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8-11-27 16:07

ㆍIP: 211.xxx.166

증조 할머니의 참빗

증조 할머니의 참빛 / 임정수

어느날
증조 할머니께선 참빛으로 머리를 빗고 계셨다.

맑은 소주병에 가득 든 피마지 기름을 손바닥에 따루어
조금씩 머리를 쓰다듬듯 피마지 기름을 바르시며
참빗으로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계신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오는 한겨울일지라도
꽁꽁 언 얼음을 깨어가며 손수 물을 길러오시어
찬물에 머리를 감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백수를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아랑곳 않고
찬물로 머리도 감으시고
목욕까지 하시던 증조 할머니를 곁에서 보아 온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추운 겨울이면 깊은 산 속 계곡으로 들어가
꽁꽁 언 얼음을 깨어가며 물 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나오곤 한다.

그 모든 것이 증조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때론 구멍뚫린 문풍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면
어린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을려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곤 했었는데,
어느날 증조 할머니께서 찬물로 목욕을 하시는 걸 본 후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수사까지 뜀박질을 하며 몸을 단련했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어느날 오후,
증조 할머니께선 대청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계셨고,
그시절엔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머릿니로 고생을 하던 때라
참빗으로 빗질을 하면 어김없이 머릿니가 서너마리씩은 끌려나왔다.

증조 할머니께선 어떠한 연유로 피마지 기름을 바르셨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모든게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을 때였다는 건 분명하다.

요즘같이 편하고 좋은 세상엔 뽀송뽀송하고
보습 효과와 미용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영양 크림 같은게 넘쳐나지만,
그시절엔 피마지 기름 하나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지금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되어 되돌아갈 순 없어도
아득한 추억의 저편으로 잊혀져 가는 참빗이 그립다.

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증조 할머니의 참빗을 그리워하며...

최선경 2008-11-28 20:52	참빗 이야기를 오래 만에 접하네요. 내가 어릴 적엔 어머니들이 머리를 빗겨 주시며 가끔씩 참빗질을 해 주었었죠. 머리에 석회라는 작은 벌레 알이 꼬일까봐 그리 해 주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임 작가님 할머니는 세밀한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머리이도 이지만 더욱 단정한 머리 맵시로 만지시려 참빗질을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임 작가님 얼음물에 들어앉으신다고요? 에구. 듣기만 해도 싸늘하네요.

최평균 2008-11-30 21:05	여인은 아름답게 보일려고 꾸미는 그 순간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더군요. 임작가님의 증조모께서는 돌아 가시는 그 순간까지 아름다운 여인 이셨을거라 믿습니다. 사실 규칙적으로 가꾸기도 힘든데 찬물로 머리를...... 아마 작가님도 그 피를 물려 받았는가 봅니다. 에구 나도 춥네....ㅎㅎㅎ

임정수 2008-12-02 11:47	안녕하세요. 최선경 작가님! ^.^ 지역마다 참빗을 일컫는 말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참빗, 챙빗이라 불렀답니다. 특히, 저희 증조 할머니께서는 학교를 해꾜라 불렀기에 참빗을 챙빗이라 부르셨고요, 저도 덩달아 부르다 보니 참빗이라는 말보단 챙빗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었답니다. 요즘은 한번씩 그때의 추억을 돌이킬 때면 무척이나 참빗이 그리워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서 몇 개 구입해두려고 합니다. 비록 제가 사용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잊혀져가는 옛 것의 향수를 떠올리면서 적어도 한개쯤은 소장할 값어치도 있는 것 같아서요. 아참, 거짓말 같이 들리시겠지만, 몹시도 추운 날에 깊은 산 속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 앉아 있노라면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차가운 냉기가 엄습해오는 것이 정신이 확 들면서 머릿 속이 맑아진답니다. 한동안은 저희 어머니께서도 동행하시어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담구시곤 했었는데요, 겨울이란 시각적 이미지가 춥고 차갑게 느껴질 뿐 막상 얼음물 속에 들어 앉아 있다가 나오면 수건으로 닦을게 없답니다. 물 밖으로 나오면 금새 얼음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그냥...수건으로 톡톡 치면서 몸에 붙은 고드름을 떼어낼 정도이니까요. 저는 적어도 일년에 두 세번 정도는 산속으로 들어가 얼음을 깨고 들어 앉아 있다가 나와야 겨울을 제대로 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잔병치레로 겨울을 제대로 나질 못할 정도랍니다.

임정수 2008-12-02 11:59	최평균 작가님 말씀처럼 여인들은 누군가가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을 가꾸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요즘은 보일러의 온수 스위치만 누르면 금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지만, 그시절엔 대가족인 저희 집에서는 따뜻한 물을 사용하려면 정말 끈기있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만 겨우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귀찮으면서도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기가 싫었던 탓에 게으름을 많이 피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과 뜨거운 물을 양보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집을 막론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증조 할머니께서는 할머니께 양보하시고 할머니는 저희 어머니께 양보하시고 어머니는 저희 형제들에게 양보하시고...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저는 제 동생들에게 양보를 하게 되고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상 생활 속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부모를 공경하며 효도를 다해야겠다는 본연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으니까요. 그런 탓에 저 역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찬물에 세수하고 목욕하면서 친구들과도 한 겨울에 산속으로 놀러가서 헤엄을 치며 놀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춥다고 방안에만 움추려 있는 것보단 밖에서 맘껏 뛰놀며 개구장이 짓을 하더라도 건강하게만 성장한다면 그또한 복이라 생각해봅니다. 이다음에 제가 계곡 옆으로 자리를 잡게되면 꼭 최평균 작가님과 함께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갈수 있도록 지금부터 산좋고 경치 좋은 곳을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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