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01-14 07:48

ㆍIP: 61.xxx.81

( 6 부 )
( 6 부 )
문이 부서지도록 두들겨 대는 소리에 S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가 황망한 얼굴로 정신없이 들어 닥치며 괴성을 질렀다.
“혁이 죽었어! 혁이 죽었대!”
그의 눈에서 소나기 같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라구요? 삼촌이? 아이고 어떻게 해!”
봄부터 직장을 옮긴 막내 삼촌 혁이 함께 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 하면서, 삼촌은 회사에서 제작한 새 보트를 수원으로 납품하러 간다고 했다. 유원지 보트 사업부에서 삼촌에게 시운전을 해 보라고 하였단다. 호수 한가운데에 보트가 뒤집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잠수부들이 유원지를 수색하여 바닥에 갈아 앉은 시신을 발견하고 건저 올렸다는 것이다. 이무슨 청천 하늘에 날 벼락인가? 삼촌이 만든 첫 작품이라고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S부부는 옆집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급히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모래사장에는 하얀 시트를 덮어둔 시신이 있었다. 잠수부가 시트를 훌렁 걷어내며 신원 확인을 하라고 했다. S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뒤에서 한마디 했다. ‘젊은 부인이 혼절을 했구먼! 그 나이에 흉한 꼴을 보았으니 쯧!쯧!’ 혀를 찼다. 경찰이 와서 줄을 둘러치며 사람들을 몰아냈다. 경찰은 사고 수습을 하느라고 여기저기서 호르라기를 불어댔다. S는 시끄러운 호르라기 소리에 눈을 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산사람을 먼저 보살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S에게 다가와 괜찮은지 물으며 휴게소까지 부축해 주었다. 누워서 안정을 하라고 했다. S는 충격으로 온몸이 떨려 고맙다는 인사도 할 수 없었다. 매점 주인이 다가와 시원한 음료수를 따라주며 여기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진정을 시켜 주었다. S가 넋이 나간 모습을 본 남편과 시숙이 옆에 있어주었으므로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골에서 시어른이 올라 오셨다. 어른은 젊은 애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S를 아이들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조사가 끝나면 장례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시어른은 시신을 화장 한 뒤 시골로 내려가 선산에 뿌려 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둑어둑 해질 무렵, 시 어른은 하얀 유골상자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는가? S는 또 한 번 놀랬다. 가슴이 쿵쾅 거리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내색도 못하고 허둥지둥 저녁밥을 지어서 삼촌이 좋아했던 반찬과 함께 상을 차려 유골 앞에 놓았다. 시어른이 흠칫 놀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 보셨다. 잠시 후 그 상을 당기시더니 모조리 잡숫고 계셨다. 물그릇마저 비우시고는, ‘아가야 고맙다!’ 하셨다. 이튿날 아침도 똑같이 상을 차려 유골 앞에 놓아 주었다. 이번에도 시어른은 그 상을 조반으로 다 비우시더니 유골을 안고 시골로 내려 가셨다. 유골이 놓였던 자리가 계속 눈에 들어오고 섬뜩섬뜩 하였다. S는 그날부터 일주일이 넘도록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무더운 여름밤에 창문을 꼭꼭 닫아걸고 잠도 들지 못했다.
급기야 S는 남편 얼굴이 삼촌 얼굴로 보였다 말았다 하였다. 헛것이 보이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S의 남편은 출장을 떠났다. S는 아이들과 혼자 있게 되었다. 밤이 되자 도저히 무섬증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정릉에서 모텔사업을 하는 친척 오빠한테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찾아갈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오빠내외는 밤늦게 들이 닥친 S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부부 싸움을 했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오빠는, 다른 집으로 빨리 이사를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아이들만 아침밥을 먹이고 있는 S에게 올케 언니는, 며칠 동안 먹지도 않았다면서 조금이라도 먹어 보라고자꾸 권했다. S는 물만 조금씩 마실 뿐,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장위동에 살고 있는 친구 D는 소식을 듣자 무조건 빨리 오라고 했다. D의 시모는, 사찰에서 삼촌의 위령제를 지내주고 싶다는 S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S를 어느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점을 보는 집 같았다.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박수무당 이라고 했다. D의 시모는 죽은 삼촌의 사주를 풀어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쌀알을 소반에 휙 뿌리더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내 눈에는 그저 쌀알뿐인데, 삼촌이 머리가 좋아 영리하고 손재주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는, 사고 난 달부터 사주가 막혔다며 계속 고개를 도리질하고 있었다. 한참 후 복채를 내주며 가라고 짜증을 냈다. S는 그 자리가 너무 두려워 나오려했다. D의 시모는 미안하다며 박수무당 아저씨에게 다시 복채를 쥐어주며 사실 얘기를 했다. 박수무당은, 이번에 S의 사주를 풀었다. 그는 갑자기, S에게 공손히 앉은 체 인사를 하였다. D의 시모가 눈이 둥그레지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S도 순간 어리둥절했다. 지금으로서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주부 같은데 많은 사람이 단상에 서있는 S를 우러러 보고 있다. 말년은 재운도 있고 자녀들이 잘되어 노년 복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S는 마음이 너그럽고 덕이 많아 남편도 아이들도 아내 복 어미 복으로 잘 풀릴 것이라 했다. D의 시모도 S가 후덕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S는 박수무당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말없이 앉아 있다. D의 시모는, 망자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주고 싶다는데 대신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박수무당은 고개를 흔들며 위령제 보다는 물속에 갇힌 혼령을 꺼내 천도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준비물과 과한 경비였다. 