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비,
세월이 하 수선하니 계절도 헷갈리나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요즘의 날씨이다.
겨울에 어쩌다 비가 내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진눈깨비가 섞이거나 아니면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흡사 여름에 내리는 비처럼 말 그대로 주룩주룩 내리는 겨울비를
본 적이 기억에 없는 것 같다. 겨울비는 내리면 얼어붙어 미끄러운 빙판길로 변해 혹 낙상이라도 할까
하여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겨울에 웬 비? 하며 반기지 않게 되는 게 겨울비이다,
근래 들어 겨울비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듯 자주 내린다.
종일 내리는 빗물이 도랑을 만들고 소리까지 내며 흐르는 모양을 보며 겨울 맞아? 하는 생각을 했다.
옛 어른들은 겨울이 춥지 않으면 많은 걱정을 하셨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데!"
지금처럼 생활 환경이 좋지 않던 시절의 겨울은 삶이 버거울 만큼 혹독했다. 난방도 그렇고 먹거리도
그렇고 특히 추위를 막아 줄 옷이 변변히 없었다. 요즘 개그 프로에 웃기려고 등장하는 야전잠바 내피
정도면 최고의 방한복으로 대우받던 귀한 물건인데 바보스럽게 보이는 소품으로 쓰이는 것을 보며
따라 웃기에는 지난 세월이 지켜보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 아무튼 춥지 않은 겨울을 반겨야
함에도 겨울이 덜 추우면 걱정하는 어른들을 보며 "안 추워서 좋은데?" 하는 의아함이 늘 있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보관을 걱정하는 형편이고, 풍년이 들면 오히려 쌀값 걱정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려고 동남아 품종과 교배 해 만든 통일벼 계통의 쌀로 배고픔을 덜던 시절도
있었다. 푸석거리고 밥맛이 없어 보다 형편이 나은 분들은 외면하던 쌀이 통일미이지만, 밥을 굶는 절대
빈곤층에게는 고마운 쌀로 기억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쌀이 통일미이다.
변변한 농약도 없던 시절이니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야 해충도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고, 다음 해
농사는 태풍이나 계절의 변덕만 피하면 된다는 심정이, 자신의 고통쯤은 하는 심정으로 추운 겨울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고운 마음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훗날 철이 들고서이다.
겨울이 언제였나 싶게 해동되어 푸석거리는 텃밭 위로 내리는 겨울비가 스며들고 있고,
파릇한 잎새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며,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농사 걱정하는 세상은 아니라 해도, 병충해 없이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農者天下之大本- 비록 경제적 가치는 낮아졌다 해도 풍년은 한결같은 간절함이 아니었는가?
2, 동행,
네 살배기 손주 녀석과 놀다 저녁에 데려다주고 나면 나른한 피로감이 몰려오곤 한다.
놀던 아이는 집에 가자면 안 간다고 떼를 쓰고 이를 달래려면 인근 콘도의 오락실에 가자고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한아 우리 총 쏘러 갈까?" 어떤 때는 "할아버지 조금 더 놀고" 하거나
"그러자!"라면서 흔쾌히 따라나서기도 한다.
(애들은 사물을 받아드리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총 쏘는 시늉을 하고 놀면서
리로우드, 리로우드 하길래 자세히 보니 실탄을 장전하라는 reload를 듣고 배운 것이다}
오락실에서 총을 쏘고 자동차 운전까지 하고 나서도 집에 데려가 인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할배 손을 꼬옥 잡고 같이 들어가자고 떼를 쓰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려면 늘 마음이 짠하다.
끌려 들어가며 할배의 도움을 바라는 모습은 한동안 지워지지 않는 잔상(殘像)으로 남게 마련이다.
아이를 떼어 놓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놀고 간 흔적이 방안에 가득하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모두 꺼내 늘어놓고 놀다 간 흔적을 치우는 게 그리 싫지만도 않다.
