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감문주
ㆍ작성일	2006-05-2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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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내 고향에서는 좁쌀 재배를 잘 하지 않았다. 드문 드문 밭두렁 가상자리에 외줄로 붉은 수수 씨앗을 뿌려 놓는다. 수수 싹이 가늘게 자라 바람에 나풀 거리면 잊은것 생각 나듯이 잡초로 부터 챙겨 주었다. 가을이 오면 탐스러운 수수 열매 이삭 이 길죽하게 고개를 숙여 익으면 여유있게 수숫대를 꺾어 가지런히 엮어 추녀 밑에 매달아 놓는다. 추수 타작이 다 끝나고 새 벼 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도 깔끔하게 마무리를 끝 마친고 나면 , 한가롭고 따스한 늦가을 맑은 날을 골라 마당에 멍석을 펼쳐놓고 수수 단을 풀어 방망이로 톡톡 두들겨 수수 를 털고 난 다음, 수숫를 가지런히 모아 적당히 물을 뿌려 자근자근 가볍게 밟아 놓고 수수 알은 키질하여 껍질을 날려 보내고 깔끔히 손질하여 한바가지 퍼서 물에 담 군다.

흰서리가 내린 노란 초가지붕 에 붉은 고추가 서리를 뒤집어쓰고 아침 햇살을 하얗게 맞이하는데 할머니 말씀이 들린다. 오늘아침에 까치가 얼어 죽었나? 비둘기가 얼어 죽었나? 아랫목에서 꿈적도 안하던 우리들은 우르르 방문을 열고 뜰 안을 내다본다. 얼른 세수해야지~ 손자손녀들의 늦잠을 깨우느라, 은근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그 말에 벌떡 일어나는 동생들과 나는 . 겨울 내내 자주 듣게 될 동요 같은 잔소리가 이때부터 시작되는 계절이다. 소여물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아버지가 수숫대 빗자루를 만드셨다. 밭가에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뿌려놓고 천천히 거둬들이는 이유를, 그리고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심어두는 것은 수수팥떡 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수 빗자루를 작만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수 빗자루는 봉당이나 부엌 안마당을 곱게 쓸어 낼 수 있는 빗자루 중에서 으뜸이며 고급 청소용품이다.

할머니는 나무함지 안에 채질을 도래 도래 하면서 수수가루를 내린다. 어머니는 채질에서 나오는 *무구리를(덜 부서진 낱 알갱이) 절구에 넣고 절구 매로 쿵쿵 찧는다. 오늘 한나절은 수수 *뿌꿈이 (수수가루부침) 를 해 줄 모양이다. 손자손녀 간식거리로 늙은 호박도 쪄 주시고 고구마도 쪄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장날이 되면 일 년 식량이 모자라는 줄 뻔히 알면서 몇 됫박 쌀을 퍼 자루에 담아 머리에 이고 장에 내다 팔아서 낙동강 물고기를 사 와서 호박 우거리 * (늙은 호박 말린 것) 깔고 물고기를 그 위에 올려 고추장고춧가루를 섞어 마늘 양념하여 조려놓으면 자연식 단맛이 은근하여 맛이 좋았다. 내가 자라온 고장에서는 중식 곡식으로서 쌀, 보리, 밀. 순서 데로 논밭 면적에 90% 를 재배하고 수수 좁쌀 여러 가지 콩 종류는 부재료 간식 먹 거리로 논 밭 자투리땅 에 심었다.

그 시절은 흔히 먹는 중식 겸 간식이며 색다른 별미는 아니었다. 전답이 많고 적은 소유에 따라 대소사 격식에 맞춰 특별난 음식을 개발하여 먹을 수 있느냐와 부 재료라도 끼니를 떼 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느냐에 따라 빈부의 격차라고 할가 ... 생일날이면 찹쌀에 노랑 *잔 수(좁쌀) 을 넣은 별미 팥밥이 가마솥에 푸짐하게 지여진다. 그 중에 좁쌀은 잘잘하고 노랑 알갱이가 별미였다. 여러 가지 종류의 잡곡을 색 맞추어 식구들 생일 밥에 조금씩 올려 주시던 할머니의 지혜로운 삶을 보면서 자랐다.

