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삶의 빛과 소금이 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 사랑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랑의 갈래 중, 천륜으로 맺어진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나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큰놈은 언제 보아도 믿음직하고, 자기 맡은 일 묵묵히 해나가는 아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든든하다. 둘째 놈은 항상 어리광과 투정에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혼자 제잘 인다. 딸이었음 좋았을 것을 …

몇 해 전, 아들과 나 아니,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일화가 있었다. 그날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러니까 10년 전쯤인가 보다. 우리는 맞벌이하는 관계로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 모처럼, 어느 봄날 일요일을 맞아 과천 서울랜드로 바깥나들이 가기로 했다. 당일 아침 집사람은 언제 일어났는지, 김밥에 음식 준비 한창이고, 큰놈과 둘째 아이는 평상시 늦잠을 자는 것이 관례였건만, 새벽같이 일어나 신이 났다. 모처럼 쉬는 휴일이라 달콤하게 쏟아지는 잠이 아쉬워, 뒤척이기를 반복하는데, 큰놈이 일어나라고 장난을 걸어온다. 겨드랑이, 배, 목을 간질이고 이번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배 위에 앉아 말놀이한다. 
“아들아 10분만”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옆에 누워 옆구리를 간질여 온다. 나도 순간 장난기가 슬슬 발동했다. 큰놈을 낚아채, 두 팔로 꼭 감싸고 나의 두 다리까지 큰 놈의 다리를 꼬며, 우리 10분만 더 자자하고 옭았다. 아들 녀석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댄다.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는 녀석에게 속으로, 너 이제 딱 걸렸어 하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꼼짝달싹 못 하게 하려는 나와 탈출하려는 큰아들 녀석, 두 부자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빠져나오려 애를 쓰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기 동생에게 SOS를 요청한다. 둘째 아들 역시, 발부터 시작해 겨드랑이까지 나를 간질인다. 둘째 아이까지 가세해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엔 자기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엄마 구해줘~ 엄마~ 구해줘!"을 반복한다. 집사람 왈~
"애나 어른이나 자~~알 한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차 아들의 외마디
"악~" 순간 직감이 심상찮은 예감이다.
멈추고 아들을 바라보니, 눈물이 흘러내리고 눈만 껌뻑 인다.
“왜 그래?”
순간, 멈칫 놀란 가슴으로 아이에게 조심이 묻는다.
“아빠~나 못 움직이겠어!” 힘없이 말하는 표정이 예삿일이 아니다. 목을 두 팔로 감쌌는데, 빠져나오려다 목이 다쳤나 보다. 조심이 아들 목을 만져 본다. 순간 죽는다고 악쓰며 울어 대는 아이다. 주방에서 아이 엄마가 달려오고, 둘째 녀석도 눈이 동그래졌다. 집사람 왈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아빠라는 사람이 아이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고 난리다.” 다시 한 번 아이 목을 조심스레 만지려고 손을 댔다가 기절을 하듯이 손대지 말라고 울부짖는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조상님, 난생처음으로 애절히 구원의 마음으로 불러 본듯하다. 사람 마음이 정말 간사한지라, 교회나 절, 그리고 조상을 숭배 시 하지도 않았던 나 자신이, 급할 땐, 나도 모르게 애절히 찾는다. 사람이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해도, 도대체 목을 움직일 수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집사람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모처럼 가족 나들이 간다고 들뜬 아이 녀석이 누워서 꼼짝 을 못한다. 30여 분이 지났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이마엔, 식은땀이 분명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집사람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119를 부르란다. 도리가 없었다. 119에 전화를 했다.
"예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수고하십니다. 여기 무슨 동 XX 번지 몇 호인데요"
"아이가 목을 다쳐 움직일 수가 없는데 도와주십시오." 가타부타 이야기를 설명하고는
"네~ 출동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 내 입에서 쏟아진 말,
"그런데요. 일요일이기도 하구요. 주택가인데 출동할 때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출동해 줬으면 하는데요. " 119쪽에서 하는 말
"사이렌 울리지 않고 출동하면 불법입니다. 힘없이 내 입에서 나지막이 나오는 말,
"아~ 그러세요. 빨리 와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옆에서 집사람이 내가 통화하는 걸 듣고는, 기막힌 표정으로, 이 와중에 무슨 사이렌 타령이냐고 면박을 준다. 일요일 아침 그것도 모처럼 가족 나들이 가기로 한날, 대체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들 녀석은 조금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손만 대면 죽는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어대는 녀석을 보며, 나 자신이 왜 그리 나약해 보이던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손 놓고 초조함으로 기다릴 즈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그날따라 119 출동하는 사이렌 소리는 요란하기도 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이닥치는 대원들, 자초지종을 묻는다. 사실대로 설명했건만,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는 꼭 아동학대를 한 게 아니냐는 식이다. 대원들도 손만 대면 악을 쓰는, 아이의 울부짖음 앞에서 망설이다 결심이나 한 듯, 아이의 울부짖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지지대를 대고는 들것에 아들을 눕힌 채, 집 앞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아뿔싸~ 구경났네! 구경났어” 일요일이라 그런지, 동네 이웃 사람들이 모두 모인듯하다. 아이 엄마보고 무슨 일이냐고 걱정하며 묻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119 응급차에 몸을 실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휴일인데도 아픈 사람이 많기도 하다. 난생처음 응급실에 와본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정말 한심스러운 나 자신이다. 아이를 지켜보노라니,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든지, 병원 응급대기실에 눈만 껌벅 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초조해하기를 한 시간이 되어간다. 그사이 집사람과 둘째가 도착했다. 아직 기다리느냐며 안쓰러워한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목 부분을 단층 촬영을 했다. 다행히 목뼈에는 이상이 없고, 목 근육이 놀랐단다. 의사 왈, 인턴 둘 그리고 나까지 아들 손과 발을 잡으란다. 그리고 아이의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목을 당기며, 좌우로 목을 풀어준다. 죽으라 악을 쓰는 아들이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람이다. 크나큰 소용돌이 휩쓸고 간듯하다. 이렇게 해서 아들 목이 그나마 조금씩 움직인다

