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지금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채소가 한겨울에도 식탁을 풍성하게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집집마다 겨우내 먹어야 했던 김장김치가 신맛이 들 즈음하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파랗게 새싹을 내민 봄나물이야말로 삼시 세끼 먹어야 했던 김치에 질린 입맛을 되찾는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지랑이 이는 들녘에서 따사한 봄볕을 받으며 나물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은 우리의
정서에 곱게 자리해 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의 정경으로 자리 잡았다.
마트에 가면 깨끗이 다듬어진 야채가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어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봄이 되면 나물 캐는 아낙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을 보면 까칠해진 혀끝을 자극하던
쌉싸름한 산나물의 추억을 잊지 못해 잊혀가는 추억을 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아닌 코로나의 역습으로 웬만하면 외출을 삼가라는 금족령이 내려진 탓에 방콕하는 날이 많다.
이층 서재에서 글을 쓰다 봄볕이 가득한 창밖을 내려다보니, 마스크를 쓴 아낙 몇이 나물을 캐고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나물 캐는 모습은 따사한 봄볕 아래 나물 캐는 아낙이라는 목가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쭈뼛쭈뼛 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할까, 아낙들은 나물을 캐는 자신들의 행위가 떳떳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창문을 통해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냥 돌아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낙들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가며 여러 곳에서 본 경고문을 떠 올렸다.
산나물을 무단채취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
사람을 죽여도 7년도 안 되는 형을 때리는 현실에서 나물 좀 캔다고 7년 형이라니? 봄이면 나물을
캐 입맛을 돋우던 백성들의 정서에 매몰차게 들여대는 법의 잣대가 이건 심한 데 싶기도 했다.
나물을 캐며 쭈뼛대던 아낙들도 그 경고문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까짓 나물 좀 캔다고 정말
벌이야 주겠어, 하는 심정에 되돌아서지는 않았겠지만, 힘없는 백성은 원래 겁이 많은 법이다.
생각난 김에 텃밭 주변에 널린 냉이 몇 뿌리를 캤다.
잘 씻어서 끓인 냉잇국의 쌉싸한 쓴맛이 혀를 자극하며 봄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워 마스크를 쓰고도 쭈뼛쭈뼛 나물을 캐던 아낙의 모습이 떠올랐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던 이상화 시인의 시도 떠 오르고,
이 땅에 살던 이가 언제 두발을 마음껏 뻗고 기지개 켜던 봄날이 있었던가?
그래도 봄은 늘 잊지 않고 이 땅에 찾아왔고, 보릿고개의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은 적은 없다.
봄이다. 봄이다.
마스크,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마스크를 한 사람이 종종 보여 녀석들 웬 유난이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젠 한국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출입이 제한되는 곳도 많고, 대면하는 상대방이 꺼린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들어내기에 자신보다도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마스크 쓴다고 걸릴 역병이 안 걸릴 거라는 믿음이 없기에 마스크 품귀는 남의 일이었다.
종일 마스크를 쓸 일도 없고, 잠깐 외출할 때 사용한 마스크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같은 마스크를 계속 쓰다 보니 자식들이 질색했다. "아빠 같은 마스크를 도대체 며칠을 쓰시는 거야?"
할 수 없이 가까운 약국에 생년월일을 등록하고 줄 서는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곳 옥천면 인근에는 약국이 한곳밖에 없다. 하루에 125명 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하니 2시에
판매한다는 안내문은 무시된 채 정오도 되기 전부터 줄을 서야 나마 차례가 겨우 돌아온다.
(일주일에 개인당 2매라지만, 아마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개인당 한 개 정도나 돌아올지 모르겠다.
절대 숫자가 부족하니 가구별 배급을 못 하고 여러 사정으로 포기하는 사람을 감안하고도 줄 선 사람
도 선착순이라는 불편한 제도를 도입했으리라 여겨진다)
수십 년 전에는 줄 서는 일이 생활의 일상이던 때도 있었다.