화장실 바닥에 놓인 앙증맞고 작은 슬리퍼를 보면 행복감이 들 정도로 손주의 흔적은 모두 흐뭇하다.
대충 치우고 나면 나른한 피로감이 느껴지며 술이라도 한잔, 하는 욕구가 슬그머니 솟게 마련이다.
저녁을 거의 먹지 않는 습관이라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는 거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딸이 갑자기 두통이 심해저 병원에 간다며 운전을 해 달라고 했다.
술을 마셔 운전이 어렵다고 대신 애들을 데리고 자겠다고 보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초등학교 4학년 형과 막내 손주가 떠들썩하게 집안에 들어섰다. 녀석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데 아랑곳없이 할배 집에서 잔다는 사실이 즐거운 모양이고, 들떠 있었다.
정리해 둔 장난감들을 다시 바닥에 펼치며 신나있는 손주의 모습을 보며 또 마음이 짠했다.
녀석들 피붙이도 주변에 별로 없는데, 막내가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할배가 살아있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쇠잔(衰殘)해지는 체력을 돌아보니 착잡했다.
"그만 놀고 자야지" 음악을 틀어주고 불을 끄고 얼마 안 있어 가볍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혹 이불을 차내 감기라도 들까 하는 마음에 쉬이 잠을 잘 수가 없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차낸 이불을 덮어주며 자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꼬옥 안아 주며 볼을 맞대 보았다.
이쁜 손주를 주셔서 노년의 할배를 외롭지 않게 하고, 좋은 동행을 주신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래 녀석의 주변을 지켜 줄 동행이어야 하는데, 자신의 여명(餘命)을 걱정하기도 처음이다.
할배의 걱정을 알기나 할까? 녀석들 노느라 피곤했는지 가볍게 코를 골았다.
수면 음악으로 튼 빗소리 음악과 코 고는 소리가 섞여 잔잔히 퍼져 나갔다.
이미 여명이 밝아 오는데, 아! 졸리다.
정찬열
2020-02-20 00:09
오랜만에 서재에서 인사 올립니다.
그간도 별고 없으신지요
이곳 전라도에는 올려울들어 첫눈이자
강추위속에 제법 많은 눈을 내렸습니다.
겨울비가 내리는 것은 올려울 내내였습니다.
함께 올려주신 "동행" 옥고를 소중한 마음으로
배독하고 갑니다.
항상 가내 건안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박목철
정찬열 작가님, 서재에서 뵙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든든한 길 동무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곤 합니다. 못쪼록 건강하시고, 좋은 벗으로 오래 같이 하고 싶습니다. 하나도 건강 둘도 건강입니다. 늘 행복하세요, 정찬열 작가님,
2/20 08:16
신영애
2020-02-20 14:13
박목철 감사님..
안녕하세요.
아름답고 따뜻함이 전해오는
겨울비와 동행 두편, 잘 배람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겨울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농사를 크게 짓는집으로
시집오고보니 겨울은 어느정도 추워야
다음해 농사도 좋다는 얘기를 듣게되었답니다.
그다음부터는 추운겨울이 되면
'내년 농사는 풍년이겠네.'하고
어줍잖게 한소리도 해보게됩니다.
아, 동행..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저에게도 느껴지는듯하여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왕관바이러스가 아직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편안한 날 되세요~
박목철
신영애 작가님 반갑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장터가 폐쇄 될 정도로 살벌합니다. 못쪼록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게 될 봄행사를 기다리겠습니다. 갖혀 지내는 환경이 어쩌면 글쓰기에는 좋은 일이라고 자위 해 봅니다. 평안하신 날들 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3/2 14:26
장선희
2020-02-20 16:22
박목철 수필 작가님 안녕하세요?
