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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10-15 17:05
ㆍIP: 223.xxx.11
베팅 (9회)
 
 그가 소개해준 자리는 경비업체 용역이었다. 기본적인 업무는 말 그대로 교대로 경비
 
를 서는 것뿐이었다. 하루에 기본 수당은 15만 원 이었지만 그건 원청에 해당하는 경우
 
고 제일 큰 경비업체에서 하청준 것을 다시 재하청을 주는 갑, 을, 병, 정의 관계였다.
 
정의 위치였던 우리는 온갖 수수료를 제하고 8만 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고작 4만 원이 조금 넘는데 다른 일 없이 24시간 맞교대로 경비
 
를 서기만 하는 일에 그 액수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다음날 교대하러 온 점장에게 오늘부로 알바를 그만둔다고 말했다. 개새끼, 소 새끼,
 
말 새끼 온갖 새끼들이 나오더니 시급 올려주겠다며 인생 치사하게 살지 말라고 한다.
 
심장이 쿵쾅쿵쾅 울렸다. 머릿속에 여러 새끼들이 떠다녔다. 안녕히 계세요. 뒤돌아보
 
지 않고 뛰어갔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달렸다. 심장 끝부분이 콕콕 찔리는 듯 아파왔
 
다. 내가 나쁜 놈이다. 오늘은 내가 나쁜 놈 역할을 한 것이다. 익숙지 않은 역을 하려다
 
보니 이렇게 심장이 아픈 것이라 생각했다. 길거리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비난
 
하는 듯했다.

 선배가 알려준 주소대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별다른 인사나 소개도 없이 곧장 주차장
 
의 승합차로 향했다. 흰 셔츠와 잘 다린 검은 바지를 입은 차림의 남자들을 만났다. 서
 
로 뭔가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며 승합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가다 서다 한 차는 강남 어딘가의 빌딩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리자 멀리서 선배
 
가 웃으면서 손짓했다. 오늘은 일단 하루 정도 다른 곳으로 지원 나가는 일이라고 선배
 
가 설명해 주었다.

 일하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라며 여러 대의 관광버스를 가리켰다. 버스에 올라타니 자
 
기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사람들이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처음엔 다들 마
 
약이라도 한 줄 알았다. 하나같이 눈빛은 흐리멍덩하고 꿈을 꾸는 듯 잠을 자는 듯 아무
 
것도 안 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자세히 보면 그냥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억지로 자야 했고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자코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니 사실 몇 분일 수도 있었다.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제멋대로 한없이 길게 늘어졌기 때문이다. 답답하여 잠깐 버스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딱 봐도 팀장급처럼 보이는 사내가 버스에 올라왔다.

 “돼지새끼들아, 이제 일어나. 긴장해라. 바로 투입된다.”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청년의 머리통을 퍽 소리 날 정도로 세게 내리치며 계속 소리쳤
 
다. 모두 어리둥절한 채 버스에서 내리니 그 앞에 붉은 깃발들이 나부꼈다. 같은 색의
 
머리띠를 한 사람들이 춤추고 있었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깃발이 물고
 
기가 되어 허공을 유영했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큰 소리에
 
이어 여러 가지 함성이 뒤엉켰다. 확성기가 울렸다.

 “불법적인 용역깡패는 당장 사라져라. 용역깡패는 불법이다. 용깡놈들 너희들은 양심
 
도 없느냐.”

 용깡, 용깡 무슨 새로 나온 과자 이름인 줄 알았다. 정신 못 차리고 채 뒤에 어정쩡히
 
서 있자 팀장의 한바탕 욕설이 저절로 대열을 만들게 했다. 그와 같은 옷을 입은 이들이
 
이열종대로 섰다. 뭔지 모를 긴장감으로 목이 타들어 갔다. 땀이 연신 흐르는 얼굴을 닦
 
을 생각도 못한 채 앞만 바라보았다.

 그럴 때 머리 위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밀어버린다. 명심해, 우리는 사측에서 합법적으로 관리를 위임받았다. 저들은
 
불법노조, 불법 빨갱이들이야. 밀어, 밀어버려. 대신 다치면 너네 손해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밀고 옆으로 갔다가 우르르 몰려가서 붉은 머리띠 한 사람을 들었
 
다. 선배가 그에게 소리쳤다.

 “한쪽 다리 들어. 밖으로 내보내. 때리지 마. 손대지 마.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
 
차피 이 새끼들 아무것도 못해.”

 “정당한 권리를 막지 마라. 이 깡패 새끼들아. 이 개 돼지만도 못한 용깡놈들아.”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어떻게 이렇게 서로 모순된 말들이 부딪치고 있을까.’
 
 선우는 순간 편의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익숙한 곳이 그리워졌다. 그와 선배는 붉은
 
물고기들을 그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로 열심히 내던졌다.



 
이름아이콘 주응규
2014-10-16 14:19
회원사진 		이인철 작가님 가을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날에 좋은 글향 가슴에 담아봅니다
좋은 글향 가득 내리는 게절 누리시고 아침 저녁 기온차가 심합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이름아이콘 이인철
2014-10-19 19:29
회원사진 		《Re》주응규 님 ,
바쁘신 중에도 부족한 서재 방문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주 작가님께서도 이 가을에 건강하시고 멋진 작품 많이 산고
하시길 바랍니다.
주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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