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필근
ㆍ작성일	2019-10-16 19:49

ㆍIP: 211.xxx.240

애들 뛰는 거 봤제

통영 욕지도에 간 적이 있었다.
배로 가는 동안, 갑판에서의 바다구경도 시들해져서 이리저리 안을 둘러보았다. 시와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일종의 애향시였는데 그게 선체 군데군데 있었다. 글쓴이는 김 누구-욕지 몇 기, 이 누구-욕지 몇 기… 등으로 학교 졸업생들이었다.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들대로의 소박한 고향사랑을 담고 있었다.
‘욕지도’라는 외딴 섬이라 고향도 각별하겠지만, 사람 역시도 여느 학교 동창들보다 더 짠하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도(影島) 연합 체육대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욕지도가 떠올랐다. ‘섬’이라는 지역적 여건으로 해서 갖는 ‘우리끼리’의 묘한 감정적 유대감이 들어서였다. 부산이라도 ‘영도’이기에 가능한 ‘연합’이 아니었을까.

앞만 보고 사느라 다들 바쁘더니 이제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뒹굴고 싶은 연배가 되었구나. 만국기가 내걸리고 덤블링과 기마전에 달리기 등으로 왁자지껄했던 그때의 운동회가 아스라이 연상되었다. 그 정도야 아니겠지만 중년이 되어 맞이하는 운동회에 가벼이 설레었다. 화사하게 핀 벚꽃만큼이나 영도초등학교로 향하는 발걸음도 경쾌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몇몇이 와 있었다. 멀리서 온 상식이와 덕성이도 일찌감치 자리를 턱 하니 잡고 있었다.
“상식아, 언제 왔는데 이래 일찍 나왔어?”
“어젯밤에 왔어. 잘 지냈나?”
건네는 손이 우람하다. 광주에 있음에도 전날 내려와 행사 마지막까지 자리를 함께 한 그 친구는 큰 체격만큼이나 든든하다. 혜란이는 음식준비며 친구들 챙기느라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남항의 살림꾼이라 아니할 수 없는 맏며느리 같은 친구 아닌가.
못 보던 동기 기(旗)가 있었다.
“며칠 전에 새로 하나 만들었어.”
회장이란 직은 역시나 이렇게 세세하게 신경쓰고 고생을 하는 자리였다.
봉학초 남자 한 명이 남중학교 나오지 않았냐며 내게 물었다. 그렇다 대답하자, “그래! 반가워. 나 모르겠어? 조**야. 너 이름이 김 뭐였는데…” 라고 반색을 하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했다. 고교 친구도 몇이 만났다. 서로 “어? 너 여기 나왔어?”며 웃었다. 하긴 영도에 있는 중학교고 고교에서 다녔으니 초등학교도 태반이 영도임은 당연할 터인데도 새삼 반가웠다. 듣다 보니 여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되자 각 학교별 친구들이 모두 모여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초등 때처럼, 이렇게 운동장에 모여 양팔 벌려 목 돌리고 허리 돌린 적이 얼마만 인지. 아득했다.
“무릎 관절 안 좋은 분이 계실 거 같아 무릎 굽히기는 생략합니다.”
어구구.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배려성 멘트는 우리들이 50대 중반의 아줌마고 아재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자, 학교별 댄스 대표선수가 나와서 분위기 띄우고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하듯 모두 경숙이를 가리켰다. 경숙이 또한 망설임 없이 나가서 막춤을 추니 약간 쌀쌀했던 날씨에 움츠려들었던 어깨들이 들썩거렸다.
학교별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족구시합 하러 나오란다. 졸업 후 처음 본 강수며 호기까지 합세하였는데 아쉽게도 졌다. 나중에 식당에서 정모할 때 보니 강수의 걷는 폼이 매우 불편해 보였다.
“왜 그래?
“족구하다 다리가 삐끗하면서 접지러져 병원에서 기부스하고 왔어”
“기부스? 그렇게 많이 다쳤어?”
“도저히 안 돼서 병원갔더니 기부스해야 된다 그라네.”
그 날 피를 본 친구가 둘이-영실이와 나. 아주 가벼운 찰과상이었지만- 더 있었으니 어쨌든 3명이 다친 셈이었다.
