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휘봉
ㆍ작성일	2018-10-12 00:56

ㆍIP: 39.xxx.159

50년 동안 전하지 못한 선물

50년 동안 전하지 못한 선물

글 / 정휘봉

내 나이 어느덧 오십대 중후반, 하늘의 뜻을 깨우친다는 지천명의 모퉁이를 지나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이 바라보이는 고개앞에 서 있다.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면 무슨 거창한 말처럼 들리지만 간단하게 풀이하자면, 이제 세상의 경험을 할만큼 하였으니 세상의 이치를 거스러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오만과 아집을 버리고 남의 말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겸손하게 살아 가라는, 우리가 살아 가면서당연히 지켜야 할 삶의 가르침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이라는 고개를 바라보는 나는 지금까지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삶의 이치에 순응하지 못하고, 배려와 겸손보다는 오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으니 지난 세월의 그 우매함은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흔히 억겁같은 긴 세월에 비하여 우리의 인생은 찰라와 같은 짧은 순간이라 말들 하지만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반백년 넘는 세월동안 지속해 온 삶들 속에서 스스로 의도하였던 아니던 내가 행한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디로 인해 타인에게 슬픔과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슬픔과 상처가 메아리처럼 되 돌아와 자신의 가슴에 슬픔과 아픔의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나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하는 경쟁사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없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는 친밀하고 꺼리낌 없이 지내다 보면, 별다른 의미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 잘못된 작은 행동 하나로 인해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또 받는 경우가 숱하게 있었던 것같다. 그 중 유독 오랫동안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다 가끔씩 불쑥 솟아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 가슴 아픈 기억은 지금으로 부터 50년 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러 갔던 그해, 매화꽃 하얀 망울을 터트리던 봄으로 거슬러 간다.

어지러운 국내정세 속에서 아직 경제의 기반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그 시절, 국민학교 1~3 학년들은 하루 걸러 한번씩 어른 주먹만한 빵 한덩이씩을 배급 받았었다. 동네에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없어 생필품을 구입하려면 5일장이나 읍내로 나가야 했던 산골 마을에서 간식거리래야 기껏 칡뿌리나 빨고 밀서리나 하는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 팥소도 들지 않고 고명도 없이 외국에서 원조로 들여온 밀가루에 옥수수 가루를 조금 섞어 서른 조각을 한 덩이로 구운, 지금의 싸구려 식빵보다도 더 보잘것 없는 것이었지만, 가끔씩 어머니를 따라 간 시장에서 맛 보았던 풀빵과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었다.

처음 빵을 배급 받던 날, 보드라운 속살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빵을 한번에 먹어치우기엔 너무 아까워 야금 야금 아무리 아껴 먹어도 반 시간은 족히 걸리는 하교길에 집에 도착할 때 쯤이면 빵은 어느새 호두알만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세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여동생도 처음 보는 빵이 먹고 싶어 안달 하였으나 그때만해도 철이 없었던 나는 애원하는 동생의 눈길을 외면한 채 매정하게 남은 빵을 털어 넣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은 분수같은 눈물을 뿜으며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고, 동생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경의를 아시게 된 어머니로부터 혼쭐이 나도록 치도곤을 당하여야만 했다.

