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장터에서 맛본 수제비,
-소운은 포토 에세이를 원칙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사진을 실지 못함이 늘 아쉽습니다.
요즘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웬만한 지방 면 소재지까지 들어와 영업하고 있다.
소운이 머무는 양평에도 하나로 마트를 비롯하여 메가마트 등 대형 마트가 네 댓 곳은 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상설 시장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문만 나서면 편의점을 비롯한 가게들이
즐비한데도 아직 오일장이 전국 방방곡곡에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더구나 장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시장의 주 기능을 물건을 사고파는 것으로 좁혀서 보면 장날에 사람이 들끓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고 물건의 가짓수도 많고 잘 정돈된 대형 마트에 비하면 오일장의 환경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따가운 햇살에 이마가 따가울 정도의 펼쳐진 공간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상인들
하며, 물건의 가짓수도 그렇지만 펼쳐놓은 물건의 양도 "저거 다 팔아봐야," 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
로 오일장의 모습은 풍요하고는 거리가 멀다. 쭈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거나 껍질을 벗기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더욱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조그만 소쿠리나 봉지에 담긴 나물이나 잡곡, 다 팔아봐야
오고 갈 때 차비를 빼고 나면 손주 용돈이나 주실 수 있을까 싶다.
뙤약볕 아래 간이 의자에서 국밥이나 막걸리를 마시는 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옛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찾던 장터의 향수가 그리워서 오일장을 찾으시는구나,-
소운도 아버지 손을 잡고 찾던 장터가 늘 그리웠다. 국민학교 뒤편 하얀 모래사장에 펼쳐지던 장터
의 좌판과 드문드문 서 있던 소나무까지 어린 시절 봤던 장터의 모습은 지금까지 너무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딴 분들도 소운처럼 나름의 장터 추억을 간직하고 계실 것이고 추억을 찾아
장터를 찾고 계실 것이다.
소운이 사는 양평장이나 이웃 용문장은 지자체에서 관광 거리로 가꾸려는 열의를 가지고 투자를
하고 있고, 더욱이 전철로 서울과 연결되고부터는 장터를 관광 삼아 찾으시는 분이 많이 계신다.
그래서인지 양평장이나 용문장은 규모도 대단하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뭔가 목적을 가지고 손을 대기 시작하면
편해진 것만큼 옛 맛은 사라지게 되어 있게 마련이다. 장터를 찾을 때마다 옛 장터의 맛보다는
현대화된 재래시장을 닳아 간다는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용문 인근의 지평 장은 어떨까? 경기도 장이 열리는 날을 살피다 문득 지평 장이 가보고 싶어졌다.
부동산 소개 업자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양평이나 용문에 비해 땅값이 상당히 쌉니다. 전철 만 뚫리면 오히려 양평이나 용문보다 더
좋아질걸요," 결국 낙후됐다는 의미가 아닌가? 낙후됐다는 것은 옛 맛이 살아있다는 의미라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나니 지평 장이 더욱 가보고 싶어졌다. 1일 6일이 지평 장날이란다.
지평은 용문과 지척임에도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다.
우선 장터가 선다는 장소 부근이 어린 시절 보던 읍내 장터의 분위기와 아주 닮아 있었다.
장날임에도 한산한 거리가 무더운 한낮 더위에 졸고 있듯 한가롭게 느껴졌다.
양평이나 용문은 장날 장터 인근에 주차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장터 바로 옆임에도 맘 편하게
주차할 곳이 많이 있어, 오늘이 장날 맞아? 할 만큼 분위기가 나른하게 느껴졌다.
장터엔 빈 곳이 많아 한산했고, "너무 덥고 휴가철이라," 장 구경 왔다는 말에 너무 한산한 장이
미안했던지 이렇게 변명했지만, 소운이 보기에는 오히려 나른한 장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배가 고파 주변을 살펴봤다.
시골 냄새가 확 풍기는 건물 한쪽에 -수제비- 라고 써 붙인 정말 작고 허름한 식당이 눈에 띄었다.
수제비, 서울에도 혹 수제비를 취급하는 식당이 있긴 하지만 먹어 보면 늘 실망스러웠다.
다워야 하는데, 멋진 식당에 얄팍하게 기계로 저민 듯한 식감하며 수제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골이니 시골답게 먹어보자, 마음을 정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식탁 서너 개, 열 명도 들어서지 못할 것 같이 협소한 식당 한쪽 주방(주방이랄 것도 없음)
에서 할머니 한 분과 아주머니가 열심히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수제비가 맛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고, 옛 시골 맛을 낼 것 같다는 느낌에 호기 있게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 수제비 하나 주세요,"
잠시 후 나온 수제비를 보니 소운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호박과 당근, 파를 소로 얹은 수제비의 모양은 투박하고 손으로 거칠게 막 뜯어 넣은 형세가
완연했기 때문이다. 얄팍하고 보기 좋게 기계로 저민 도시스런 수제비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수제비를 얇게 뜯어야 한다지만, 수제비의 원래 모양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까지 달려들어 뜯어 넣은
수제비는 두껍기도 하고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배부른 사람들이 기호로 먹는 수제비와는 차원이
다른 옛 수제비의 맛과 식감은 옛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투박한 수제비를 한입 물고 소운은 행복했다. "지평 장에 오기를 잘했다"
강원도나 경기도 시골 식당에 가면 내오는 김치가 일품이다.
