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핸드폰이 징징댄다.

업무로 오는 전화 사랑하는 이의 전화 잘 못 걸려온 전화

스펨 전화.......

바쁘게도 울어대며 나를 찾는다.

요즘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핸드폰 한대씩은 거의 다 지니고 있으니

책상 고정용 유선 전화는 그저 구색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지금은 땅속을 지나는 유선망(Wire Line)과 하늘을 통과하는

무선망(Air Line)으로 각 사업자들이 겹겹이 덮었고,

한전과 도로공사도 자체 통신망으로 이 나라를 덮었으니

그야말로 정보통신의 르네상스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80년대 초 우리나라엔 셀룰라폰(Cellular Phone) 이동전화는 없었고

무선전화라야 남산의 서울 타워에서 전파를 발사해서

서울의 한 전화국 쎈터의 교환원이 접속해주는 무선전화로

정부 삼부 요인들과 몇몇 장성들, 그리고 신문사 사장님들 등

100여분의 우리나라 주요 인사들 차에만 시설이 되어 있었고

그나마 서울을 멀리 벗어나면 통신이 두절 되었었다.

그때 당시

한국통신에서 제공하던 유선전화만이 유일한 통신수단 이었을 때

서울 중심가의 전화국에는 블랙리스트라고 지칭되는 고객 집단을

따로 전담 직원을 배치하여 관리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전화가 고장이 나서 불통이 되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전담직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즉시즉시 복구 시켜줘야만 했다.

이 블랙리스트 가입자들은 정부 요인이나 재벌 회장님들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따로 관리를 하고 특별 대우를 해 줬었겠지만)

그들 중 상위 세 부류의 블랙리스트를 살펴보면.......

그 세 번째는

지금의 커피 전문점인 그 시절 다방 마담이었다.

물론 다방에 찾아와 차를 즐기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인근 사무실에서 커피 주문을 받고 배달을 해야 하는데

전화가 안 되면 다른 다방에 배달 손님을 빼앗기게 되어

장사가 타격을 받는데 어찌 화가 안 나겠는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뽀얗게 화장을 한 아름다운 얼굴로

전화국에 쳐 들어가서 팔을 걷어 붙이고 곧바로 삿대질하며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낸다.

“야! 이~ **놈들아!! 니들이 우리 집 아가씨들하고 내 월급 줄 거야?”

“전화가 안 되면 우리보고 어떻게 먹고 살라고 이러는 거야!“

예쁘게 화장하고 점잖고 상냥하며 손님들이 데이트 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인 아네모네다방 마담의 입에서

생선 가시같이 날카롭고 냄새 나는 욕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맞는 말이다.

전화국 직원들 할말이 없다.

그저 죄송하다고 빨리 복구시켜준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두 번째는

중국집 사장님이다.

중국집은 매장의 손님보다 배달 매상이 더 많을 테니

전화가 불통되면 당연히 매출이 뚝 떨어지고

그나마 통화가 안되어 다른 중국집에 배달시킨 단골 고객이

그 집 자장면에 입맛이 맞으면

영원히 그 단골 고객을 놓칠 것이니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곧바로 자장면 배달용 철가방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전화국으로 돌진 한다.

씩씩대며 돌진하는 모습이 삼국지에 나오는 맹장 “장비” 같다.

“야! 이 나쁜 놈들아 너희들 **반점에서 자장면 얻어먹고

일부러 우리 가게 전화 안 되게 고장 내 놓은 거지?“

“국장 어디 있어? 당장 나오라고 그래!”

전화국 직원들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머리 조아리며 빨리 고쳐 준다고 애원 할 수밖에…….

그러나 단연 그 중 첫 번째 블랙리스트 고객은

지금은 지방에서나 존재하는

바로 LPG가스 배달 사업하시는 사장님들이다.

