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4-28 20:29

ㆍIP:

창경원 밤 벚꽃놀이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는 관악산 등산길에
길 모퉁이의 회색빛 담벼락 속에서 넘겨다 보고 있는
바이올렛의 라일락이 페르몬 향수를 풀풀 날리며
내 춘심을 자극하고 있는걸 보니 이 봄도 한창 무르익었나 보다.

따사로운 휴일의 봄을 맞아 많은 인파가 서울의 남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관악산을 오르고 있다.

“모처럼 휴일인데 관악산 벚꽃이라도 즐기지 그래?”

아내는 재경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며 남한산성으로
몸과 마음이 떠나면서 계면쩍게 나에게 선심인지 모를
꽃 구경을 권한다.

하긴 혼자 집에서 이 화사한 봄의 심사를 외면하고
하루를 소비하기는 정말로 아까운 오늘 이리라.

하지만 아내의 권유나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대 앞에서
올라가는 벚꽃길에는 그가(벚꽃)) 없었다.
단지 비가 온지 오래되어 수량이 부족한 실개천에
벚꽃의 떨어진 꽃잎들이 흘러 넘지 못하는 개울물에
가볍게 녹아 어우러져 하얀 꽃잎 실개천을 연출하는
봄의 퍼포먼스를 감상 할 수 있을 뿐.

지방을 다녀 온지 10여 일만에
서울의 벚꽃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나서 내년을 기다리라 하니
심통이 야박한 서울 깍쟁이 아가씨 마음 일러라.

그나마 서울을 떠나기 전인 4월 초순에
아내와 영등포 재래시장에서 삶은 꼬막 안주에 한잔하고
여의도 샛강에 젖은 달님의 수줍은 자태를 따라
윤중로를 더듬어 예년에 비해 서둘러 핀 벚꽃길을 걸어본 건
이 아쉬운 봄에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며칠 전 군산에 잠시 머물 때 전군간(전북 전주와 군산간,
그 중에도 대야리) 벚꽃 축제에 초청한다는
모 여행업체의 광고 메일을 확인하고 실소를 짓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 나라 여러 곳에서 매년 4월이 되면
벚꽃 축제를 한다고 난리들이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경남하동의
쌍계사 십리벚꽃, 내원사를 거쳐 군산과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
심지어 이 나라 여러 곳의 아파트 단지들 벚꽃 축제까지…….

십 수년 전만 해도 벚꽃은 일본의 국화고
특히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시로 소속정당을 옮기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국회의원들을
철새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쿠라 정치인이라고
조소하며 손가락질하던 때도 있었지만
유럽의 백합꽃(Lily) 조상이 우리나라 참나리 꽃이듯이
벚꽃의 조상도 우리의 제주도 왕벚나무라고 하며
경시하던 풍조도 어느새 사라진 듯 하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벚꽃은
‘쌍떡잎 식물 이판화군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교목’으로
표기돼 있으며, 일본이 최고 품종으로 자랑 삼는 벚꽃인
‘소메이 요시노 사쿠라’도
우리나라 제주도의 왕벚꽃 후손이라고 한다.

그런 중에도 우리나라 국토의 벚꽃들 중에서 여의도의 벚꽃이
단연 기름지게 하얀 배때기를 내미는 건 아마도 국회의사당에서
달변가들이 튀기는 타액을 수유 받으며 시작되는 꽃길이
언변가들의 기름진 침이 메마르지 않게 떨어져 내리는
방송국앞길을 비켜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유추한다면
나의 너무나도 무리한 억측일까?

사실 요즘은 나라의 곳곳에서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지만
20여 년도 더 오래 전의 벚꽃놀이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유일한 줄 알고 있다.

창경원(昌慶苑)은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과 더불어
이 나라 조선시대의 5대 궁궐인 창경궁(昌慶宮)을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09년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고
일반인에게 공개 되었으며, 이후 1911년에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데
이는 이 나라 임금이 살던 궁궐에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를 심고
온갖 짐승들을 길렀으니 일본의 철저한 우리 궁궐의 격하와
민족의 얼을 말살하려는 침략자들의 무례한 획책이라 하겠다.

