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01-31 10:06

ㆍIP: 180.xxx.102

소설 - 진 혼 곡 (鎭魂曲 )

시련의 서막

석 정의 우물물은 사시사철 달고 시원했다.
강씨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을 길어 머리에 똬리를 이고 그 위에 물 단지를 이고 집으로 향했다.
파란 대밭이 바람에 넘실넘실 대는 것이 마치 바닷물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제법 커다란 키에 성숙할 때로 성숙한 강씨댁은 누가 보아도 탐낼만했다.
갸름한 얼굴에 봉긋하게 솟은 가슴 잘록한 허리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으로 물동이를 받쳐 들고 걷는 모습은 참으로 고운 색시다.
긴 목은 바닷가 사람답지 않게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하얗고 맑은 살결이 윤이 났다.

우물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제법 넓은 길을 따라 걷다가 왼쪽 대나무로 우거진 숲 사이를 돌아 마을의 위쪽에 마치 제비집같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항아리에 물은 찰랑거리며 거울처럼 맑아 얼굴이 비쳐 보였고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항아리에 가득 담겨있다.
항아리에 흘러내리는 물기를 정성스럽게 닦고 동그란 받침을 머리에 고여 항아리를 이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끼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함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숲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강씨댁에게 다가왔고 그 순간 물동이는 허공을 나르고 하늘로 아득한 파열음이 울려 퍼져 가고 있었다.
떨그렁떨그렁 종소리가 들리고 대나무밭에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따라 먼 산언저리마다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 울음소리가 슬프게 울고 있었다.
대숲에서 가지가 이파리를 흔들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래처럼 들리다 일 순간 두 소리가 뒤엉켜 복잡하게 들려왔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눈을 떠 보니 배가 놈이 흘러내린 바지를 추스르고 바람결에 담배 연기를 뿜으며 내려다보고 있다.
배가의 담뱃불은 반짝이는 작은 아궁이를 닮기도 했고 살쾡이의 눈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담뱃불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비벼 끄고 난 배가는 험상궂은 얼굴로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발정 난 암캐가 욕정을 채우고 난 다음처럼 음흉스러운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고 앉아 있다.
눈은 독사처럼 번뜩이고 사나웠으며 알 수 없는 살기로 가득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죽여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서방 놈에게 네가 꼬리를 쳤다고 일러바쳐 물골이 나게 할 것이라고 거품을 물며 으름장을 놓았다.
열아홉 새색시는 대나무밭 골바람에 떠는 새파란 이파리보다 더 요란한 몸짓으로 떨고 있었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칼이 울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무참히 유린당한 아랫도리가 뻐근하고 완력에 의해서 넘어지면서 옆구리를 체인 건지 부딪친 건지 모르지만 욱신거리며 저려다.

힘없이 누워 배가 놈이 사라져가는 뒤통수를 바라보다 문득 하늘에 구름이 강물처럼 빠르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구름 따라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과 구름이 더 새파랗게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뜻 모를 웃음이 나는데 그것은 어이없는 웃음인 것 같았다.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를 악물고 온몸에 힘을 주고 일어선 강씨댁은 엉망으로 풀어진 앞섶이며 치맛자락을 추스르고 흐트러진 머리 매무새를 고치며 힘겹게 대밭 길가로 내려섰다.

길가에 수없이 널려 있는 물동이의 파편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파편 조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가슴 깊이 날아와 박히는 것처럼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깨어진 항아리 쪼가리를 들고 바보스럽게 몇 조각을 맞추어 보다 말고 시어머니에게 뭐라 변명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시어머니의 부라리는 눈이 서슬 퍼런 모습으로 달려들었고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어찌했기에 물 단지를 깼냐고 불호령 하는 모습이 가냘픈 강씨댁을 자꾸만 길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앞으로 일어날 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늑골 사이로 파고들며 또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신영애

2020-01-31 10:22

이도연 작가님..
반갑습니다.

누군가의 가슴깊은곳으로부터의
깊은 울림으로 오는 진혼곡..
잘 배람하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엄청난 상처보다
깨진 항아리에 시어머니로부터
불호령을 들을 일이 더 걱정인
강씨댁을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삶을 보는듯합니다.

의도하지않고 원하지 않았으나
인생길에서 걸림돌을 만나
꼬꾸라지기도 하지요.
넘어지지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은 넘어져 더 큰상처를
입기도 하지요.

문득, 우리 삶의
많은 강씨댁을 위하여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뜨겁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향필하세요.


이도연	신영애 작가님 부족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 상 정진하고 고뇌하는 작가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3 10:28

김상화

2020-02-02 19:52

물동이를 이고 배가 놈에게 험한 꼴을 당했군요
얼마나 무섭고 겁이 낮을까요?
몸을 강탈당한 것도 문제지만 시어머니로부터 꾸중
듣는 것이 더큰일 같습니다.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만든 뙤아리 받침을 하였군요
우리나라 60년 전에는 아낙네 들은 거의 그런 생활을 했지요

진 혼 곡 (鎭魂曲 ) 즐겁게 배람하고 갑니다
이도연 작가님 아름다운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이월입니다
이달엔 건강 행복 행운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도연	김상화 작가님 부족한 글에 희망을 불어 넣어 격려를 해주시니 힘이 남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2/3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