제물로 시루떡과 다과, 포를 준비하고 살아있는 닭 한 마리와 면포도 한필 끊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혼령이 물속에서 풀려나면 굿판을 벌려 위령제를 지낸다고 했다. D의 시모는 젊은이가 ‘그걸 어찌 준비 하느냐’ 알아서 다 해결하고 경비도 최소로 받으라고 당부를 하신다. S는 계를 타면 오만원이 들어오는데 그 돈으로 모든 준비를 해 달라고 했다. 무당은 ‘다른 사람 같으면 일을 않는데, 부모형제가 있어도 혼자 망자를 위해주는 정성에 감동해서 일을 맡아 주겠다' 고 했다. 이틀 후로 날을 받았다. 무당은 한 가지는 꼭 해오도록 했다. 망자의 밥그릇에 정갈한 쌀을 한 알씩 골라서 가득 채운 뒤 뚜껑을 덮고, 망자가 입었던 상의도 함께 가져오라고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 하였다. S는 시어머니께 위안을 드리고 싶어서 전날 오시도록 연락을 했으나 오시지 않았다. 남편과 둘이 박수 무당집으로 갔다. S의 남편도 아내의 고마운 마음에 동참을 했다. 도착해보니 너무나 짐이 많았다. 용달차로 유원지에 도착 했다. 큰 배에 짐을 부리고 호수 가운데로 갔다. 무당은 배안에 재물을 차려 놓고서 제의를 갈아입었다. 북채는 어미 무당이 잡고 둥둥둥 북소리를 내었다. 박수무당의 신어미인 할머니는 주문을 외면서 행사를 함께 진행 하였다. 사이사이 젊은 부부에게 절을 하라고했다. 첫 제사는 용왕님께 드리는 제사였다. 살아있는 닭을 물에 띄우며 용왕 전에 고했다. 신어미는 면필 끝자락으로 쌀이든 밥그릇을 돌돌 말아 꼭 묶었다. 그 그릇을 물속에 넣으며 계속 주문을 외었다. 새 영혼 받으시고 혁이 영혼을 내보내 달라는 내용 이었다. 면필이 물속으로 끝없이 풀려 들어갔다. 거의 다 풀릴 즈음 면 필이 멈추었다. 땅에 닿았다고 했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젊은 부부도 두 손을 비비며 용왕님 전에 빌고 또 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왔다! 왔어!’하더니 면포를 감아올리기 시작 하였다. 끝자락은 부부에게 감아올리도록 했다.
바닥에는 감아올린 면포가 수북이 쌓였다. 박수무당은 묶은 고리를 풀어 밥그릇 뚜껑을 열었다. 억센 머리카락이 한 개 쌀 위에 걸쳐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물속에 있었던 그릇에 쌀은 마른 쌀 그대로였다. 신기했다. 더욱이 내손으로 정갈하게 해온 쌀에 머리카락이 왼 일인가? 무당은 혼령을 내보낼 때 손톱이나 머리칼로 신호를 한다는 것이었다. 망자의 옷 속에 머리카락을 넣더니 제가 끝난 뒤 태운다고 했다. 이제부터 천도제와 위령제를 함께 한다고 했다, 꽹 가리 소리가 요란하더니 또다시 북을 울렸다. 길을 가른다며 방금 전에 말아 올린 면포를 길게 늘였다.
부부는 면포 양옆을 잡고 있다. 부채가 지나가자 양쪽으로 쭉쭉 갈라졌다. 더 신기한 것은 사람 형상을 오려낸 창호지가 면포 위에 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어미는 혼령이 실려서 그렇다고 한다. 네 시간여 제가 끝나고 마지막 이별 시간이다. 점잖던 무당 아저씨에게 혁의 혼령이 들어 왔다고 한다. 배시시 귀엽게 혁이 웃는 모습으로 혁이 말투로 말을 하기시작 했다. 귀신도 생전에 어려워하던 형에게는 고맙다는 말만 하고 형수인 S에게는 자상하게 이야기 한다. 혁의 혼령이 실린 아저씨는 S의 손을 잡으며, 잘 대해주고, 옳은 길가라고 충고도 해 주고, 부모님께도 잘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 맑은 목소리가 마치 혁이 살아 말하는 착각을 하게한다. 혼령이 떠나기 전에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다. S는 형님이 건강하고 조카들 바르게 잘 자라게 해 달라고 했다. 부모형제들도 잘되도록 보살펴 달라고 했더니 샐쭉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S는 순간 서운해서 그런가싶어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했다. 일이 끝나고 두시쯤 늦은 점심으로 비빔밥을 시켰다.
S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 신기했다. S는 식사를 하고나자 눈이 밝아지고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살 것 같았다. S는 막내혁이를 좋은곳으로 보냈다는 마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S가 집에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올라와 계셨다. 연락이 잘못되어 내일로 알고 오셨다는 것이다. 반가워하시며 일어나던 분이 갑자기 풀썩 주저 앉아버렸다. 깜짝 놀란 S가 달려가 보니 어머님은 많이 허약해 지셨다. 생때같은 아들을 갑자기 여윈 충격에 곡기를 끊으셨던 때문이다. 건재상에 가서 원기 회복에 좋다는 마른 개구리를 한 자루를 샀다. 매일 백 마리씩 푹 고아 뽀얀 국물을 수시로 드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얼굴 에 화색이 돌고 기운도 차리셨다. S의 시어머니는, ‘얘 아가야 그동안 내가 마신 닭이 도대체 몇 마리냐?’ S의 어머니는 그동안 닭을 고아 드린 줄 알았던 것이다.
S는 양심 고백을 하였다.
“ 어머니 죄송해요. 건 개구리를 사다 고았어요. 원기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요. 잘 잡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니다, 아가야 고마운 건 나다. 네 깊은 속은 내가 잘 안다. 너도 몰골이 아닌데 같이 마시자!”
S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S는 차마 삼촌일로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값이 싼, 건 개구리 탕을 해 드린 것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S의 시모가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하였다. S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부탁이 있어요. 스님과 의논하시면 혼령 결혼식을 시켜준다고 해요. 삼촌이 결혼도 못하고 총각으로 갔으니 불쌍해서요.”
당신은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네 마음이 그렇다면 아버지와 상의해보겠다’ 하시며 고맙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S는 집 근처 절에 삼촌의 위패를 부처님 옆에 안치 시켰다. 그 후 삼년동안 기일이면 찾아가 제사를 지내 주었다. 집에서 혼령 결혼식에 대한 소식이 없자 S는 삼년이 지났으니 빨리 추진하라는 기별을 했다. 부모님은 아직도 수소문 중이라며 혼령 결혼도 짝을 구하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고충을 털어 놓으셨다. 시어른은 S에게 면목이 없다고 하시며 이일만큼은 부모 몫이라 생각하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너 할 도리는 다 했으니 다 잊고,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살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다. S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초가을 바람이 유달리 상쾌하다.

