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낱말은 확실치 않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런 의미의 시조를 배운 적이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낳으시다니? 하는 의문과 자신을 길러 주신 분이 어머니 외에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이 새삼 생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분이 어머니와
동격, 아니 더 상위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데 선뜻 동의하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남 앞에서 부인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 것을 극히 꺼렸다.
심지어는 먼 길을 떠나면서도 먼발치에서 눈인사나 하는 정도가 남자의 체통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나마 이 정도도 배운 사람들의 정서이고,
먹고 살기 바빴던 보통 사람들은 밖에서의 어려움을 술을 마시고 가족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많아 아버지가 출타라도 하면 가족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귀가를 긴장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으면, 마음속으로 빌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분들도 여럿 보았다.
나의 경우, 삼남 일녀 중 막내로 태어난 탓인지는 몰라도, 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거의 없다.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져 같이 산 세월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오래전 기억이라면 의사셨던 아버지를 따라 왕진을 가던 기억이다.
(당시는 교통편이 없어서 인지 왕진이 많았고 따라 간다는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셨다)
또 하나의 뚜렷한 기억은 장날의 풍경이다. 국민학교 뒤 솔밭에서 펼쳐지는 장터의 풍경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앞에 공손히 인사를 하곤 해서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꽤 높으신 분인가 보다 하는 마음에 으쓱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직접 기억이 많지 않은 내가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 기억이 자리 잡은 것에는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간접 정보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소학교(국민학교) 만 나와도 면서기를 하던 시절에, 어머니께서는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간호
학교를 나오신 인테리셨고, 황해도 연안에 처음으로 서양식 하이힐 구두를 선보인 분으로 소문나셨던
분이다. 그런 분을 머나먼 중국 대륙에 훌쩍 떨궈 놓으신 아버지께서는 말도 서툰 어머니에게 병원을
맡기시고 사냥이나 바람피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셨다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어찌 없었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돼 아버지는 아주 나쁜 아버지로 각인 되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조선인은 모두 중국을 떠나야 했다. (조선인은 모두가 일본 국적의 국민이었다)
우리 가족도 서울에 자리 잡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1, 4 후퇴 피난길에서 아버지와 우리 식구는
헤어지게 되었다.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던 시절이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던 시절이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자식 넷을 돌보시며 언젠가는 아버지가 찾아오실 것이니 그때까지 잘 참자고 말씀
하셨지만, 피난길에 달리 소득이 있을 리 만무한 우리 가족을 포함한 모든 피난민은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였다,
피난길에 직업이 있을 리 없어 수입원이 있을 리 없었다. 유일한 해결책으로 가구당 한 명씩 돌아가며
인근 마을을 돌며 쌀을 얻으러 다녔는데, (전라도 분들은 피난민을 따뜻히 대하는 온정을 베프셨다.
하지만, 많은 피난민이 연거퍼 동냥을 다니니 줄 곡식이 없어 점점 동냥길이 멀어지게 되어 한번 나서면
일주일 이상을 다녀야 했다) 당시 모든 분들은 만약에 남쪽에서 전쟁이 나 북쪽으로 피난 가는 사태가
생겼다면 다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들 하셨다. 그만큼 전라도 분들은 어려운 처지임에도 피난민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늘 전라도 사람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 식구 중 성인은 어머니뿐이라 장거리 동냥 길에 나설 사람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누님이 늑막염이 걸려 어머니께서는 병간호해야 했고, 싫다는 큰형이 등 떠밀려
동냥 길에 나서야 했다. 다른 건 다 해도 동냥만은 싫다던 13살 형은 공비가 나타난다 해서 피난민이 가기
꺼리는 섬이 인심이 좋다 해서 찾았다가 밀물에 쓸려 동냥자루를 쥔 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큰형을 잃은 아픔에 떨고 있는 그때,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큰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아버지께서는 망연자실 넋이 나가신 듯했다. (원래 죽은
자식이 똑똑하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큰형은 집안 일가가 모두 기대하던 수재였기에 정말 낙담이 크셨다)
난,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나와 형의 손을 잡고 인근 폐 터널로 가시더니
뜻밖에도 기도하자고 하셨다.
교인이 아닌 아버지가 나와 형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시며 한참을 흐느껴 우셨다.
