하면서 골고루 맛을 다 보았다고 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 후 언니는 석 달간 병원에 누워 있었다. 병원옆에 있는 명동성당에서 신부님이 오셨다 언니가 소원하던 영세를 주셨다.그리고 며칠 후 종부성사를 끝낸 언니는 조용히 영면의 세계로 길을 떠났다. 언니는 사월에 태어나 꽃 속에 살다가 사월의 신부가되어 88년 사월 꽃 속으로 꽃잎이 되어 날아갔다. 참배처럼 연하고 정이 많은 언니였다. 해마다 사월이 되면 향기 가득한 꽃밭속의 언니를 만난다. 사월의 언니를~~

김종근

2016-04-20 19:45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참 가슴이 짠합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진정에서 시집살이 처럼 살고
시집가서도 그렇게 살아오셨네요.
할머님께서도 꼭 저희집 할머니와 닮으셨네요.
자기 자신만 아시는...,
사월의 언니 분께서는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김경렬	감사합니다. 언니는 저에게 '너만은 나처럼 살지말고 잘 살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답니다.언니 때문에 속상해 하면 모든게 자기 팔자라 했지요. 지금도 언니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지고. 남편도 언니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봄이되면 언니 생각을 한번씩 하게 됩니다. 졸작을 함께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4/21 06:34

백낙은

2016-04-20 20:3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런 안타가운 일도 있나요?
옛날에는 그런 일들이 더러더러 있었지만 듣고 보니 화가 나네요.
우리 어머님도 효부상을 받으셨답니다.
그 효부상이라는게 골부상이랍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은 가끔 할머니께 스트라이크 한 번씩 하시더군요.
며칠씩 입 닫고 계시면 할머님도 안절부절 했답니다.
언니는 말 한마디 못하시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에 병이 생긴 듯 하네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언니의 온후하고 착한 마음씨가 가슴에 찡하게 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기억력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내며
"울타리와 공원엔 노란 개나리와 붉게 타는 진달래가 봄을 태우는"
이 봄이 즐겁고 보람 되시기를 바라고
행복한 계절의 여왕 맞이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김경렬	언니 기일인 사월이면 생각이 납니다. 남편과 언니 얘기를 하다가 한편 끄적여 보았습니다. 글쓰는 내내 가슴이 답답함을 어쩌지 못했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 일도 있었지만 언니는 모든것을 덮고 살았지요. 하늘 나라에서 영복을 누리리라 자위 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지요? 효부상을 받으신 어머님 자랑 스럽습니다. 신록이 우거지는 봄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4/21 06:45

박목철

2016-04-23 09:10

글을 읽으며 가슴이 찡 했습니다.
아마 속으로 삭이신 온갖 시름이 병이 되셨을겁니다.
곱게 살다 가셨으니 좋은 곳에서 작가님의 글을 보시고
미소를 보내시리라 믿습니다. 긴 인생도 아닌데 웬 시름이 그리 많은지요,
주말 입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고 충전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오늘은 오전에 시한편 퇴고해놓고 수필에 나왔던 삼십년 지기지우들의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가 저녁때 들오와 지금막 컴을 열었답니다. 빈집에 다녀 가셔서 차대접도 못했습니다. 늦게나마 향긋한 목련차 한잔 바쳐 듭니다. 감사합니다. 황사 조심하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4/23 21:03

정찬열

2016-04-28 18:37

작가님 2개월동안먼저 타게하신 우정어린 "친구여"아들을 훈련소에 보내시고 면회시
면회를 오지않은 아들의 동료에게 준비해간 음식을 배려한 장면은 엄마이신 작가님의
성품이 닮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 첫 면회" 빨간 댕기를 달고 호된 신부수업의 할머니수발에
가슴아팠던효성 지극한 언니의 결혼생활 끝에 말기암 환자로 언니를 떠나보낸 "내가슴에 옹이"
등 참으로 멋진글에 찐한 감동으로 배독했습니다.
정이많으신 작가님 먼길에 지난 한강성심병원 까지 병문안 와주심은 두고 두고
잊지않을 겁니다. 늘 염려해주신 덕택에 비록 한팔은 잃었지만 그후로 8년동안
한팔을 많이쓴탓으로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은왼팔과 고개까지 돌리지 못한
통증이 계속해서 통원 치료를 밭으라는 의사의 진단이지만 더이상 참지못하고
이제야 쉬었다 쓰고 쓰며 작가님 글을 배람하고 갑니다.
항상 건안 하시길 기원 드리며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김경렬	아이고! 세상에! 불편 하신데 이렇게 장문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앞으로는 한두줄만 쓰도록 하시면 어떨까요. 너무 수고 하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빨리 쾌유 하시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정찬열 시인님!	4/28 21:17

이석희 2016-09-12 06:37	그 쓰디쓴 고난의 시간들을 어찌 버티셨는지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떠하셨는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나신 우리 어머니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김경렬 2016-09-15 21:05	어서 오세요 . 외진 곳까지 찾아주시고 고운 걸음 감사 드립니다. 명절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조석으로 선선하오니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날 일기

첫 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