줄다리기에서는 앞 뒤쪽 힘을 골고루 하는 게 좋다는 작전에 따라 남녀 섞였으나 초반부터 맥없이 밀리고 말았다. 하지만 굵은 동아리줄을 꽉 부여잡는 그 손들만큼이나 몸과 마음은 서로 하나 되었다.
단체 줄넘기에서도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줄에 걸리지 않으려 맞추어 뛰는 눈동자들은 반짝였으며, 무거운 몸들을 잘도 폴짝폴짝 거렸다.
남녀 계주가 압권이었다. 3～400m는 족히 보이는 트랙을 똑같이 한 바퀴씩 뛰기로 하였다. 여자에겐 무리 아니냐는 얘기도 얼핏 들리는데, 그냥 진행한단다. 첫 주자 소영이부터 수빈이, 경희, 용승이, 임길이가 이어받다 그 중에 제일 잘 뛴다는 성재가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수빈이는 그 전에 몸 좀 풀자며 나와 같이 100m 정도를 뛰었는데 예상과 달리 무척 날쌨다. 따라 잡지를 못했다. 싱가폴에서 20년 정도 거주하다 국내에 온 지 1년 조금 넘었다는 경희도 나서길래,
“언제, 뛰어봤어?”
“응, 싱가폴에서 매년 한인체육대회 때 달리기 선수로 뛰었어”라며 머리를 질끈 동여매었다. 그 건강함이 아름다웠다. 용승이나 임길이, 성재는 매달 한번씩 축구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으니 걱정할 여지가 없었다.
계주는 어느 학교가 잘하고 못하고 보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순위가 바뀌기도 하거니와 그 긴장감과 재미로 해서 모두들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 “땅～”
마음만은 10대인 50대 여자 5명이 바톤을 움켜쥐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중간에 엉키는가 싶어 저러다 넘어지겠다 걱정했는데 용케도 잘 치고 나갔다. 중간순위에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더니 1위와의 격차가 크지 않게 되었으나 결국 2위로 들어섰다.
“결승선이 여긴 줄 알았어. 저기였으면 더 달렸을텐데…”
성재가 못내 아쉬워했다. 하긴 꼭 저만큼의 거리를 다시 전력질주하기가 보기보다 싶지 않음을 잘 안다. 더 힘내면 될 것 같은데도, ‘고지가 바로 저기’라는 마음과 달리 뛰어지질 않는다. 그러다 과욕하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애들 뛰는 거 봤제?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주네. 하하”
에휴～. 나이? 숫자에 불과하다며 젊다고 외치는데,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태는 영락없이 중년이었다. 무리하지 말라며 서로서로 타이르기도 하니, 의욕만으론 안 되는 중년을 자인하기도 하는 셈이다. 친구들이 나와 물을 주기도 하고 안아주거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6명 모두 아주 잘했다.
“남자 계주도 하자고 합니다. 각 학교는 4명씩 나와 주십시오.”
예정에 없던 종목을 갑자기 하잔다. 급한대로 나를 포함해 3명은 맞췄는데 한 명이 모자랐다.
“성재야, 니가 한 번 더 띠라.”
“그래도 니가 제일 낫다 아이가.”
라며 여기저기서 잡아끌었다. 허허…, 친구들이 사람 하나 잡으러 하나. 그럼에도 “그래!” 하며 성재가 나섰다. 보기에는 꼭 유약한 사대부 샌님같은 친구가 아직까지 축구를 한다는 것도 놀라왔지만, 승부욕도 만만찮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뛰어본 적이 몇 십 년 동안에 없었다. 차로, 아니면 걸으며 오고가니 뛸 일이 없었다. 운동을 썩 즐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참가해 보고 싶었고, 올해부터 점심시간 때 탁구를 하며 좀 움직였기에 통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역시 성재가 마지막 주자로 뛰었는데 결과는 1등! 이었다. 악바리 같은 친구들이다. 다리는 어떠냐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아직 땡기긴 하나 뿌듯하기도 하다.
2인 3각 경기도 짧은 시간에 각자 연습을 얼른 하더니 2위를 하였다. 나도 해 보니 둘이 하나 둘, 하나 둘 호흡 맞추고 보폭을 크게 하는 게 요령이었다. 자신이 생겨 사회자에게 얼른 뛰어가 대표선수끼리 한 번 더 하자 했더니,
