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공사 중이다

신 영 애

    어쩌다 한 번씩 가게 되는 은행의 건물이 리모델링을 하는지 건물 외벽에 공사 중임을 알리는 파란 담장이 쳐 있었다. 통행에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현장 소장의 사인이 들어간 안내판이 한쪽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외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내부로 통하는 계단 모서리도 깨져 있었던 게 생각났다. 한참 후에 다시 가 보니 계단 옆에 바퀴가 오르내리기 편하도록 경사로가 생겨 있고, 건물 외벽은 새로 올린 것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내부 시설도 조금 바뀌어 이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편리하게 변해 있었다. 다 부숴버리지 않고 이렇게 말끔하게 새것처럼 바꾸어 놓다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문득 나도 이렇게 공사를 해서 나의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꼈던 일들은 특별한 순간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부족한 듯해도 그 속에서 만족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함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그보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회사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꾸만 작아지는 내가 눈에 들어왔다. 성적에 구속되어 아이들을 닦달하는 내가 보이고, 연봉이 오를수록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악바리같이 일하는 내가 안쓰러웠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앞섰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젊은 시절을 동분서주하면서 보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생 그리 길지 않으니, 즐기면서 살자고 말하는 남편과 자꾸 부딪쳤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중에 행복을 찾는다는 건 때를 놓쳐버린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최선을 다한다고 억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자꾸 엇나가는 내가 싫었고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누군가 그랬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고. 좋아하는 것은 나 혼자와의 관계이지만, 잘하는 것은 그것과 관계있는 그 누군가도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좋아하기만 했을 뿐 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공사하기로 했다.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수정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달려가다가는 어느 순간 삶의 앰뷸런스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이 공사 중임을 시인하고 그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했다.

    흔히들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수시로 보수를 하고 공사를 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고쳐야 한다. 누군가의 삶의 통행에 불편을 준 것이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집중하고 반복되게 사랑으로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나를 공사해야한다. 그런 사랑이 없는 삶은 비극이 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사를 시작한다. 내 심장을 뛰게 하고 관심이 가며 나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내 삶에 비로소 사랑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작년 친정엄마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했다. 살갑지 못한 딸이었고, 다정하지도 못했다. 그때 곁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는데, 동생과 침대에서 우리가 막 뛰고 있었거든. 그때 엄마가 먼지 난다고 뛰지 마라 했는데도 계속 뛰었어. 그러자 외할머니께서 내 자식 힘들게 하는 놈은 누구라도 싫다면서 그만 뛰라고 하셨어. 외할머니한테 엄마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겠더라.”라고. 아주 오래전의 일을 마치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고맙고 가슴 저 밑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 했다.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보였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그런 소중한 존재이다. 나이 드신 부모와 젊은 자식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만의 생각은 한 수 접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긴장을 늦추고 다가가야 한다. 나 자신의 이기심과 편견과 교만을 내려놓고 진정한 가치를 위해 늘 보수하고 공사를 해야 한다.

   비록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보수 공사를 함으로써 이전보다 좀 더 좋아진 것처럼 나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 안아주고 격려해주며 계속 다듬어 가야 한다. 하루하루 성품을 다듬고 부족한 인격을 공사해 가면서 비로소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하다면 지금 공사를 해야 할 때가 된 거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렇게 삶의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다듬어 가면서 나는 멈춰져있는 것이 아니라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따뜻한 햇살 같은 평안한 삶 속에서 어느 날 바람 한 줌이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흔들어 놓듯이, 나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귀 기울여 듣는다. 나의 삶은 늘 ‘공사 중’이다. 내 희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 동네 건물들이 계속 리모델링을 이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