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는 숫자는 1과 있으면 큰 숫자다.

하지만 3 이라는 숫자와 있으면 2라는 숫자는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소크라테스의 ‘변명록’이라는 책에서 읽어 봤던 글이다.

우리 인생도 역시 주위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 될 수 밖에…….

그렇다면 나의 처지는 지금 1과 함께 있을까?

아니면 3과 같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역시 후자에 속하리라.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교대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 오니

하늘을 뺑뺑돌아 결계처럼 둘러 쳐진 빌딩들이

내 호흡기를 옥죄어 누르는 듯 숨이 탁탁 막힌다.

기생하는 벌레들처럼 그 밑에 즐비하게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무수한 변호사 사무실들…….

그 사무실들은 이곳 행정법원을 비롯해 지방, 고등, 대 법원 및

서울지검을 옹위하는 듯이 비굴하게 둘러서 있다.

이곳은 나 같은 서민에게는 봄이 없는 거리인 것 같다.

영원히 겨울인 이 거리에 봄의 햇볕은

판사, 검사, 변호사에게만 편애하며 따사롭게 비추는 것 같다.

두 번 다시 찾지 앉으리라 다짐했던 이 거리를

5년여 만에 내가 다시 찾은 이 겨울 같은 봄날.

언젠가 업무차 가 보았던 사북의 강원랜드 카지노 주변의 전당포들 같이

내 가슴의 역겨움을 자극하는 변호사 사무실들…….

불행한 사람들이,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야 삶이 윤택해지는 변호사들…….

사실 전당포와 마찬가지로 변호사 사무실은

경찰서, 병원, 법원등 이 사회가 건강하지 않을 때

제 빛을 더욱 또렷이 빛내며 도도하게 서 있는 것들 중에 하나다.

옛말에 무척 착하고 남을 많이 배려하는 사람을 일컬어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이 시대의 일등 신랑감 중에 하나인 변호사는

검사, 판사, 경찰과 더불어 ‘법이 있어야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결국 인간이 모여 살면서 안정된 삶을 위해 서로의 합의 하에

결정된 서로간의 규칙이 곧 법이다.

하지만 그 합의는 적어도

힘없는 백성이나 비루한 자들의 동의는 거의 구하지 않고

그 시대의 토호들이나 권력층 포함 지도 계층의 합의만 받았을 터이다.

빈민계층을 동정하는 약간의 가식들로 군데군데 기워서…….

그리고 그 법이라는 잣대도

경우의 상황을 생각하고 정해 놓은 범주를 뛰어 넘지는 못하니

점쟁이가 사주팔자를 보듯이 판사의 그 상황에 적합한 법 적용에

우리는 따라야 할 뿐이다.

인간이 생활하면서 일어 날 수 있는

경우의 일들을 판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법인지라

한계를 종종 드러내는데, 요즘 라이프 싸이클이 급속도로 변하고

삶도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는데 법이라는 잣대는 몸이 비대해서인지

세월의 진화를 전혀 못 따라가서 종종 만들어 놓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새로운 송사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문화와 대단한 사고로 살아 가는 세상이니…….

그러면 판사들은 자신이 배우고 만든 잣대에서 벗어난

그런 새로운 측량에 곤혹스러워 하면서

우리 나라가 아닌 보다 선진국이라는 서양의 사례를 가져다

잣대에 눈금을 새로 새기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신을 대신하기라도 하듯이 그럴듯하게 이유를 붙인 판결로

‘선례’라는 새로운 눈금을 만든다.

한 5년여 전에

법이라는 공정한 잣대로(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였었다.)

내 부당한 짐을 벗으려 했었는데, 객관적 법 적용이라는

판사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걸 보며, 다시는 그 놈의 잣대에

의존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였었는데 이제 한 오륙 년이 지나

다시 그 법의 잣대에 의지하여 발뒤꿈치 굳은 살 같은

나의 멍에를 다소나마 벗기려 하고 있다.

참으로 사람 사는 일은 아무도 알 수 가 없는 일이다.

힘있는 사람들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편리한 법.

그리고 다시는 의존하지 않으려 했던 그 법이라는 잣대에

어쩔 수 없이 오늘 나를 다시 재러 왔으니…….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예로부터 저마다의 잣대를 가슴에

혹은 눈 밑에 간직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고 있는 것 같다.

돈이 많은 부호들은 황금 잣대를, 권력가들은 꼿꼿한 강철 잣대를,

명문대 출신들은 먹물잣대를…….

그저 불쑥불쑥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대고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이 사람은 이게 모자라서 저 사람은 저게 넘쳐서……’

라고 함부로 수치를 내 놓는다.

하지만 나 같이 가난하고 내 새울 게 없는 사람은

잣대의 눈금이 시원스럽게 널찍널찍해서

외지간이 못난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후한 눈금을 찍어 댄다.

내가 가진 게 워낙 왜소하니

처음 만나는 사람도 웬만하면 후한 눈금으로 쉽게 가까이하며

아이들의 배우자감도 가난하거나 못생겨도 좋고

심성만 착하면 데려다 올곧고 재미있게 살게 하리란 생각이다.

어쨌든 서로의 그 잘난 잣대들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허다하다.

사람이 살면서 서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

요즘은 저 남쪽의 한 부자의 욕심으로부터 발로된 부도덕으로

전 현직의 관리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엮일까 전전긍긍하더니

법을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그렇게 청렴을 부르짖던

경남의 봉하노인도 결국 법의 잣대를 커다랗게 벗어 나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어거지로 버티며 곤혹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법은 헌법이다.

그 외의 도로 교통법이니 상법이니 선거법이니 하는 것들은

이 헌법에 근거를 한 하위 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 간단한 보행위반으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했어도

결국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법을 한번도 위반하지 않은 애국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정해 놓은 법보다 더 상위의 법은 무엇보다도

따로 정하여 놓지 않았어도 인간이 모여서 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는 ‘도리와 도덕’이라고 생각한다.

정해 놓은 법을 크게 어기더라도 인간의 도리상 어쩔 수 없다면

그 법의 잣대를 훌쩍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최상위법인 도리이고 도덕인 것이다.

아무리 법으로 정해져 있더라도

내 부모가, 내 자식이, 내 이웃이 죽어 간다면

어느 정도 범법행위를 해서라도 그들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법을 크게 어겼더라도 도리에 합당하다면

무죄를 선고 하는 게 미국의 배심원 판결 제도인 것 같다.

부디 우리는 자신의 잣대에 있는 눈금에 연연해서

주위 사람들의 피눈물을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항상 커다란 숫자가 되어 관대해지고 배려하는 잣대.

세상 모든 잣대의 눈금이 그렇게 후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제 나는 역시 작고 왜소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는 그나마 그들 잣대의 후한 눈금을 기대하며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 선다.

2009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