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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근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필근
ㆍ작성일	2019-10-16 19:43

ㆍIP: 211.xxx.240

비 내리는 오전의 저잣거리에서

태풍 영향으로 억수같이 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
이런 날이라면 어느 시골집 처마마루에 앉아 초록을 배경 삼아 흠씬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호사(豪奢)도 부릴 법하건만, 정작 내게 허용된 건 3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이는 느티나무 가지의 흔들림과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담배 하러 갔다 온 짧은 시간에도 바지 아랫단이 젖어버렸다. 외출이나 밖에 나간다는 게 썩 내키지 않을 때이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내일 군(軍) 부대 장병들 법회(法會) 공양물 마련을 위해 부전시장에 꼭 가야만 했다.
가기 전 집사람이 보낸 톡을 다시 보았다.
‘만두 8개, 떡볶이 떡 5개(1,100원 짜리), 오뎅 2개(2,500원 짜리) 부탁드려요.’
이외에 파, 무, 음료수 등 이것저것 사느라 보통 집사람과 함께 장을 보러가지만, 지인들 모임으로 어제 사천에 가 있어 하릴없이 혼자 가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떡집이었건만 ‘만두 여덟 개요’라고 말하니 ‘여덟 개? 봉지로요? 아니면 낱개로요?’라고 반문하였다. ‘아니, 몇 번 갔는데도 말하면 모르시나?’ 싶었는데, 그게 나 역시 봉지인지 낱개인지 순간 잘 몰라서였다. 봉지 같은데도 확신이 없어 하릴없이 집사람에게 전화할 수 밖에 없었다.
집사람이 주문할 때는 척척 알아서 주더니만 그러지 못한 걸 보니 내 얼굴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같이 가더라도 뒷전에 물러서 있다 운반만 했으니 그럴 법 했겠다.
구입 후 점심 겸해서 가는 국밥집도 혼자 들렀다.
너댓 집 늘어서 있는 국밥가게 쪽으로 걸어갈라치면 앞치마 두른 아주머니들의 눈치빠른 호객행위에 ‘어느 집 가나’ 조금은 혼란스러워진다. ‘들어 오라’는 목소리와 바지런한 손짓에 ‘전에는 이 집 갔으니 이번에는 …’ 하다가 ‘그냥 아무 데나 가지 …’하며 망설이다, 결국 목소리 큰 아주머니 가게로 들어가곤 했다.
평소처럼 선지국밥을 주문하였다. 폰 잠깐 들여다보는 사이에 아침끼니를 놓친 나에게 국밥과 깍두기 무 몇 조각이 ‘툭’ 먹음직스럽게 식탁 위에 놓여 져 있었다. 자, 먹자.
수저통의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짝이 맞지 않았다. 새로 하나를 끄집어 맞춰보니 또 맞지 않았다. 세 번째 다시 꺼내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이거 봐라.’ 보통의 경우 두서너 번 정도 하면 맞지 않던가.
네 번째 꺼낼 건 처음 집었던 거와는 맞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두세 번째 거와는 맞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집어서 맞춰보니 그마저 아니었다. 대체 서로 맞는 건 어느 거야?
몇 번째까지 가야 하나 부아가 치미는가 싶더니 한편으론 슬며시 재미가 있어졌다. 다섯 번, 여섯 번…. 아홉 번째 가서야 꼭 맞는 건 아니지만 서로 엇비슷하게 짝을 맞출 수 있는 게 나왔다. 아홉 번!!
그동안 비슷한 게 하나 없이 제각각의 모양인 젓가락이 수저통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놀라웠다. 하지만 어쩌면 쉼 없이 수저를 씻고 꽂아두고 하느라 제 모양을 일일이 맞출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닐까.

수저통을 보노라니 5천원 국밥에 한 끼 허기를 채우는 많은 필부가 있고, 그들을 대상으로 또 한푼 두푼 모으는 아낙들의 억척같은 삶이 그 안에 녹아있는 거 같았다.
국밥집 앞만 지나도 ‘이리 오세요’라며 목청 키우는 아줌마들의 손짓, 흰 김이 피어오르는 큰 솥에 연신 국을 끓이는 마디 굵은 팔뚝, 음식 나르거나 요금 받느라 바쁜 붉은 색 앞치마 여인네들의 팔팔한 생동감들이 그래서 더없이 정겨워 보인, 비 내리는 오전의 저잣거리 풍경이었다. 사고 파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화엄의 세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친구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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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흔적	1	김필근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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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녀의 꿈	1	김필근	2019-10-16

3	아버지의 친구들		김필근	2019-10-16

2	비 내리는 오전의 저잣거리에서		김필근	2019-10-16

1	환영합니다	2	poemmusic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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