창경궁의 역사를 들추어 보니 ‘사적 제 123호’로
태종 이방원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壽康宮)터에
1484년(성종15년) 새로이 별궁을 지어 창경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몇 분의 임금을 탄생 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웬만한 유흥지에는 어김없이 설치되어 있는 각종 놀이시설,
즉 회전목마와 바이킹, 청룡열차등 많은 놀이기구가 있지만
나의 고교시절 창경원과 덕수궁에만 유일하게 있던 허니문 카와
회전목마의 사업주가 내 짝꿍의 작은 할아버지였었기에
둘이서 자주 창경원 뒷문으로 면회를 신청해 출입을 하고
놀이시설 관리하는 형들에게 부탁하여 무임승차를 했었지만
정작 제대로 창경원 벚꽃 구경을 해본 건 그때부터 꽤 오래 후인
내가 결혼하던 다음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였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울의 명소와 볼거리를 더 많이 즐긴다고 하니…….

그때
내가 창경원 밤 벚꽃 놀이를 가게 된 건 참으로 우연이었다.

고교시절부터 나는 낚시를 좋아해서
주말이면 호수와 강을 찾아서 붕어와 씨름을 자주했었는데
내가 결혼한 다음해인 1983년의 봄에도 붕어를 잡았고
그 붕어로 매운탕을 얼큰하게 끓여 반주에 저녁을 먹었는데
그게 그만 탈이나 버렸다.

붕어 가시는 익히면 더 억세진다고 하더니
매운탕중의 붕어 가시가 내 목 울대 넘어 식도 깊숙이 박히어
내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덩치로 아주 털끝같이 작은 가시에 어쩔 줄 몰라
‘컥 컥’ 대기도 하고 혀를 말아서 깊숙이 훑어도 보고
숟가락으로 맨밥을 잔뜩 떠서 삼켜봐도 빠지지를 않고
밤새 고생을 했으며, 시간이 흐르고 나면 빠지겠거니 하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하였는데도 영 해결이 안되었다.

이제는 달리 방법이 없다.
병원의 많이 배운 의사 선생의 신통한 손길을 빌려야지.

할 수 없이 같이 근무하던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후 4시경에 조기 퇴근을 하였다.

지금이야 주민등록 번호만 외워대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그때는 병원의 접수처에 하얀 종이에 곱게 인쇄된
의료보험카드를 제출해야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니
병원 진료시간 지나기 전에 집에 들려 카드를 지참하고
집 근처 병원에 가기 위해 일찍 근무처를 나선 것이다.

집으로 귀가하는 버스에서도 내내 그 가시는 나를 괴롭히더니
정작 카드를 찾아 일어서니 신기하게도 거짓말같이 뽑혀져
내 식도 너머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 신밧드 할아버지(불쌍해서 신밧드가 엎어서 모셔다 드렸더니
영 등뒤에 찰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내리지 않고
신밧드를 괴롭히던 동화속 할아버지)같던 붕어 가시는
더 이상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참으로 신통한 붕어 가시였다.

이제는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데 시간은 이르고……
잠시 이 여유를 즐길 궁리를 하다
나는 아내와 같이 창경원 밤 벚꽃 놀이를 가기로 했다.

부랴부랴 김밥을 싸고 계란을 삶고 사이다 몇 병 사서 들고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 창경원을 갈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밤 벚꽃 놀이는
아내나 나나 4월 봄밤의 흥미를 만끽하기에 충분했었다.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선 창경원에는
많은 상춘객들이 여기 저기 모여 앉아 김밥을 먹기도 하고
아날로그 카메라의 후레쉬를 퍽퍽 터트리기도 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창경원을 찾은 어린아이들도
마냥 즐거워했는데, 아직 아이가 없던 우리들도
어린아이가 되어 마냥 즐거워했다.
우리는 그 열기에 휩쓸려 봄의 눈꽃송이 밑을 배회하며
그 해의 창경원 밤 벚꽃놀이 데이트를 즐겼다.