그리고는 훌쩍 떠나셨고 다시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아버지께서 포항 인근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찾아 나섰고 아버지를 찾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셨다.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이미 아들 하나를 둔 상태로 아버지와 가정을 이루고 살고 계셨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혼은 꿈도 꾸지 않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사신 어머니와 우리 형제는 아버지를
가족에 대한 배신자라고 증오했고 가슴에서 지우기로 했다.
가족에게 따뜻한 애정 한번 주지 않으신 아버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지워 버려야 할 존재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 기억에서 가슴에서 영원히 지워 졌다. -가족을 배신 한 분 이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도 가지 않았다.
당신은 박 준(이복 동생)의 아버지이지 내 아버지는 아니니까 갈 이유가 없어서 였다.
천주교 어느 묘지에 안장했다는 소식은 친척을 통해 전해 들었지만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막내야 넌 아버지 젊었을 때 모습을 빼다 박았으니, 아버지께서 보고 싶어 하실 거야,
묘지에 한 번 찾아가 보려무나"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의 배신을 원망한 것이지 아버지를 미워하시지는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물에 빠져 죽은 형을 늘 아파하셨다.
잘 묻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동네 분들의 말씀을 위안 삼으시면서도 언젠가는 시신을 옮겨
따뜻한 곳에 안장하고 싶다는 소망을 놓치 않으셨다. 하지만 전쟁통에 희생된 사람이 어디 한 둘
이던가? 기억을 더듬어도 이름 없는 산야에 묻힌 묘를 찾을 길이 막막했고, 그래서 더 아파하셨다.
우리 형제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우시며 난생처음 기도를 하시던 아버지,
형의 비극이 아버지를 우리 곁에서 떠나게 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종종 하게 된다.
아마도, 큰 아들이 생각나 우리를 보는 게 힘드셨을 거라고 이해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어쩌면 두 분이 오손도손 서로를 의지 하며 해로 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선택, 그 선택을 용서하지 못하신 어머니와 우리 형제 들, 다 시대의 희생자 일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내게 그러라고 하셨는데,
정찬열
2019-06-08 20:47
소운 작가님 오랜 만입니다.
"아버지의 눈물" 가슴아픈 글을 배독하며
작가님께서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속에
삶이었다고 생각 해봅니다.
또한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시고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깊
은 마음 헤아려 하신말씀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더늙기전에
찾아나셔서 어머님께 묘지라도 함께 가시는 효도가 바람직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초여름의 무더위가 잠시 내린비에 소강상태입니다만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고 편안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박목철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는 처음입니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때도 있습니다. 어느 의미로 보면 아버지는 반면교사 였습니다. 나는 자식들에게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말입니다. 날씨가 무덥습니다. 작가님 께서는 더욱 힘드시겠네요, 힘 내시고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작가님,
6/9 12:05
김상화
2019-06-11 23:06
가슴 아픈 사연을 읽으면서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6.25로 인해 작가님께서도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심한 고생을 했지요
저 역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동이니까요
어머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아버님 산사는 꼭 다녀오시는 것이
도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러나 그것이 효도가 아닐까요?
작가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건강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작가님!
김상훈
2019-06-13 03:06
개인사 혹은, 가족사를 들쳐서
어느 누군들 영화 한 편 안 나오랴마는
작가님의 가족사 역시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新 여성이셨던 모친의 일생이 다 보이는 듯합니다.
그 어깨 너머로 펄럭였을 인고의 세월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부친에 대한 헤아림을 끝까지 품고 계셨으니
요즘 젊은 여성들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겠지요.
저희 집도 이북입니다.
평양에서 큰 목재상을 하셨던 할아버지 때문에
지주라는 이유로 모두 피난길에 올랐지요.
아무튼 오늘 드라마 한 편 잘 감상했습니다.
전병일
2019-06-14 12:07
작가님 안녕하세요?
어머님이 마음고생 심하셨것네요?
저도 아버님 작고후 편지를 1번 쓴적이 있거든요
살아생전에 잘못모신 부문이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아버님의 감정 마음에 담지 마시고 지워버리세요
그래야 내가 편안합니다.
더워지는 날씨 건강유의하시고
행복이 넘쳐나는 시간되세요~~^^
공지사항 
공지사항
소설.수필 메뉴
이달의 작가(예정)
박목철 수필가 문학서재 
정찬열
박목철 
김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