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감문주
ㆍ작성일	2008-02-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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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잔의 약속
제목: 막걸리 한잔의 약속
감문주/ 수필

툇마루 가운데 앉으신 어르신 말씀이다.
“ 아주머님께 부탁을 드리고자 하니, 꼭 그렇게 해주세요.” 이를 때는 내 자신이 진지하게 무슨 이야기신데 그러하냐고 하면서 우물 앞에서 하던 빨래 손길을 멈추고 어르신 옆으로 가서 앉았다. 턱 수염을 쓰다듬으시면서 몇 번 잔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을 때 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노인은 살며시 눈을 내려 뜨고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고향이 단월면 봉성리라 하오. 제법 내노라. 하고 잘 살아 노비 종까지 두고 한 고을의 유지로 살았어요. 부모 재산 때문에 내가 외동아들로서 재산 불리는 것 보다. 경험도 없는 큰 사업을 해 본다고 탕진하고 낭비하는 방향으로 결국 이 지경이 되어 노후가 추잡스럽게 보이는 생활입니다. 지금 내 목표는 이 아이들 고등학교 까지 가르쳐 놓고 나면, 서울 큰 아들 집으로 들어갑니다. 조강지처한태서 소생한 큰 아들이 교감선생이라오. 그 아래 셋 딸은 모두 출가 했고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 셋을 키우면 내 의무는 끝나게 되는데 칠 남매 아이들 어미가 다르기 때문이요.

내가 이 아이들 장래를 어느 정도 준비해주고 나서 아들집으로 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 합니다. 할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데 아시다 시피 제가 술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면 술도 절제해야 하고 자유가 없는 인생이라, 사실 아주머니 집에서 죽을 때 까지 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아주머니가 허락을 안 하실 것 같아서 하는 부탁 말인데, 내가 죽으면 길 병원 앞 큰길위로 영구차가 지나갈 것인데 그때 영구차를 세우고 막걸리 한잔을 따려 주시겠어요? 우리 조상이 단월 선산에 모셔져 있고 나도 그곳 조강지처 곁으로 갈 것입니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이야 어떻게 평가를 하드라도 한 집에 사는 주인댁으로서 사람의 인정을 나눌 수 있는데 까지 나누고 살았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받아주면서 살아가는 동안 노인은 젊은 날의 꿈이 그리워 할머니 한분을 모시고 왔다. 단칸방에서 부부의 정을 느껴보겠다는 희망사항이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을 참으로 힘들게 하셨던 홍길동 같으신 분이다. 노인의 어려운 형편에 나름대로 경조사 일이 생기면, 노자 돈을 무조건 빌려 드려야 했다. 나는 틈틈이 반찬을 갖다드렸다. 김치 아닌 다른 반찬은 만들어 보지 않으신 분이기에, 그 보다 반찬을 사다 먹을 여유가 없는, 월 20키로 정부미 보조 배급으로 살아가는 처지였다. 우리 집 재래식부엌 뒷문으로 살그머니 반찬을 퍼다 나른 세월이 십년은 좋게 흘려 갔다.

노인네 자녀들은 이복형제라도 모두가 똑똑하고 잘 성장하였으며, 우애도 돈독했다. 부친 회갑 때 내 한복 한 벌을 아주 갖춰 지어 와서 인사를 하는데 마음 벅차도록 고맙게 받아 입었다. 어머니처럼 고맙다는 그들의 진심어린 눈물을 보았다. 출가한 딸들은 크게 배우지는 못했어도 사람됨이 지혜롭고 생각이 깊은 효자로서 잘 자라준 것에 고마워서 내가 더욱 적극적으로 인정을 베풀었는지 모르겠다.

이 노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란다. 자기 할아버지 와 자기 부모보다 더 무섭게 느껴져 많이 조심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노인은 보통노인들과 다르다. 만고풍상을 겪은 꾀가 많은 노인이다.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 할 줄도 아는 술수도 가졌다. 오랜 세월 야당 정치를 하신 분이다. 정치중독증세가 중증이라고 봐야 옳겠다. 선거철만 되면 술타령으로 내 속을 어지간히 괴롭혀 주신 분이다. 그래도 당신생각으로는 엄청 조심했다고 하니, 죄송하다는 인사치례다. 내 막내아들 중학 졸업하는 날, 아들 졸업식에도 못 갔다. 노인네 막내 딸 졸업식이 같은 날이라 여고졸업축하 객으로 다녀왔다. 이렇게 하여 노인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식들 공부를 끝 마쳤다. 나는 아주 냉정하게 노인을 서울 아들 댁으로 이사 보냈다.