엊그제 눈도 오고 비도 오고 나니
벌써 땅 속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보이더군요
얼마나 예쁜지 반가움에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요즘 손주 때문에
더 많이 행복하심에 어느정도 실감합니다
우리는 점점 늙어지는데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
재롱부리는 생동감에
어느덧 동심이 되어 있을 때가 있지요
덕분에 젊게 사는 활력도 생기게 됩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과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박목철
장선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봄 행사가 연기돼 아쉽습니다. 못쪼록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취약층이라고 연신 겁 주는 통에 움추려 든답니다.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3/2 14:30
한영택
2020-02-20 18:30
안녕하시지요?
작가님 서재 첫 방문 인사드립니다.
절대 빈곤층엔 겨울이 따뜻하면 좋겠지요?
지구온난화 탓도 있겠지만, 계절도 감각을 잃었는지?
한겨울에 비가 내리고 입춘이 지나서도 폭설이 내리고 하네요
요즘은 ‘코로나19’가 어지럽히니 겨울이 싫어집니다
사계절이 분명하면 좋은데 말입니다.
가까이 있으니 딸 손주 봐주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손주 돌봄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러 봅니다만 손주와 손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무튼 행복하시겠습니다
손주와의 행복한 시간 건강하게 이어가십시오
두 편의 작가님의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하시고 평안하십시오.
박목철
한영택 작가님 반갑습니다. 추가로 작가 등단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많이 접하게 될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봄행사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작가님,
3/2 14:32
김상화
2020-02-22 07:19
반갑습니다. 박목철 감사님
어제는 퇴근길에 비가 내려 옷을 흠뻑 적시고 집을 왔답니다.
바라는 눈은 오지 않고 비가 내리니 망령이 낳나 봅니다
겨울이란 작가님 글에서처럼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데
올해는 봄인지 겨울인지 구분을 못 할 절도로 따사로웠습니다.
작가님
코로나 때문에 활동하시기 힘드시지요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안심 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조심할 수밖엔 없습니다
작가님 언제 시간 내서 한번 뵙시다
서로가 바빠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인지 힘이 드네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늘 행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박목철
일정이 맞지 않아 서울시 행사 때 뵙지못해 아쉬웠습니다. 요즘은 혹 손주에게 해가 될까하는 우려에 외출을 많이 자제하고 있습니다. 저는 살 만큼 살았으니 하는 마음이었는데, 더 살아야 겠다는 핑게거리가 생긴 셈입니다. ㅎㅎ 빨리 코로나가 극복되어야 뵙게 될 터인데, 암튼 건강하세요,
3/2 14:35
전병일
2020-02-22 09:00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시작되더니 봄이 다가온
우수의 이부날 처눈이 그동안 참았던 눈 다내려
온천지른 덮었다
겨울은 추워야 이듬해 풍년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포근한 겨울을 보내고 올농사가 걱정 입니다
지구의 온난화가 가져온 절기인듯 합니다
손주를 보는 마음은 즐거움일 겁니다
아직 손주가 없어서 실감이 안나네요
코로나19 시끄럽네요
건강유의하세요
박목철
전병일 작가님, 반갑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또 한바탕 눈이 내리더군요, 그래서 또 한번 말도 글도 절대적이란 생각은 피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쳤답니다. 코로나로 세상이 온통 뒤숭숭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작가님,
3/2 14:39
김상훈
2020-02-25 02:29
인사만 드리고 갑니다.
눈이 좀 나으면 다시 찾아뵙지요.
더듬거리다 갑니다.
박목철
반갑습니다. 김상훈 위원장님, 저도 양쪽 눈 다 수정체를 교환하였답니다. 이 다음에 제 유골을 발견한 후세인은 눈알이 이상하다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참을 혼자 웃었습니다. 건강이 최고의 가치이지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위원장님,
3/2 14:42
김종덕
2020-03-04 16:25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세월의 흐름이 여러가지로 찾아듭니다. 어릴때의 겨울은 참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배가 고팠다는 것 보다는 넓은 대지위로 깃에 물젖은 참새 잡으러 헤매고 뛰어 다녔던 기억이 지금의 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되고 잇습니다. 손주, 후반의 동반자, 더욱 건강하셔야 겠습니다. 운동 열심히 하십시오.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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