“자, 3인 4각 경기를 하겠습니다. 선수 나오세요.” 한다.
헐, 그게 아니라 해도 사람들이 나오니 진행이 되어 버렸다. 급한대로 연습을 좀 했는데 실전에서 그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앞 조에서 잘 해줬는데 우리 조에서 반환점을 돌고는 발이 엇갈려 3명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엎어져 버렸다. 영실이는 왼쪽 손바닥을, 나는 무릎을 까였다. 크게 안 다쳐 다행이었으나 3명이 발맞추기란 2명보다 몇 배 어려웠다.
어느덧 시간도 되어 마지막으로 노래자랑을 하게 되었다. 언제 그렇게들 신청을 해 놓았는지 덕성이가 끝나니 주미, 영실이, 부연이, 기정이가 연속해 불렀다.
“백댄스가 제일 많이 나왔으니, 사회자 직권으로 100점 추가 드립니다.” 와～아!
“단, 사회자가 주는 점수는 심사에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야～아!
사회자 멘트 하나에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였다. 나는 음치에다 그나마 술이라도 몇 잔해야 그 기운으로 겨우 노래한다. 맨 정신으로는 할 엄두를 못 낸다. 단상에 올라가 노래 부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감정을 넣어 잔뜩 눈감으며 노래하는 기정이 모습을 밴드에 올렸더니, ‘울지마라, 우리가 잘못했다’라며 누가 재치있고 재밌는 댓글을 달았다. 재치, 순발력, 그리고 상상력!으로 하자면 창호를 따라올 친구들이 없지 않을까. 어찌나 기발하고도 재밌는지 그런 사고의 유연성에 자주 놀란다. 모여서 얘기하면 주위를 무척이나 즐겁게 해 줄 분위기의 친구 같기도 하다.
끝내고 돌아오니 혜란이 등 몇이 정리를 해 놓아 손댈 여지가 별로 없었다. 표나지 않게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별 치울 것도 없이 간단히 마무리하는 와중에, 남은 음식과 기타 챙겨야 할 물건 등을 또 혜란이가 차로 옮기느라 수고를 하였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와줘서 고마워”라고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실제, 왔다가 먼저 간 친구들까지 하면 대략 35명 정도는 되었으니 과연 그럴만 했다. 처음 본 친구들도 있었는데 끝까지 자리를 함께 못해 아쉬웠다.
총무가 찬조 내역을 알려 주는데 동참이 많았다. 뭔가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 될 수 있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좋은 날에는 노래가 또한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즐거운 분위기는 노래방에서도 쭈욱 이어졌다. ‘내일은 없’을 것 같이 노래에, 춤에 웃음소리가 가득하였다. 도저히 끝낼 기색이 없자 혜란이가 제동을 걸었다.
“이제 그만 가～자아”
노래도 끝내고 잠시 한 마디씩 하였다.
“이번 체육대회를 통해서 나는 친구들의 우정을 봤어. 그리고 서로 단합하고 아끼며 좋은 친구들이 되고자 하는 모습도 같이 말이야. 그러려면 또 서로서로 도와줘야 해. 고맙다, 친구들아” 멀리서 왔던 상식이었다.
맞다. 정이란 것도 얼굴 자주 보는데서 싹트는 거 아니겠어. 더군다나 초등 때 같은 운동장에서, 골목길에서 뛰놀고 쏘다니던 우리들 아니었던가. 어떤 사회 친구들보다도 어린 시절을 맞장구치며 공감할 수 있어 소중하고도, 만나면 또 유쾌한 우리들이었다. 그 때문에 남항뿐 아니라 다른 학교 친구들까지도 모일 수 있었던 행사 아니었을까.

회장과 총무가 참으로 고생 많았다. 무릇 행사를 준비하자면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다. 그 모든 번잡함과 수고를 감내해 준 두 친구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도 가슴 한 켠을 넉넉하게 해 준다. 모두들 사랑해.

권영심 2020-03-23 08:10	영도라면 부산 영도일까요? 저도 영도 태생이라 정독하면서 잠시 그리움에 잠겼습니다 영도 이송도 앞 환상도로의 벚꽃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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