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5-04-13 12:38

ㆍIP: 100.xxx.46

봄이 오는 소리

연희동 김숙자

뉴저지의 봄의 시작은 서울의 봄보다 10여 일이 늦어지는 것 같다.
미국에서 처음 맞이하는 봄은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처럼 매섭고 몸을 움츠리게 한다.
꼭 겨울 추위가 몸부림치는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4월의 중순이 되니 앙상한 가지엔 작은
싹이 돋아 뾰족뾰족 나뭇잎의 색이 보일 듯 말듯 여기저기에 봄기운이 펼쳐지고 있다.

3월의 마지막 날,
많은 우여곡절 끝에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하였다. 꼭 그림 같은 작은 집이다.
집 앞의 자목련 나무에는 손들의 손가락 한마디의 크기만한 작은 꽃봉오리가 앙상한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생명을 부지한 것인가?'
뽀송뽀송한 솜털로 덮인 까칠한 벌레집 같은 꽃봉오리가 꽃잎을 오무린 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죽은 나무처럼 보여 꽃을 피울 것인가? 걱정스러웠다.
'밤낮으로 달리는 통행차량의 소음과 매연에 얼마나 시달리며 자랐을까?'
그러나 생명의 신비는 세월을 먹고 자라듯, 죽은 듯이 움츠렸던 검은 꽃봉오리가 조금씩 열리며
붉은 꽃잎이 얼굴을 내민다.

  지난해 8월 초, 미국에 올 때는 23Kg들이 가방 열 개를 가지고 왔건만,
8개월 동안 다섯 식구의 생활용품들은 왜 이렇게 많이 늘어났을까?
6개월 간 뉴저지에서 함께 머물었던 남편은 비자발급 문제로 지난 2월 5일 서울에 갔다.
두 달 동안 남편 없이 손자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다 쏟으며, 틈틈이 부엌살림과 옷가지의 짐을 혼자 꾸린 것이다.
3월 28일 뉴저지로 돌아온 남편은 14시간의 비행과 밤낮이 바뀐 시차 때문에 얼굴은 피곤으로 젖어있다.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남편은 다음날부터 딸과 함께 새로 이사 갈 곳의 집을 청소하고,
이틀 동안 소소한 짐을 모두 옮겨 놓았다.

3/31일, 아침 9시에 이삿짐센터에서 중형 트럭 한 대와 스페인 인부 4명이 왔다.
이들은 손발이 척척 맞아서 순식간에 2층의 아파트에서 짐을 트럭 앞으로 옮겨 놓는다,
남편과 딸이 그렇게 많은 짐을 옮겨 놓았건만, 중형 트럭에 남은 짐들이 한 차에 가득 찬다.
당장은 모두가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에 갈 때는 모두 버리고 가야 할 물건들이다.
이 쓰레기 같은 짐을 보며 무소유가 얼마나 마음을 자유롭게 하며 홀가분하고 영혼을 맑게하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이 육신마저도 버리고 가야 할 나의 존재 가치를 요즈음 들어 잘 알고 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어느 때인가는 불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 왜 그것들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며
소유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할까?'

영국의 시인 T. S. Eliot는 그의 시 荒無地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지만, 내겐 3월이 잔인한 달이었다.
딸은 갑자기 집을 구하느라 3월 한달간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가?
언어가 불통인 나는 동분서주하는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하는 처지가 더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딸은 바쁜 일정을 접은 채 인터넷과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서 낡고 헌 조그마한 이 주택을 구한 것이다.
새로 이사를 갈 집의 구조는 아래층에 거실과 부엌, 위층은 다락방이 두 개(대, 소), 욕실 겸 세탁장, 작은 창고 3개,
그리고 큰 지하실이 있는, 아주 작고 지은지 오래된 낡은 집이었다.
오두막집은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꾸며져 있었으며 공간마다 우리의 허줄구레한 짐으로 꽉 채워졌다.
일 년 간 대여비와 보증금조로 한 달간 대여비 금액 13개월 치를 합쳐서 $2만 5천(2천 7백만 원)을 선지급으로 하였다.