지독한 홀아비 노인 냄새를 떠나보낸 속 시원한 기분인데 이사를 간 뒤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에 노인이 난데없이 불쑥 나타났다. 비계 없는 돼지고기 한 근을 끊었다면서 아무래도 아주머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신세 진 은혜야 다 갚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도리로서는 이렇게 찾아와서 인사를 드려야 마음이 가벼워 지겠다고, 여러 날 고민 끝에 그립고 보고 싶은 심정으로 아들 몰래 왔다는 인사말이다.   돼지고기 봉지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는 어르신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면서 “ 억만금보다 소중한 마음을 받겠습니다.” 했더니,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아들집 옥상에 올라가면 똑같은 집이 한 줄로 늘어선 동네가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아, 어느 집이 내 집인지 분별을 못해, 골목 밖 출입도 못 하여 먼 데 산을 바라보면서 아주머님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말씀이다. 아침진지를 차려 드리고 아들 댁에 연락을 해서 청량리까지 마중 나오라고 했다.

  그때 노인과 마지막을 하고 몇 년 후 우연히 노인의 막내딸이 고교 동창생 집으로 자주 놀러 온다기에 노인 안부를 물었더니, 노인은 2년 전에 돌아 가셨다는 것이었다. 노제를 올려 달라고 했는데, 막걸리 한 잔으로 영혼과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데, 만약 그 약속이 지켜졌다면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요? 서로 안부를 물어가면서 술 한 잔을 따르면서 참으로 머나 먼 저승길이라더니, 이렇게 빠른가요? 저 세상에 도달 하시면 어르신 맘대로 마을을 찾아 큰 집을 마련하여 조강지처모시고 자유롭게 사시라는 큰 절을, 생전에 정으로 한번, 다음 생을 위하여 또 한 번 , 정성껏 올려 드렸을 것이다. 그러하지 못한 많은 아쉬움에 섭섭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돌아가셔도 인연이 남았던 모양이다. 내가 몹시 앓았던 어느 날 밤 꿈이다.
아주머니 드리려고 잉어를 고아 놓았다면서 엄청 반가워 하셨다. 그 다음 날 우연히 5일장 터에서 처음 보는 할머니가 내 팔을 붙들고 약초 전으로 데리고 가면서 오가피나무를 삶은 물을 붓고 막걸리를 담아 먹어보라는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행하여 술을 빚어 먹었는데 술을 한 사발 마시자 말자 방귀가 나오는데 밤새도록 연속으로 풍풍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갔다. 하룻밤 사이에 부어올라 무겁든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 노인 조부님이 한약재를 다루셨고 부친도 한의원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그 어르신 은덕으로 내 건강을 되살렸나? 싶어서 살아생전 귀찮은 만남이라도 서로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 가면 훗날 이로운 일이 생긴다는 교훈 하나를 배웠다.

최 평균: 자기 몸안에 부처 있다고 하던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애롭고 베풀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있지만 그걸 막는
욕심이 커다라서 주저하고 외면 한다지요.
작가님은 마음의 부처가 스스럼 없이 욕심을 누르고 은정을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그 노인께서는 아마도 실제로 막걸리를 올려 달라는게 아니고
그런 작가님의 마음 한 탁배기를 원했던것 같습니다.
귀한 글에 머물며 지난 양평 강가에서의 대화 참 귀한 시간 이었습니다.
이 협회를 친정이라 생각하시고, 다음에 들리면 그 방구 많이 나오는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실수 있는가요?ㅎㅎㅎ
감문주 작가님 오래오래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그래야 작가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저도 오래도록 탁배기를 얻어 마실수 있으니까요.
건강하세요. -[02/26-11:03]-

감문주: 최평균선생님! 탁배기 나눌 친구가 없었는데 ~ 좋지요. -[02/27-10:07]-

감문주: 살아가는 동안 삶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면 술을 빚어 같이 나눈다는 것은 좋은 의가
된것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틈틈이 들려 주시는 최평균시인님의 시를 감명 깊게 감상 했습니다. -[02/27-10:09]-

박영자 2008-12-26 19:58	탁배기 처럼 구수한 아우님, 덕분에 우리는 한배를 탄 동지가 되었어요. 컴이 서틀어 한참 만에 문을 찾았네요 ㅎㅎㅎㅎ 아우님 어지간히 바쁘게 움직이고 탁백기 처럼 얼큰한 글 많이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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