도시가스가 없었던 그 시절에

LPG가스는 99프로 전화로 주문할 수밖에 없었으니

전화가 불통이 되면 매상이 거의 없게 된다.

그러니 사장님 화가 안 날래야 안 날수 있겠는가?

어떡하든 빨리 전화가 돼야지 장사를 할 수 있으니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사장님은 배달용 오토바이 뒤에 LPG가스 한 통을 싣고

전화국으로 곧바로 쳐들어간다.

그리곤 가져간 LPG가스통을 어깨에 둘러메고

전화국 국장실로 밀고 들어간다..

“야! 이 나쁜 자식들아! 우리 가족이 몇 명인데

전화가 안 되면 우리 가족 굶어 죽으란 말이냐?“

“우리 식구들 먹여 살리던지 아니면 이판사판 우리 같이 죽자!”

하면서 LPG가스통을 폭파시킨다고 협박하니 국장님도 직원들도

죽을 맛이었다.

완전 무대포로 들이대는데 이분들 성격도 ‘가스’같아서 바로 불타오른다.

전화국 직원 누구 하나가 뭐라고 대꾸하거나 핑계를 대면

곧바로 손이 올라가니, 그저 손금이 다 닳도록 싹싹 빌고

빨리 고쳐 줘야지 별 도리가 없다.

복구가 확인 될 때까지 사장님들은 국장실을 점거하고 난리를 친다.

그 시절엔 블랙리스트 사장님들 그렇게 난리 치지 않았으면

매출이 뚝 떨어지고 타격이 크니 어쩔 수 없이 쌍소리도 나가고

무식한 척 들이대서 빨리 전화를 수리해야 되었을 것이고

그런 사업자라면 누구라도 그리 했었을 것이다.

또한 전화국은 이런 블랙리스트 고객들이

한번이라도 전화국으로 쳐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기에

전담 직원을 두고서 관리를 했었던 것이다.

일부러 고장 낸 것도 아니고 또 언제 고장 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80년대 초의 일들이었으니

그때 당시 사장님들이나 전화국 직원들이나

지금은 거의 은퇴해서 옛일을 회상하며 쓴 웃음 짓고 있겠지.......

지금은 모든 사장님들이 필요하면 유선이나 몇 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의

무선전화를 개설해 놓고 만약의 불통 사태를 대비하고 있으니

그런 블랙 리스트 고객들에게서 곤욕을 당하는 경우는 극히 적어졌다.

그리고 그 당시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중에

퀴즈 프로인 “다이얼‘큐’를 돌려라”라는 프로이던가?

이 프로가 금요일인가 자정 가까운 밤늦게 했었는데

이날만 되면 청취자 들이 너도 나도 동시에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해당 전화국(아마도 광화문 전화국)은 회선 폭주 사태로

교환 시설에 무리가 가서 교환장치의 휴즈(fuze)가 타는 고장이 많이나

항상 그 시간대에는 직원들이 긴장하고 고생을 했었다고 한다.

그 후 방송국과 협의하여 그 프로를 폐지했다고 한다.

그런 가정 통신의 시대가

유선전화도 기계식이 퇴장하고 모두 전전자식으로 교체 되었으며

흔히 ‘삐삐’ 라고 불리던 페이저(Pager) 시대를 거쳐

일 방향 통신 장비인 씨티폰을 잠시 지나

이제는 그 옛날 추구하던 I.S.D.N.(종합 정보 통신망:

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을 충족 시키는

디지털 셀룰러(Digital Cellular) 통신 시대에 이른 것이다.

부가적으로 모든 연락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해 놓아서

핸드폰이 없으면 지인들의 연락 번호를 알 수 없는

‘디지털 치매’ 란 부정적인 덤을 얻기도 했지만…….

그 당시 혼쭐났던 전화국 직원들과 다방 마담, 가스 집과

중국집 아저씨들 지금은 은퇴하여 모두 부자 되고

인생의 황혼기를 행복하게 잘들 살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