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젠 두 자리 조합의 숫자 몇 개를

달력의 남은 한장에 남겨 두고 있다.

또 다시 우리는 우리의 한해를 곱게 접어서

기억의 장롱에 가만히 집어 넣어야 할 때 인 것이다.

매년 이때가 되면 정신은 지나온 일년을 뒤적여 보는 것과 함께

육신은 많은 송년 술자리를 전전하며 토악질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쓸쓸해져 가는 연말 서울의 거리가

올해는 여느 해와 더욱 다르게 분위기가 썰렁하기만 하다.

나라의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이렇게 꽁꽁 얼어 붙어 있어서

대다수의 서민들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한 처지이니

가능한 송년 모임의 자리를 모두들 애써 피하게 되며

마지못한 회식의 장소도 저렴한 곳을 찾게 마련이다.

나도 예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많은 인파 틈에 합세해서

명동성당을 둘러 보며 젊은이들의 분위기에 살짝 편승하기도 하고

12월 마지막 날 밤에는 종로의 보신각 주변을 얼쩡거리다

제야의 종소리를 안주 삼아 소주를 털어 넣으며

새해의 기대와 각오를 주억 거리기도 하였었고

때론 동해의 정동진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새벽길을 재촉하여

우리 나라 어느 명소를 찾아서 해맞이를 하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이미 지난 크리스마스도 무덤덤 지나왔고

말일과 새해의 여행도 가계부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매년 하던 형제 가족들의 송년모임을 먼저 거론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왜 송년모임을 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나

송년모임을 제의하는 형제나 가족들도 없다.

친구들과도 가능한의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두엇의 송년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인접한 어느 날의 명동과 종로는

‘쌩’ 한 겨울 바람만 내 외투자락을 애써 붙잡고 펄렁거릴 뿐

민초들의 따스한 웃음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그저 로마신화의 지혜의 여신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한

사이버 경제논객 ‘미네르바’만이 정체를 감추고 신이 난 세상…….

그래도 송년모임으로 들어선 서울의 어느 식당에서는

소주잔을 앞에 놓고 둘러 앉은 사람들 가운데에

삼겹살이 불판에 올라 앉아 노릇노릇 제 살을 익히고 있었고

가위는 서둘러 사람들이 먹기 좋은 알맞은 크기로

삼겹살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힘든 이 겨울을 저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내년의 봄을 끌어다 붙일 수는 없을까?

예전에 가위는

가정에서 바느질할 때 실과 천을 자르는 게 주 임무였었는데

이제는 반지그릇에서 보다는 주방과 식당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제 능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어느 식당을 가나 가위는 의례히 식탁에 건방지게 올라앉아서

많은 음식들을 손님이 먹기 용이하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대는데

서양에 나이프가 있다면 우리나라 식당에는 잘라댐이 가위가

제 구역인 식당을 지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삼겹살도 싹둑, 갈비도 싹둑, 등심도 싹둑, 배추김치도 싹둑,

무김치도 싹둑, 파전도 싹둑, 냉면도 싹둑, 뭐든지 싹둑싹둑…….

가끔은 포기김치나 겉절이 등은

도마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부엌 칼을 사용해 고른 크기로

조신하고 잘 정리되게 썰어서 내왔으면 좋겠는데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가위로 대충 숭덩 숭덩 잘라서 내오니

먹을 때 음식의 색과 모양도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는 요소들인데

그 모양새가 별로라서 참 아쉽다.

가위는 ‘지레의 원리로 물건을 자르는데 용이한 물건’이며

발굴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원을 추적해 보면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화가 융합되어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헬레니즘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유방(劉邦)의 나라인 전한(前漢)시대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것이 삼국시대 이전에 한국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는 게 정설이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말 중에

집이 안 팔릴 때 손님이 많은 식당의 가위를 몰래 훔쳐다

문 옆에 걸어두면 빨리 집이 팔린다고 한다.

실제로 이 우스개 같은 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의 가위가 많이 분실되기도 하였다는데

요즘같이 부동산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매기가 없는 때에는

더 많은 식당의 가위들이 없어질 법도 하다.