백낙은 2016-01-14 10:08	김경렬 작가님. 얼마나 감동적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읽었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지혜로 잘 풀어 나가는 s야 말로 진정한 모사입니다. 그 박수무당의 말이 아마 그대로 이뤄 졌을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주부 같은데 많은 사람이 단상에 서있는 S를 우러러 보고 있다. 말년은 재운도 있고 자녀들이 잘되어 노년 복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S는 마음이 너그럽고 덕이 많아 남편도 아이들도 아내 복 어미 복으로 잘 풀릴 것이라 했다."는 말 말입니다. 저는 지금 겨울 바람을 맞지만 유달리 상쾌합니다. 마니마니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건안하소서.

김경렬 2016-01-14 12:37	위원장님께서 졸작을 보시고 감동적이라 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막 7부를 끝냈는데 서재에 올리는것은 6부로 끝낼까 합니다. 아직 20여부가 남아 있습니다. 7부 부터 S의 제2 인생이 시작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로 뛰어든 직장 생활이 전개 되는것이지요. 올봄에 탈고를 목표로 작업 중입니다. 수필 서재는 가끔씩 가벼운 산문시로 대체해 볼까 합니다. 항상 기를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6-01-15 22:30	김경렬작가님! 상세하게 그려주신 "빛나는 흔적들-6부" 까지 너무 감동으로 배독했습니다. 멍하니 생각해보아도 현실보다 더 감동깊은 소설속의 한편으 드라마 였습니다. 작가님 드라미틱한 소설로 대박일것같네요 늘 좋은글로 감동 주시길 기대합니다. ^^ 늘 건안 하세요 . 감사합니다.

김경렬 2016-01-16 01:13	정찬열 작가님! 여행 끝나시고 여독에 시달리지 않으셨어요?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 이셔서 엔돌핀이 매번 솟아나 면역력이 강해 지셨기에 건강 하신것 같습니다. s라는 여인의 다큐 논 픽션 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늘 즐거운 일만 가득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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