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이 대한민국을 온통 시끄럽게 하더니 새해 예산을 볼모로 한 극한투쟁이 결국은 국정원 개혁이라는 합의를 이뤄내긴 했으나 들여다보면 국정원의 무력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 건 국정원 비슷한 국가 기관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조직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벌써 전쟁에 패하고 국가적 운명을 다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영화로 엄청난 흥행을 거둔 007시리즈 같은 영화에서 보듯, 첩보 기관의 약간의 불법은 필요악이라는 인식도 있다.
-007등 00 번호는 국가를 위한 일에서 발생하는 살인도 허용한다는 살인 번호라고 소설에선 설정돼 있다.-
격세지감이 있다고 할만하다. 국정원의 모태는 중앙정보부이고, 초대 부장은 김종필 전 총리인데 예전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최고 정상에 자리했던 국정원이 지금은 검찰이나 경찰에도 불려다니는 별 볼 일 없는 신세로 전락해 있으니,옛 정보부는 국가 모든 기관에 요원을 파견하고(조정관이라 칭함) 실질적으로 그 조직의 모든 결정사항을 관장하는 힘의 중심이었다. 정부 각 기관 및 검찰, 경찰, 군, 지방행정기관 언론 심지어는 국회에까지 조정관이 파견되어 있었고 각 기관은 조정관의 눈치를 보며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니, 그 권력이 참으로 무소불위였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빠른 발전을 한 배경에는 정보부의 선 기능이 한몫한 사실도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모든 기관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려면 합의 도출이 대단히 어렵다.
이럴 때 조정관이 그 집단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판관 역할을 하여 업무가 순조롭게 처리되도록 했다.
이런 선 기능도 있지만, 그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못된 짓도 수없이 저질러 국민들은 정보부라 하면 염라대왕을 대하듯 겁을 먹었고, 개인 간의 분쟁에도 수없이 간여하여 원성도 높았다. (아는 정보부 직원이 있으면 겁만 줘도 놀라서 분쟁이나 민원이 단숨에 해결되었다.)
요즘 종편의 모 아침 드라마에 국정원에서 고문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이건 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얘기이다. 남산(그땐 정보부 하면 남산)에 한번 끌려가면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반은 죽어야 나온다고 했다. 겁주려고 고문 당하는 사람의 비명을 스피커를 통해 들려줘서 심성 약한 사람은 당하기도 전에 초주검이 되어 없는 죄도 불어야 했다고 한다.
소운도 남산에 잡혀갈 뻔한 사연이 있다.
공릉동에 있던 원자력 연구소에는 국가 중요시설이라 하여 많은 중정 요원이 파견을 나와 있었다.
당시 원자력 기술(주)라 하여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위한 인원을 육성 차 설립된 회사가 연구소 내에 있었고 소운은
이 회사의 건축직 기술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당시로선 생각도 못 할 남북한 청소년 팀 간에 축구시합이 있었는데, 결과는 우리 팀의 패배였다. “우리가 져서 다행이다. 우린 져도 그만이지만 북한 애들은 지면 아오지 탄광 끌려갈 게 아니냐?”
무심코 내뱉은 이 말 한마디가 나도 모르는 새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내 위로는 부장님이 계셨고 내가 차석으로 있을 때였으니, 직원을 신규 채용하면 응당 내 손을 거쳐야 했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직원이 신규 직원으로 채용돼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은 하였지만 별 생각 없이 그 직원을 당시 연구소 내에 짓던 건물의 감독으로 선임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내 주위를 멤 돌았다. 감을 잡지 못한 나는 왜 현장에 있지 않고 사무실에 있느냐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그가 현장에 떨어져 있다 하며 북에서 보낸 불온 문서를 주워다가 내게 보였다.
운이 좋게도, 난 당장 파출소에 신고하지 왜 들고 다니느냐고 호되게 꾸짖었고, 그 다음 날부터 그 친구는 출근하지 않았다. 채용 때도 그랬지만 고만둘 때도 아무도 사연을 몰랐다.
입사 원서에 기재된 번호로 전화하니, 대뜸, “이 번호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고압적인 응답에 기분이 상하며,
아 이거구나?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불온 문서를 내게 보인 것이 마지막 나에 대한 사상 검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 운이 좋다 함은 문서를 내가 보지 않고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한 것이다.-
며칠 후 청량리 경찰서 형사라 하며 나를 보자는 연락이 왔다.
불온 문서 건을 겪으며 감을 잡은 내가 중정 간부에게 내 건을 이미 상의한 이후였다.
“내사 결과 용공 혐의는 없으니 불러서 각서나 받고 주의를 시켜라,” 이렇게 내부 조치가 끝났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 “일단 불러들이면 혐의가 없어도 경고차원에서 곤욕을 치루 게 됩니다.
제가 불러주는 데로 받아쓰시고 서명하세요,”
우리가 진 것이 다행이라 한 것은 오히려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의미였고 어쩌고, 뭐 이런 내용이었고, 오늘 일은 외부에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것보다 축구 진 것이 다행이다 한 말이 요원까지 보내서 나를 내사 할 중요한 사안인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으니, 나는 아는 분도 있고 해서 그 정도로 끝났지만, 별것 아닌 사안으로 병신이 될 만큼 고문을 당한 분들도 많다고 들었다. 지난 세월 이런 일들이 쌓여 국정원 폐지 주장에 동조하는 민심이 형성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국정원이 없으면 좌파들의 망동이나 북한의 공작을 무엇으로 차단할 것인가 우린 아직 휴전 상태의 국가 아닌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야 없지 않은가,
지난 잘못을 바로잡고 본연의 업무에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정원의 개혁이라 생각한다. 국정원에 얽힌 개인적 사안이 몇 더 있지만, 다음 기회에 다뤄보려 한다. 국정원이 거듭 태어나 국가에 보은하며 국가를 지키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김보규
2014-01-01 00:20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니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요즘은 본질이 절차에 뒤지는, 주객이 전도된 세상 ...
답답한 가슴 먹구름 본 듯 합니다.
언제쯤 현명한 정치인이들이 되어 방학숙제 하루 이틀 남기고
싹슬이 하듯 하는 밀린 숙제좀 안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한 숙제가 오죽 하겠습니까? ㅠㅠ
올해의 끝머리에서 만난 문우의 고운 인연에 감사 드리며
새해에도 건안하심과 좋은 글향으로 등대가 되어주시길 소망합니다.^^
주응규
2014-01-04 22:51
청마의 해 첫 주밀 밤에 공감하는 글에 머물러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김숙자
2014-03-21 02:17
물 흐르듯 잔잔히 쓴글 아홉 편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더 많은 글을 읽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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