서울의 식당은 단가를 아끼려고 대부분 중국산 김치를 사서 낸다고 한다.
강원도나 경기도 시골 식당은 자신이 담근 김치를 낸다. 중국 김치는 배추가 물러 힘이 없이
쳐져 보이고 씹을 맛이 없지만 시골 김치는 그렇지 않다 배추가 단단해 아삭한 식감이 좋다.
밭에서 딴 청양고추를 다져서 내주는 것과 김치가 반찬의 다이지만 훌쩍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얼마예요?" 4,500원이란다.
그냥 오기가 아쉬워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마가 벗어질 것 같은 불볕더위 아래 지평이 졸고 있었다.
아니, 무더위에 아른거리는 옛 시골 거리를 보며 내가 졸았는지도 모르겠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한 번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운 곳에 타임머신을 탄 듯 돌아볼 곳이 있다니, 소운에게 지평은 타임머신이었다.
수제비 소운/박목철
지금 세대는 모를 거야
악수하는 손이 표시된 밀가루 포대
전쟁에 살아남은 축하로
미국이 보내준 선물이라나,
난로에 불 피워
양은 냄비에 물 끓이고
감자, 양파 썰어 넣고 나면 형과 난 웃었어
반죽하며 얼굴에 하얀 분가루 피에로였거든
잠시 집에 들른 엄마
형과 나까지
열심히 반죽을 늘려 뜯어 넣었지
먹으며 웃었어
막 뜯어 못생긴 수제비 놓고
"이거 네가 뜯어 넣은 거지?
두꺼워 속이 하앟게 덜 익은 수제비지만
행복했어
그래서 웃었어
쌀밥에 고깃국 먹어도 요즘은 웃지 않아
웃는 근육이 굳었나 봐
*전쟁이 끝나고 온통 악수하는 손이 그려진 원조물자가 주변에 흔했다.
불쌍한 우리를 돕자고 보낸 원조 물자라 했다.
아버지와 전쟁통에 생이별을 한 엄마는 어린 자식을 먹이려고 목욕탕에
석탄을 공급하는 일을 하셨다. 석탄 기차 운전사가 뺴돌린 장물을 목이 휘게
나르셨다. 그 옛날에 간호학교를 나온 인테리 우리 엄마가,
어린 나이였지만 형과 나는 원조 받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점심 준비를 하고
엄마를 기다렸다 잠시 짬을 낸 엄마가 점심을 거르시지 않게 하려고
김경렬
2016-08-05 11:27
지평장날 수제비 한그릇에 어릴적 행복한 형제애를 봅니다.
장한 효자 아들덕분에 허리 휘는줄 모르셨던 인테리 어머님 이셨습니다.
흐믓해진 미소로 배독하였습니다.
무더위가 절정인 오늘은 축구가 더위를 날려주는 쾌거입니다.
더위에 건강 하시고 시원한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소운 작가님. 지평 장엘 다녀 오셨군요.
옛날엔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경상도 사투리로 당똘뱅이 라고 했지요.ㅎㅎㅎ
저도 3-40리 거리를 두고 열리는 장엘 가끔씩 장똘뱅이 노릇을 하곤 한답니다.
저도 수제비 한그릇 먹고 싶어 지네요.
소운님도 구호물자를 많이 보셨군요. 그 때는 그것으로 연명했지요.
그리고 어머님이 그 무거운 석탄을 공급 하는 일을 하셨다니 놀랐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흔히 보던 일이었습니다.
김천에서 추풍령을 가는 선로는 경사가 심해서
기차가 빨리 가지 못하고 사람 걸음걸이 속도로 올라 갔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기차에 올라가서 석탄을 퍼 내리고 뒤 따르는 아이들이 줍곤 했지요.
그 때는 각박한 시대였는데 요즘은 꿈 같은 옛 이야기 하며 사네요.
옛날을 추억하며 입가에 웃음 띄고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박목철
2016-08-05 15:18
《Re》김경렬 님 ,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찜통더위 입니다.
누진제 무서워 켜지 못하던 에어컨을 켜야 했습니다.
부자는 더울 일이 없는 세상이니 젊어서 열심히 벌어둘 걸
때 늦은 후회 해 보았습니다.
김경렬 작가님 무더위에 건강 잃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박목철
2016-08-05 15:23
《Re》정찬열 님 ,
몸도 성치 않으신데 무더위 까지 힘드시죠?
언제 뵈도 늘 밝은 기가 넘치시는 모습 대단하십니다.
소운도 멸치국수를 무척 좋아합니다.
국수 먹고 체했다는 사람도 본적이 없습니다.
장터에서 파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하며 바라보는 장터는 정겹습니다.
무더위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정찬열 작가님
박목철
2016-08-05 15:31
《Re》백낙은 님 ,
세대를 공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피난 길에 부산까지 내려가서 소위 하꼬방을 철로변에 집이라고
하늘이 훤히 보이고 비라도 나리면 모두가 물받는 그릇 틈에 앉아서 밤을 보냈습니다.
온 동네 사람이 다 도둑질외에는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상대로 한 도둑입니다.
애들은 기차 바퀴에서 기름 먹은 실 타래를 빼내는 일을 했습니다.
석탄을 연료로 쓰던 시절이라 불 붙이려면 쏘시게가 필요 했거든요,
기차에 치어 죽는 친구도 여럿 입니다. 정말 꿈같은 얘기 입니다.
늘 좋은 댓글로 잘 이끌어 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낙은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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