동네 공동수도에서 물 받으려 줄 서던 일,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표 사는 것도 차 타는 것도 줄을
서야 했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 일이고, 시멘트 파동으로 집을 짓다 말고 시멘트 배급표를 들고 배급
창고 앞에서 줄 서던 일은 노태우 씨가 집권하던 시절의 일이니 다 추억 저편의 오래전 일이기도 하다.
지나고 나면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고운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마스크 사겠다고 줄 서는 일도
생각하기 나름이라 좋게 마음 먹기로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나, 주민등록증이 없는 애들 외엔 대리 수령이 불가하다 하는데 직장인은 어떻게
마스크를 사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어쨌든 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마스크를 쓴 것을 보면 길은 있나 보다.
줄 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게의 경우 나이가 있으시거나 가정을 지키는 분으로 보였다.
골목이 바람길이라 춥다고 따뜻한 양지쪽으로 줄을 바꾸자는 말에 우르르 햇볕 쪽으로 몰렸다가.
그쪽은 차들이 지나가니 비켜서야지요, 한마디에 다시 우르르 줄을 바꿔서는 사람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어떡하든 살아야 하니 마스크도 사야 하고, 줄 서는 곳이 추우니 햇볕도 받아야 하고, 참 사는 게 어렵다.
약국에서 줄 선 사람들에게 요구르트를 한 병씩 돌렸다. 약국도 할 짓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군에서 지원 나온 군인들이 약국의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마도 개인당 한 주일에 2개
씩이라는 배분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군에서 지원하는 것이리라,
(세계 정상이라는 기술을 한낱 마스크 공급 관리에 쓴다는 현실이 민망하기 만 하다)
앵앵! 경찰 순찰차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마이크로 차 빼라는 경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시골은 주거지가 넓게 퍼져있어 약국까지 걸어 올 거리가 아니다. 차를 타고 오신 분들의 차가 도로가
에 주차해 있었고, 미처 빼지 못한 차를 경찰이 촬영하기 시작했다. "주차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차가 많이 다니지도 않는 길이고, 인도 쪽에 바짝 붙여댄 차는 통행에 지장을 준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설사 다소 불편하다 하더라도 비상사태에 버금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누가 불만을 할까 싶다)
비상사태에, 군까지 나서 대민 사업을 돕고 있는 마당에, 주차위반 딱지 떼겠다는 경찰이 딱하다.
마스크 사겠다고 몇 시간을 줄서 기다려 달랑 마스크 2개 집어 들고,
-주차위반 과태료 납부 통지서-가 날아들면 어떤 심정일까?
대한민국, 코로나, 마스크, 과태료,
봄날은 따사한데, 아!
장선희
2020-03-22 17:22
박목철 작가님~글 잘 보았습니다
산나물~
봄이 되면 냉이 캐던 시절이 있는데
잠깐 추억으로 떠올리며 나물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요즘은 마트나 시장에 가면 지천인 나물들이 있지만
전에 느꼈던 향이 아니고 맛도 다르다는걸 알게됩니다
나물 캔다고 무단 채취형이 7년이나 된다니
인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스크~
마스크를 사다가 주차위반에 과태료까지
정말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요즘 세상이 편한 것도 있지만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서 또
확진자가 나오나 두렵기만 합니다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목철
장선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코로나 덕에 글을 쓰게 되나봅니다.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방콕신세 입니다. 냉이 국을 끓여 먹었는데, 입맛이 변했는지 쓴맛 만 강하게 느꼈답니다. 마스크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사기 어렵더군요, 늦게 갔더니 품절이라 헛걸음 했답니다. 못쪼록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3/23 12:08
정찬열
2020-03-22 18:57
소운 작가님 그간도 잘 계신지요
집필해올려주신" 마스크와 산나물" 의미깊게 배독했습니다.