대충 집 정리가 되어간다.
손들은 위, 아래층으로 오르내리며 즐거워한다.
작은 손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 것을......,
먼저 살던 아파트에선 손들과 온 식구의 걸음걸이가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낮추어 옮기며 죽은 듯이 살았다.
딸이 뉴욕으로 학교에 가는 날, (화, 수, 목, 금) 새벽 밥을 지을 때는 물이 흐르는 소리, 설거지의 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이 조심을 하며 아침밥과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목욕과 화장실 사용 소리가 들릴까 봐 사용 후 모아서 물을 내려야 하고,
가족들의 대화도 마음을 놓고 할 수도 없었고......,
새벽잠이 없는 노부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목소리 낮추고 소곤대던 지옥 같은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50여 년 전에 지은 방음장치가 안된 건물(아파트),
위 아래층 모두가 사람의 움직이는 동선을 감지할 수 있었던 아파트였다.
위층에선 아래층 러시아인의 기침 소리까지 들리고,
아래층에서는 위층의 손자들 떠드는 소리를 다 들어야만 한다.
거실, 방, 부엌 옆의 Living Room에 90% 이상을 카펫으로 깔았지만, 나무마루는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린다.
아래층의 러시아인은 너무 민감하여 손자들의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조용히 하라는 사인으로 틈틈이 천장을 두드린다.
'그동안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조심을 하며 불편한 생활을 하였던가?'.
그러나 추운 겨울에도 반소매 옷을 입어도 추위를 모르고 살았던 난방시설이 잘된 아파트임을
지금 이 주택으로 이사를 한 후 실감하고 있다.
아파트가 넓었고 좋은 점도 있는 있는 곳이다.

이 주택도 50여 년 전에 지은 집이다. 불편한 곳도 많지만, 마음은 편할 것 같다.
손들은 밤이나 낮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떠들며 놀 수가 있다.
또 여름이 오면 친손들이(손녀, 쌍둥이 손자) 할머니 집에 와서 마음 편하게 놀 수도 있는 자유로운 단독 주택이다.
노부부는 이 작은 오두막집에서 내년 3월까지 마음 편히 외손들을 돌볼 것이다.

  8월 20일경, 큰아들 가족이(다섯 식구)뉴욕으로 유학 오게 된다.
큰아들은 뉴욕에 있는 코넬 대학 부속병원에서 호흡기 내과 교수로 1년간 연구활동을 할 계획이다.
요즘 큰아들과 며느리는 미국에 유학 오는 준비로 몹시 바쁜듯하다.
일 년간 머물 거처와 아이들 학교문제는 딸과 할아비가 준비를 하고 있지만,
서울의 집 정리, 다섯 식구의 대이동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먼곳에 와서 일 년간 고생할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이 아려진다.
그러나 늦은 봄이 이제사 시작되었건만, 먼 여름(8월)을 기다린다.
아들의 고생도 안스럽긴 하지만,
아들네 가족을 곁에 두고 친손들을 볼 수 있다는 노부부의 기쁨이 더 큰 것을 어쩌랴!.
노부부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해결하는 미래의 삶을 기다리는 것이다.

집에서 3분 거리엔 River Edge Station이 있다.
뉴욕 Pen Station까지 가는 통근 열차가 수시로 지나가는  River Edge Station이 이웃하여서 교통편의를 제공한다.
기적 소리가 울릴 때는 어릴 때 친정 동네에서 듣던 기차의 기적 소리가 회상된다.
기차의 앞머리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한 기적 소리를 남기며 달리던 새까만 기차,
그 기차 위엔 어찌나 사람이 많이 탔던지......,
교통수단이 열차나 버스뿐이었던 50~60년대 초의 시골 풍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화물차량까지 승객이 가득 탔던 열차의 차량 수를 한참을 세다 놓치곤 했던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이 삶의 한 구석에 지금도 남아있다.

딸은 기차를 타고 뉴욕에 가자고 한다.
뉴욕에 있는 포담대학교에 간간이 기차로 통학하는 딸은 아주 낭만적이고,
속력이 정확하여 버스보다도 도착해야 할 시각에 실수가 없다고 한다.

딸은 이참에 노부부에게 호흡기내과 의사인 큰아들이 일 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할 코넬대학 부속병원을 안내하겠단다..
일요일(4/6) 아침 10시에 우리 가족은  River Edge Station으로 갔다.
기차의 내부는 가죽으로 된 3인승 소파와 2인승 소파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놓여 있다.
다섯 차량으로 연결된 기차이며 승차요금은 버스와 비슷하다.
뉴욕까지 4 정거장을 거친다.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기 직전의 Secaucus Station은 환승 코스 정거장으로 규모가 아주 크며 복잡하였다.
허드슨강 건너에 펼쳐진 뉴욕의 다운타운이 그림처럼 펼쳐저보인다.
이곳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해야 한다. 다리만 건너면 뉴욕이다.
이 열차를 이용해야 할 큰아들이 걱정된다. 짧은 거리지만 복잡한 코스, 아침에 얼마나 바쁘게 서둘러야 할까?

