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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2-01-11 12:35
ㆍIP: 58.xxx.46
광 팔고 돈 뺏기고
광 팔고 돈 뺏기고 / 임정수




한참 신나게 고스톱을 치다가 찬물을 끼얹은 사연을 얘기할까 한다.

원래 노름이란 것이 장소불문하고 어딜 가더라도,
밑천은 많이 나왔어도 어느누구 하나 땄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은 없다.

다들 따놓고도 잃었다 하니 누가 땄는지 정말로 딴사람은 오리무중일뿐...

나 역시 노름이라곤 포카 몇 번 해본 것 뿐이고,
고스톱 몇 번 쳐본 것 뿐이라서 그렇게 거창하게 내세울 것은 없다.

그날 내옆엔 어리버리한 친구 하나가 같이 고스톱을 쳤었다.

그는 이미 많은 돈을 잃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도 상기된 표정으로 굳어 있었는데,
가진 돈을 거의 다 잃었고 밑천도 없는 중에 모처럼 4광에다 쌍피까지 서너장이나 들어왔지만,
그가 선이 아니라 꼴치였기에 광을 팔고 죽어야했다.

그가 광값을 챙기며 손에 쥐었던 광과 쌍피를 보여줄 때에
내가 그것을 주워들면서 일광에다 삼광, 팔광, 구쌍피에다 똥쌍피...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른 화투와 섞어 기리를 해놓았다.

내뒤에서 구경하던 K후배가,
"달밤에 산보를 가서 술을 먹고 똥을 싼다..."며 거들었다.

한 점당 오백원씩 계산하여 광값을 치르고 시작하려는 찰나,
누군가 대통령이 떴다며 4장의 화투를 바닥에다 내려놓는 것이다.

어떤건가 싶어 내려다 보는데 팔이 넉장이었다.

어느 판이나 화투를 칠 때엔 규정을 정하기 나름인데,
대통령을 들었을 경우 천원씩 내기로 했었기에
다들 천원씩을 내는데 나는 기분이 나빠 내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대통령을 들었던 친구가 얼른 내어놓으라고 소릴지른다.

나는 그 친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또다시 못준다고 말했다.

"못준다."
"와? 못주노?"
"안줄란다."
"와?"
"그냥..."

"퍼뜩 도~?"
"싫다, 안줄란다."
"그라먼 반만이라도 도..."
"싫은데..."

"그라먼 천원짜리 한장이라도 도..."
"안할란다, 내가 천원을 받으면 모를까..."
"뭐?"

열받은 그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한바탕 싸울 기세로 노려보는 것이다.
옆에서 함께 고스톱을 치던 다른 친구들도 얼른 주라고 난리다.

"고마 주고 말지, 얼마나 한다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너거 같아도 못줄걸..."
"와? 무슨 일인데?"

한창 열받아 있는 친구는 아직도 분을 삼키지 못해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씩씩거린다.

"그래, 너거 같으면 순순히 주겠는가 내말좀 들어봐라."
"무슨 일인데요...?"
열받아 욕설을 퍼붓는 친구의 아내도 두눈을 말똥거리며 다가와 내앞에 앉았다.

"방금 이 친구가 광을 팔았는데..."
다들 쥐죽은 듯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내가 기리를 하면서 분명히 일광에다 삼광, 팔광, 구쌍피에다 똥쌍피..라고 말했었고,
K후배는 바로 내뒤에서,<달밤에 산보를 가서 술을 먹고 똥을 싼다...>며 한 말이 있는데...
그러면 나도 팔을 한 장 들고 있는데... 도대체 팔이 몇장이라는거고?"

그제사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쪽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그날 즐거웠던 고스톱 사건은 화기애매하게 끝을 보고야 말았고,
땄던 잃었던 판돈을 모두 끄내어 놓고 서로 맘 상하지 않게 골고루 나누어가졌다.

나?
나야 땄지...ㅎㅎㅎ

처음엔 잃었지만,
다 끝나고 돈을 나누어 가질 때에 잃었던 돈보다 더 불렀더니 챙겨줘서...ㅎㅎ

누군진 몰라도 죄책감을 느낀 친구가 양심상 본인의 돈은 챙기질 않고
골고루 조금씩 더 나누어 가질 수 있게 한건 아니었을까?

양심있는 그친구 덕분에 친구들의 우정이 깨어지지 않고 지금껏 변함없이 만날 수 있는 것도
그친구가 공부가 되어서 그릇이 꽉 차있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날의 범인이 누구였는진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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