저역시도 변변치 않은 월급없는 자녀들을 도와주는 사무실
출근에 언제 마스크 살 시간이 없어 어제 토요일을 기헤
3급 장애인으로 일자 제한이 상관 없는 약국엘 가니
약국마다 어느곳은 오후 1시에 어떤곳은 오후2시에
사전에 줄을 서있는 것같아 포기하고 산해을 갔다
돌아 오는길 던네 약국앞에 가니 "마스크 품절" 이라는
안내표시를 해놓았드군요
상대방의 인사 차원에서 출퇴근에만 쓰고 그것도
자가용내에서는 벗어두고 하니 일주간을 쓰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박목철
이곳에서 장애인 한분이 휠췌어를 타고 뒷줄에 서니 모두가 앞자리에 서시라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웬만하면 배달을 해 드리는 게 도리인듯 싶은데, 암튼 암울한 세상에 살기도 두렵습니다. 작가님게서는 늘 긍정적이시고 밝으신 코로나가 감히 접근하기 어려울듯 싶습니다. 어려운 세상,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하시기를 빌겠습니다.
3/23 12:12
한영택
2020-03-22 22:55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시지요?
‘코로나19’가 빚어낸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네요
요즘은 마스크를 안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싫어할뿐 아니라
매일 마스크를 사기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야하는 희얀한 세상입니다
화창한 봄날에 같이 바람 쐬러 나다니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요
자기 임무에 충실 한다지만 경찰도 기본 양심은 있을 텐데~~~
마스크 사러갔다가 주차위반 스티커, 황당하네요
작가님의 좋은 글에 다녀갑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박목철
한영택 작가님, 반갑습니다. 손주가 하도 답답해 하길래 사람이 없는 강번 산책길을 나섰는데, 할머니 세분이 지나다가 손주가 귀엽다고 자꾸 말을 시키는 통에 난처했습니다. 아이를 얼른 데리고 자리를 떳습니다 만, 참 난처하더군요, 역병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마 문학인들은 혼자하는 일이라 다행인듯 싶습니다. 한동안 글을 멀리했는데, 요즘은 글쓰기 외에는 할 일도 없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한영택 작가님,
3/24 11:25
전병일
2020-03-23 09:34
박목철 작가님
코로나에 마스크 전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저도 어제 처음으로 농협마트에서 마스크2게를 3,000원에 구입햇는데
상품이 어린아이것처럼 너무 적어요
그래도 줄을 서지 않고 구입해서 다행입니다
마스크2장 구입 하려고 주차과태료 너무 억울할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주차단속은 과잉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쪼록 건강관리 잘하시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감사합니다...
박목철
전병일 작가님 반갑습니다. 농협에서도 마스크를 파는군요, 저는 마스크가 별로 긴요하지 않지만 개학하면 학교에 갈 큰 손주를 위해 줄을 선답니다. 녀석 평상시에도 늘 독감을 학교에서 옮겨 오곤했답니다. 못쪼록 건강하시고 행복한 봄날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3/24 11:28
김상화
2020-03-23 23:58
반갑습니다. 박목철 작가님
봄이 되면 따뜻한 햇볕 받으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쏘이기 겸
아낙네들은 나물 뜯는 것이 하나의 소유 거리였지요
산행을 할 때도 여성분들은 나물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질 않습니다
남성과 다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로 19로 인해 줄을 서서 배급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북에서 배급받을 때 이렇게 줄을 서서 받지 않을까요
선진 대열에 선 대한민국이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ㅎ
박목철 작가님
코로나로 인해 불편이 많으시지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을 나가면 쳐더보는 사람도 많고 피하려고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김상화 작가님, 반갑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이날지 걱정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산다는 현실이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외면하고 있지만, 영업이 중단된 업종이 한둘이 아닙니다. 집세는 어떻게 할건지 대책이자 있는건지 의문입니다. 우선 반가운 문우님들 언제 뵙게될까 현실이 우울합니다. 못쪼록 건강 잘 지키시고 반갑게 뵙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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