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투

신 영 애

  아이들이 고등학교 시절, 밤새워 공부하며 지쳐가던 때였다. 가만히 두어도 혼자 화내고 짜증을 내면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고3 아닌가. 그날은 9월 모의고사 끝나고 추석 전쯤이었다. 컨디션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아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깟 공부, 어느 날은 하루쯤 확 농땡이 치고 싶지 않아? 차라리 그러고 나면 기분전환도 되어서 좀 집중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엄마는 공부하기 싫으면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본의 아니게 둘러댄다는 게 그만 민화투를 했다고 해버렸다. 민화투가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그럼 가르쳐주겠다고 하여 고3인 큰아이와 고2인 둘째도 불러서 셋이 모여 민화투를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고3 수능생에게 그런 걸 가르치고 있다고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이기고 지는가보다 그냥 단순한 놀이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잘하지도 못하지만, 흥미도 없어서인지 그 이후로 잊혀갔다.

  지난해 오랜만에 아이들이 다시 민화투를 하자고 하였다. 심심해서라기보다 용돈을 두둑하게 받아내기 위한 심산 같았다. 화투 치는 규칙을 몰라도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친절하게 다 알려주니 아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점수는 둘째 아이가 적기로 했다. 민화투를 한 장씩 내고 뒤집을 때마다 그림이 너무 아름답고 이쁘다느니, 이 화투장은 내가 갖고 싶다느니 한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이 있다더니 딱 그랬다. 아이들은 누가 이겼는지가 관심 있는 게 아니라 용돈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점수를 많이 따야 한다고 했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점수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비약이나 풍약을 해야지만 좋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20점짜리 달이 있는 화투장을 갖고 싶다는 둥, 비광의 우산 쓴 아저씨가 멋지다는 얘기만 했다. 자기에게 들어 온 화투장을 보여주면서 이거는 왜 석 장이나 나한테 왔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린다. 차마 점수가 없는 껍데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슬쩍 그쪽에 맞는 광을 내놓으면서 “어머, 이거 잘못 냈네. 아, 이거 20점짜린데.” 하면 아이들은 “아, 아, 안돼. 한번 내면 끝이야.” 한다. 상대방이 다 볼 수 있도록 엉성하게 두 손으로 쥐고 어떤 것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더니 얼씨구나 하면서 석 장을 한꺼번에 내려놓는다. 몇 번 하더니 20점짜리 화투장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부터는 행여 손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아싸, 나는 가만히 있어도 80점은 돼” 했다. 내가 점수를 많이 따면 보너스라고 하면서 20점짜리 화투장을 하나씩 가지고 가라고 하고, 아이들이 점수를 많이 따면 두 배로 계산해 주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은 내 주머니에서 용돈이 나갔고 아이들과 나는 즐거웠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형제들이 모이면 민화투를 즐기셨다. 기껏해야 1점에 10원이나 50원 정도 하였으니 큰 금액이 오갈 일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단돈 몇 푼이라도 잃는 것 보다 따는 것을 좋아하셔서 우리 형제들은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잃어주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 휴가차 친정에 갔을 때였다. 오랜만에 모인 형제들은 엄마와 함께 민화투를 했는데, 오빠들은 오래 하려면 적당히 잃어주어야 한다면서 눈치껏 하라고 당부를 했다. 어차피 우리 형제들이 이길 게임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너무 열중한 나머지 엄마가 점수를 잃고 말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오빠들이 내게 뭐라고 할 태세여서, 나는 맨 마지막 표를 취소하자고 했다. 엄마는 낙장불입이지만 오빠들과 언니는 그렇게 하자고하니 마지못해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거였다. 그렇게 겨우 넘어가는가 싶었다. 우리는 민화투를 하면서 서로에게 적당히 눈치를 주면서 엄마가 이길 수 있도록 몰아주기로 한 거였다. 우리 형제들이 아무리 잃어주고 져 주려고 노력해도 엄마가 좋은 화투장을 갖고 있지 않거나 뒤집기에서 놓쳐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럴 때면 일부터 두 장을 잡고 뒤집는 척하면서 다음 화투를 미리 보고 엄마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계속 점수를 잃고, 오빠한테만 자꾸 뒤집기가 성공하면서 높은 점수를 내고 있었다. 엄마가 질 게 뻔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화투가 잔뜩 널브러져 있던 군용담요를 양쪽 모서리를 잡고 홱 엎어버리셨다. 순간 화투장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각자 자기 앞에 어설프게 놓아둔 천 원짜리 몇 푼들도 날아다니고 동전들은 와르르 쏟아졌다. “나 안 해~” 엄마는 그렇게 엎어진 판 위에 널브러져 있던 동전과 지폐들을 두 손으로 쓸어모아 주머니에 넣은 뒤 장조카에게 맛있는 거 사준다면서 데리고 나가셨다. 형제들이 서로 쳐다보면서 멍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다가 마치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역시 엄마는 오늘도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셋 이상 모이면 화투를 할 정도이며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분들이 즐기는 게임이 바로 화투가 아닐까 싶다. 화투는 포르투갈의 ‘카르타(carta)’라는 일종의 딱지놀이가 일본으로 전해져 ‘하나후다(花札:화찰)’라는 놀이로 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대마도 상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화투로 불리며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화투 놀이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상대방의 패를 눈치 빠르게 짐작하여 게임을 하는 고도의 심리전 외에, 껍데기(피)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어 광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도박과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화투는 우리에게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시골 고향에 가면 동네 어르신들의 심심풀이로 화투 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니 그냥 민화투 그 자체로만 즐기어도 좋을 듯싶다. 

  올해 5월 엄마의 49재에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 살아생전에 민화투를 즐기셨다는 얘기가 나왔다. 적당히 잃어야 하는데 눈치 없이 이겨보겠다고 하다가 화투판을 엎었던 얘기를 하면서. 사실 나도 화투라는 걸 잘 모른다. 고스톱이니 뭐니 하는 것도 잘 모르고 청단 홍단도 말로만 들었지 실상은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홍단이라고 쓰여 있는 화투에는 새가 있기도 하고, ‘광(光)자가 쓰여 있는 화려한 꽃 그림이 있기도 하다. 그저 단순하게 그림만 맞추어서 점수를 많이 내는 민화투만 겨우 알고 있는 정도이다. 민화투를 하면서 계산을 하는 단순한 셈법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엄마와 참 많이 했었다. 남편에게 통박을 받으면서 고3 수험생에게 민화투를 가르친 것이 잘한 짓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은 내가 친정엄마의 시간 속에서 추억을 만들었던 것처럼 언젠가 먼 훗날 고단한 어느 시간에 내 아이들도 내게로 와서 함께 민화투를 치면서 나를 그리워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