뉴욕의 Pen Station에서 내린 우리 가족은 42~48번가에 있는 유엔본부 부근으로 향한다.
딸은 지난 가을에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부장판사의 점심 초대를 이 태국식당에서 받았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식당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탔다.
코넬대학 부속병원까지는 세정거장의 거리이다.
양쪽으로 높이 솟은 빌딩과 넓은 도로가 아주 깨끗하고 잘 정리되었다.
우리 가족은 69번가의 중심에 웅장하게 펼쳐진 거대한 코넬 병원 건물 규모에 압도된다.
가슴이 뿌듯하고 처음 보는 이 큰병원에 애착이 간다. 큰아들이 근무할 병원이라 친근감이 드는 것이다.
큰아들이 이 큰병원에서 잘 적응하며 새로운 의술을 많이 체험하고 익혀
더욱더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을 마음 깊이 기원한다.
노부부는 큰 아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해진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월은 흘러서 우리 집 앞의 자목련 나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꽃봉오리가 커진다.
하나둘씩 볼그레 꽃잎 여는 꽃봉오리가 손들의 통통한 볼처럼 아름답다.
시간이 주는 이 아름다움도 서서히 사라질 때면 또 다른 아름다운 신록이 우리 앞에 설 것이다.
이렇게 세월은 삶의 모습은 각양각색의 풍경으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우리는 다양한 풍경 속에서 싫든 좋든 쫓아가게 되고,
또 벗어난 나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더디게 오는 뉴저지의 새봄이나 무더운 여름도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세월의 큰 선물이 되겠다.

                                                                2015년 4월 13일(월)    뉴저지에서 Kimsj

코넬대학 부속병원에서(2015년 4월 5일)

백낙은 2015-04-13 19:30	김숙자 작가님. 다정한 두 내외분의 미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엿보았습니다. 자녀들을 잘 두셔서 정맗 행복하시겠습니다. 두 내외분도 다정하게 보이고 손주들도 보기 좋습니다. 언제까지 거기 계실지 모르지만 계시는 동안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 수필가 문학서재에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화창한 봄날에 두 분 건강하시고 향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샬롬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수필소설분과위원회 회장 황우 백낙은 배상.

김경렬 2015-04-13 19:54	김숙자 작가님! 작가님의 미국 생활이 마치 제가 미국에 있는것처럼 느껴집니다. 화목하신 가정에서 노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자주 그곳 소식을 전해 주시리라 믿고 또 다음글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순향 2015-04-15 20:02	작가님의 소식을 듣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건강 잘 챙기시고...미국 생활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나실 때..언제나 소식도 전해주시구요..~ 서울은 온통 꽃동산이랍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박정근 2015-04-18 11:41	김숙자 작가님 수필 서재에서 인사 드릴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국 생활의 면면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계시는 동안 건강히 잘 지내시고 늘 평안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김숙자 2015-04-19 16:20	《Re》백낙은 작가님 , 고맙습니다. 요즈음 이곳 저곳에 작가님의 좋은 글향에 도취되어 재미와 용기를 갖게 됩니다. 바쁘신 걸음에도 저에게 까지 오셔서 좋은 격려 말씀 주시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백낙은 작가님, 언제나 즐겁고, 행보하세요.

김숙자 2015-04-19 16:27	《Re》김경렬 님 , 김경렬 작가님, 반갑습니다. 처음엔 남자분인 줄 알았지요. 작가님의 글을 읽곤, 반갑고, 좋은 글에 도취되고, 또 읽어보고, 고맙습니다. 늘, 즐겁고 행복한 나날 속에 좋은 글향 꽃피우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숙자 2015-04-19 16:34	《Re》이순향 님 , 안녕하세요? 무척 반갑습니다. 문학의 여울목을 기웃거리며 작가님의 안부가 궁굼했습니다. 무척 바쁘시죠? 5월 초에 서울에 갈 예정인데 시간되면 한 번 뵙고 싶네요. 이순향 작가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숙자 2015-04-19 16:41	《Re》박정근 님 ,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박정근 작가님의 글을 읽고(엄마 같은 누님, 어머니의 뒷모습) 가슴이 뭉쿨했지요. 작가님의 서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좋은 글 속에 한참을 머물고,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박정근 작가님, 고맙고요, 행복 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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