그 후로도 빵을 받는 날이면 어머니의 꾸지람이 걱정스럽기는 하였으나 보드랍고 구수한 빵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동생과 나누기 싫었던 나는 귀가중에 모두 먹어버리고 집에 도착할 때 쯤이면 언제나 빈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날들이 지나고 새로운 맛에 매료되었던 호기심이 조금은 사그러질 때 쯤, 곧 다가올 슬픔을 예감이라도 하였던 것일까, 불현듯 빵 한 조각 나누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더 이상은 혼자 먹을 수가 없었다. 빵을 받아 들고 기뻐 어쩔줄 모르는 동생의 표정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의기양양하게 방문을 열어 젖혔지만, 혼자 놀기 심심해 학교에 간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동생은 잠을 자듯 조용히 누워만 있었고, 평소에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린적 없던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동생과 눈물만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의 슬픈 표정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동생은 더 이상 빵을 달라고 보채지도, 빵을 주지 않는다고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나는 한손에 전하지 못할 선물을 든 채 얼어붙은듯 우두커니 서 있울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만 가면 누구나 빵을 주는 줄 알고 아침만 해도 오빠따라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던 동생은 한나절을 앓다가 교통도 불편하고 병원도 없는 산간 마을 오지였던 탓에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약 한 번 쓰보지 못하고 병원이 있는 읍내로 향하던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연분홍 진달래 화사하게 피어나던 봄날에 그 작고 여린 봉우리 제대로 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을 보낸 동생은 아버지를 따라 간, 진달래가 한가득 피어난 양지바른 뒷산 어딘가에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이 들었다.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 배웅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께서 상서롭지 못한 자리라 하여 어린 아들을 데려가지도 않으셨지만 나 역시 왠지 죄책감이 들어 선뜻 따라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생과의 짧은 인연은 그렇게 끝나는 듯 싶었으나 그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을 뿐, 동생은 오래전 내곁을 떠나고 그 때의 코흘리개였던 철부지 오빠는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반백의 중년이 되어 동생의 이름도 잊고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할만큼의 많은 날들이 흘렀지만, 그 때 그 아픈 기억만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뒷산에 진달래 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면 꽃향기보다 더 짙은 슬픔이 되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동생을 떠나 보낸지 50년,
대지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는 봄은 산과 들에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벌나비 춤추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전하지 못할 선물을 50년 동안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나에게는, 동생과의 그 아프고도 질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한 또 하나의 계절, 슬픔의 계절로 남아 있을 것이다.

[ 하늘나라에 있을 누이에게 ]

누이야,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
얼굴도 잊고 이름마저 잊은 나의 누이야,
어린 나이에 부모형제를 떠나
낯선곳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빵 한 조각 나누어 주지 않고 떠나보낸 매정한 오빠는
또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어린 가슴에 원망과 서운함을 가득 안고
홀로 외로운 길을떠났을 너를 생각하며
너의 그 애절한 눈빛이 눈에 어리어
지난 세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코흘리개 철부지 오빠는
반백이 된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너에게 용서를 비는 용기를 내어 보는구나.

이제는 네가 원히는 것이라면
무었이던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정작 받아야 할 너는 내곁에 없으니
그것이 무엇보다 서러울 뿐이다.
그 동안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만
언젠가는 네 앞에 무릎 꿇고 한번은 용서를 빌고 싶었다.
세월이 더 흐르고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
그때는 못나고 매정했던 오빠를 용서해 주겠니?

이제는 서운했던 지난 기억 모두 잊어 버리고
눈물도 서러움도 배고픔도 없는 그곳에서
맘 편히 지내고 있으리라 오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너무도 일찍 세상을 뜬 가엾은 누이를 기리며~

김경렬 2018-10-12 04:27	정휘봉 작가님! 반갑습니다. 절절하게 누이를 생각하며 올리신 글 ! 가슴이 저립니다. 자주 글방서재에 불 밝혀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차거운 기온에 감기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정찬열 2018-10-12 16:03	정휘봉 작가님~! 안녕하세요 애절하고 절절한 가슴 저민 사연으로 엮어주신 "50년 동안 전하지 못한 선물" 단숨에 배독했습니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합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변봉희 2018-10-12 22:04	다 지나놓고 나면 후회가 되지만 어렵던 시절, 누구나 다 한번은 겪었던 일인데, 옆에 있으면 보상해 줄 수 있는데 옆에 없으니, 더 마음이 아픈게지요? 마음에서 꺼내어 훌훌 날려 버리세요~ 누이도 아마 그걸 원할꺼에요 하늘에 있는 동생에게 띄운편지 쓰신 시인님도 마음 홀가분하게 가지시는 밤 되세요.

김종덕 2018-10-15 17:52	정휘봉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그 때의 보릿고개, 옥수수빵, 어쩜 같은 시대를 살아온 것 같습니다. 소나무 가지 꺾어 하모니카 불듯이 긁어 먹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 때의 아픈 기억, 꼿 작가님과 같은 아픔이 아니더라도 많은 슬픔들이 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달래 필때 산에 갈비 긁어러 갔던 일, ... 지금도 굴뚝에서 흰연기 나는 생각은 현재의 저를 붙들고 있읍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상훈 2019-01-01 21:47	정휘봉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경포대의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