내가 신혼살림을 할 때 주인댁에서 좁쌀 찰떡을 해 먹는 것을 보고 여간 놀라지 않았다. 찹쌀로만 인절미가 되는 줄 알았는데 좁쌀도 인절미처럼 찰떡이 되는 것을 보고 호기심과 신비로운 그 떡 맛 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주인댁 앞집에서는 빛깔 고운 좁쌀 밥을 지여 먹는데 맛있게 보여서 한 숟가락 떠먹어보니 혀가 어쩌나 껄끄러운지 고약했다. 그러나 그 고장 사람들은 (경기도 포천 청산면) 좁쌀 밥이 구수 하다고 했다. 쌀로 지은 밥은 이밥이라고 하면서 쌀을 귀히 여겼다. 차조는 약간 초록색 이며 매조는 노란색으로 찰기가 없었다. 그런데 내 눈과 입맛에 아직도 구분이 안 되는 것이 있다. 기장쌀과 좁쌀은 모양과 맛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기장쌀, 차좁쌀이라는 이야기들은 요즘 들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잡곡을 선호 하는 건강식품 문화의 정착으로 옛 우리선조들이 재배했던 잡곡들을 많이 찾기 때문에 시장곡물 유통에서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재래시장으로 나가보면 가정 방아기계에서 새로 갓 찧은 것이라며 맛이 구수 하고 입맛이 당긴다는 상인들의 유혹 선전이 정겨워 차좁쌀 한말을 사다 놓았는데, 손자 녀석들이 "할머니 집에 우리 지금 가고 있어요." 라는 손 전화다.

지금 오고 있다는 첫 손자 녀석 아범이 두 살 나이로 홍역을 앓고 있을때 주인댁 할머니께서 팥을 넣고 차좁쌀 떡을 쪄 놓고 삼신할머니께 빌며 홍역 열꽃이 쉽게 잘 돋는다고 차좁쌀과 팥을 한 되 박 씩 주셨다. 나로서는 좁쌀로 떡을 만들어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아예 만들 줄을 몰랐다. 애기는 열에 취하여 힘들어 하는데, 그렇게 효능이 좋다는 비법의 재료를 그냥 밀쳐 둘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우선 팥을 삶았다. 그리고 팥 삶은 뜨거운 물에 좁쌀을 하루쯤 담구어 놓았다가 작은 바구니 뚜껑을 뒤집어 손수건을 깔고 팥과 좁쌀을 건져 앉혀서 솥에 물을 붓고 밥주발을 엎어놓고 그 위에 뚜껑시루를 올려놓고 솥뚜껑을 덮어 무조건 불을 지폈다. 한 시간 쯤 김이 오르고 한참 뜸을 드려 솥뚜껑을 열어 보니 좁쌀은 찐 빵처럼 넙적 퍼져있고 팥은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시루 채로 들고 들어와서 방이라고 한 칸 월세 방 윗목에다 냉수 한 사발과 떡밥 시루로 상차림을 해 놓고 무조건 두 손으로 싹싹 빌며 ,큰 절을 넙죽 넙죽 하면서 우리 첫아들 홍역을 수월하게 잘 마무리 해 달라고 빌고 매달렸다. 남편 월급이 워낙 낮아 애기를 병원 데리고 갈 엄두도 못 내었던 처지였다. 그때 일이 좁쌀만 보면 떠올랐다. 홍역을 앓고 난 뒤 후유증 홍역 기침으로 오래 동안 고생한 큰 아이는 튼실한 직업군인이 되여 손자 손녀도 튼실하고 며느리도 듬직하게 건강하며 무엇이든지 잘 먹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요즘 들어 손자 녀석들이 온다면 반가위지면서도 속으로는 겁이 났다. 무엇이에요? 궁금하여 물어보면 척척 대답 잘 해주는 척척 박사할머니라고 생각하는 그 녀석들이 이것이 뭐예요? 영양 가치는요? 나무 모양은요? 좁쌀은 어느 나라가 고향이에요? 한 사발에 몇 알이 담길까? 맨 처음 누가 제일 먼저 먹어 보았을까요? 상상도 못할 무서운 질문에 쫓겨 허둥지둥 좁쌀 자루를 들어다가 장독대에 올라가서 배가 부른 빈 독 안에 감춰놓았다. 시간나면 경로당에 가서 연세 드신 할머니들에게 상세히 여쭤보고 좀 알아본 다음 손자 녀석들에게 좁쌀 떡을 맛있게 멋지게 만들어 주어야지. 옛날 우리할머니 처럼 ... 슬기롭게 보여야겠다는 욕심이다. 초보 할머니의 서투른 상식과 얕은 삶의 지식으로 마음은 여러 가지로 고달픈 생각이 들었다. 부르렁 장독대 아래 골목으로 찌그러진 경차가 지나간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경차 뒤 유리창에 ( 왕초보 운전자 랍니다.) 아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자랑스럽게 굴려가는 것이 부럽고 나를 닮은 저 늙은 덜렁이 작은 차가 오늘 따라 멋져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