물리치료를 받고는, 아들 목에 보호대를 두르고, 이젠 걷기까지 한다. 그나마 이만한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한바탕의 폭풍우가 지나고 안정을 찾은 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큰아이가 햄버거가 먹고 싶단다. 아이고~ 아드님! 사주고말고, 네 식구는 햄버거로 아침 겸 점심을 요기하고 집으로 왔다. 모처럼 계획했던, 우리 집 나들이는 이렇게 허망하게 지나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파만파 온 동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집사람이 그 당시 집 근처에서 미용실을 했다. 특히, 여자고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동네 소문이 퍼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아들이 목에 깁스 비슷하게 목 보호대를 하고, 목이 반쯤 꺾인 듯 갸우뚱하고 걷는 모양새가, 내가 봐도 참, 우스꽝스럽고 엉거주춤한 모양새다. 동네 사람이 누가 그랬느냐고 농담 삼아 물어오면,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우리 아빠가요. 목을 비틀어 다쳤어요.” 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주머니들 왈 

“세상에나 너희 아빠 계부 아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나 누가 물어 오면, 똑같이 말을 한다고, 집사람이 나에게 일러준다. 나 참! 졸지에 포악한 아빠로 소문이 번진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 놓고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아들아, 누가 물어보면, 장난치다 목을 다쳤다고 말해 알았지?"
그렇게도 세뇌를 시켰건만, 누가 다시 물어오면 이번에는  

"우리 아빠가요. 장난치다 목을 다쳤다 하래요.” 아이고~ 나 원 미쳐요. 이제는 아들을 꾀어 거짓말까지 가르치는 못된 아빠가 되었다. 하기야 큰아들이 7살, 초등학생 1년생이 누가 장난삼아 꼬시기 듯 물으면, 묻는 대로 사실을 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아이에게 장난치다 목을 다쳤다 하라고, 세뇌를 시킨, 나 자신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다. 당시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 건네는 말, 누구 아빠, 아들 목은 왜 분질러 “놨대요.” 였다.

벌써 10년 전의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큰아이에게나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는 잊히지 않을 사건임이 틀림없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들 녀석이다. 옳고 그름을 읽을 줄 알고, 가끔은 친구같이 장난도 걸어오고, 정색하면 움츠릴 줄도 아는, 속이 찬 남자로 변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진다. 몇 해 전, 아들에게 매를 든 적이 있다. 종아리를 열대쯤은 때렸나 보다. 중간 잘못했다고 두 손 싹싹 비는 큰아들에게 매질을 멈추고도 싶었지만, 처음 약속한 열대를 채웠다. 아들도 잘못을 인정한 터지만, 매질 후, 마음은 얼마나 아프던지….
그날 밤, 잠든 큰아이의 멍든 다리를 보고는 마음이 저렸다. 집사람이 가지고 온, 연고를 아이 종아리에 발라주면서, 많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 사건, 모두 평생 잊히질 않을 것이다. 아버지! 난, 가끔 내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내 어릴 적 자상하던 아버지셨다. 그렇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엄하고 호되게 꾸짖어 셨다. 이제 아들 녀석이 성장 후, 아버지라는 이름의 나를 어떻게 머릿속에 기억할 것인가를, 인생 마흔일곱 고개를 넘으며 생각해본다. 커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흐뭇함, 장난기가 발동하면, 내 배를 꾹꾹 지어 박는 녀석, 그리고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해가는 아들이 사랑스럽다. 집사람에겐 인색하리만큼 해보지 않았던 말, “아들아 사랑한다.”는 말을 요즘 들어 가끔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