아름다운 여인네 옷자락 하얀 레이스같던 소박한 아름다움과
눈부신 감동을 전해주던 창경원 밤 벚꽃들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가로등불빛 밑에서 그렇게
깊어가는 그 해 서울 봄의 밤을 아늑하게 수놓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축제라는 고급스런 타이틀 대신에
놀이라는 다소 싼 티 나는 이름을 붙여 벚꽃놀이를 즐겼는데
그마저도 그 해 1983년 봄을 끝으로 과천시 막계동으로
벚꽃나무와 동식물을 옮겨 서울 대공원으로 태어났고
창경원은 예전의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지나간 그 해의 추억은
나와 자주 씨름하던 붕어의 배려였는지
사라져 버리는 창경원 마지막 계절에 자신의 가시를 통해
나를 밤의 벚꽃길로 인도 했었다.

이제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창경원 밤 벚꽃놀이는
마지막이란 이름으로 내 추억의 한 편린으로 남아있고
올해의 윤중로 벚꽃도 내 귀경을 기다리지 않고
한강의 샛강 야트막한 물에 마치 삼천 궁녀인양
제 몸을 하얗게 폴폴 던져 버렸지만, 이제는 가로등 불빛과
강변도로의 휘황한 차량 불빛에 어우러져 만개한 벚꽃을
제대로 감상하고 즐기지 못한 것 보다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다시 한 해의 내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할 뿐이다.

그런 느낌은
이미 지나간 봄 보다는 내게 남은 봄이 훨씬 적으며
그나마 한 칸씩 줄어드는 곶감꼬치 같은 나의 계절들임을
어느덧 내가 느끼고 있음인 듯 하다.

그 시절 마지막 해 창경원 밤 벚꽃놀이는
내 뇌리의 한쪽에 없는 듯 소리 죽여 엉겨 붙어 있다가
매년 4월이 되면 슬그머니 제 몸을 풀어본다.

2008년 라일락 향기 짙은 4월의 끝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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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날씨탓인지 올해 벚꽃은 담박에 피었다가 별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난 듯 합니다. 다행인 것은 벚꽃은 질 때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여 꽃비를 내리기도 하고, 꽃잎이 흩어지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윤중로도 축제가 끝난 다음주가, 쌍계사 벚꽃길도 만개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꽃잎 흩어지던 모습이 가슴 속 더 깊이 스며들어와 가는 사월의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작가님 잘 지내시지요. -[04/29-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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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守/정용하: 창경원 정말 오랫만에 들어본 용어 이네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 수학여행가서
창경원에 가본일이 있는데 어렷풋 동물 구경한
기억이 나고 위치는 어디인지 몰랐는데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뒤 언제 부터인가 창경원이란
말은 나도 모르게 없어지더군요....
오늘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언제 서울 올라가셨습니까?
또 내려오시는 거죠
안오시면 섭섭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소서
늘....... -[04/29-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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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아직 창경원엔 가보질 못했지만,
밤에 보는 벚꽃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생각해봅니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벚꽃놀이나
다른 축제를 통해서도 야간에 조명을 비추어서
야경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고 있으며
그런 밤 경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
지금은 밤낮이 따로없는 것 같습니다.

밤에 보는 벚꽃...
가끔은 야간에 진해 쪽으로 다니다가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벚꽃 나무를 보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벚꽃이 지고나니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도 없게 되었네요.
ㅎㅎㅎ

잘 지내시죠?
더운 날씨에 몸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건강한 여름을 나시길 바랍니다. *^.^* (hirashi2000@yahoo.co.kr) -[04/29-13:42]-

깻잎

법을 바꿔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