사실 가위는 음식점 말고도

이미 옛날에 우리들 가정에서 함부로 가출한 후

모양과 힘을 나름대로 제각각 업그레이드하여

여러 곳에서 제 기능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쓰는 문구용 가위며,

옷을 만들 때의 재단가위, 화단을 가꾸거나 농장에서 쓰는 전지가위,

여인들의 머리를 아름답게 잘라 주는 미용가위, 남자들의 이발가위,

병원에서 쓰는 수술가위, 양철을 자르는 공업용 판금가위를 비롯해

흥겨운 엿장사 가위, 인절미 만들 때 쓰는 떡가위,

조그만 쪽가위, 이쁘게 자르는 핑킹가위, 심지어 외설필름을

숭덩 숭덩 잘라내는 영상심의위원회의 도덕적인 가위 등

곳곳에서 가위들은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 사는 여러 곳에서

사람이 살기 편리하게 잘라대고 있는 가위는

계속 모양과 능력을 바꿔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데

그런 재주 많은 가위에게 오늘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이제 세월을 재단하는 가위도 생겼으면 좋겠다.

올 해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 시대의 ‘대한민국호’를 이끌어 나가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많은 기대와는 달리

연초부터 불안한 조짐이 우리나라를 뒤덮었었다.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의 12월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은 기대를 한 것은 당선된 대통령의 이력이 경제인이며,

경제에 정통한 경제 대통령으로 이 나라 경제의 숨통을

시원하게 열어 주리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모 산악회를 따라 가서

계방산 눈 산행을 하고 같이 내려 오던 그 산악회 회원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눈길을 더듬어 내려 오던 중에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들 화제에 올랐었다.

그는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새 대통령의 능력에 의한 우리나라 경제 회생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였었다.

생산되는 자원이 변변히 없는 우리나라는

지도자 한 사람의 빼어나고 월등한 능력으로 인하여

경제의 지표가 좌지우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경제가 좋아 지면 덩달아 좋아지고

반대로 그들 나라의 경제가 나빠지면 우리나라 경제도

덩달아 한없이 나빠질 뿐이라고…….

그 나라들의 경제에 따라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나비효과를 감수 해야만 한다고 했었다.

그의 국가 경제전망을 들어 보니 내가 인정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 경제 여건이리라 생각했었다.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인정해야 할

서글픈 우리나라 경제의 현실에

그저 순응하고 기다려야만 할 그런 현실이었다.

그런 우려를 하던 중에 다가온 불안한 조짐…….

그 사건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보름 전에

술 취한 한 노인의 이해할 수 없는 무지한 방화로

우리나라 수도의 정문으로 오백 년을 버티고 서있던

나라의 자존심이고 신령스러운 국보1호 숭례문이

국민의 안타까움 속에 불타서 대부분의 육신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 불안한 조짐은 오래 가지도 않고 몇 달 후인 봄에는

FTA 중점 의결 사안인 미국산 쇠고기파동으로 시작된 반발이

밤마다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국가의 정책에 맞서게 되고

이어서 세계의 굵직 굵직한 금융사들의 도산에

우리나라의 경제가 따라서 휘청거리더니,

결국 미국 발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제 한파를 맞고 있으며

그 여파로 각국의 자동차 업계의 사업침체와 금융의 어려움에 동참해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업계가 심한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이 한파는 이제 연말을 맞아 건설과 조선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냉랭한 바람을 불어대고 있다.

이 차가운 경제 한파는 내년 3월까지 이어 진다고 하고

더군다나 서민들의 땔래야 땔 수 없는 소중한 벗인

소주의 값이 내일부터 인상 된다고 하여 국민들 시름의 골이

전(前) 대통령의 이마에 패인 주름살 깊이하고 버금간다.

허황되지만 올해의 연말인 오늘 내가 그저 바라는 바는

이런 암울한 경제적 겨울들을 세월의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모든 것이 따스한 내년의 그 어느 날들을 끌어다 붙이면 안될까?

지금의 괴로운 경제난국 시기를 싹둑 잘라 가위밥 만들어

저 지독한 흑암의 우주 멀리로 힘껏 던져 버려서

서민들이 어려운 날들을 살짝 건너 뛰고 경제 한파를 모르며

그저 작은 웃음 웃으며 살아 가는 그런 날들로…….

우리 서민들이 살기 적당하게 잘라주는 그런 가위를

아니 그런 가위 같은 이 시대의 지도자를 다시 기다려 본다면

나의 너무도 허무맹랑한 겨울밤 꿈이고 무모한 바램일까?

2008년 12월 27일 경제의 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