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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03-13 11:09

ㆍIP: 1.xxx.229

명주 목도리
명주 목도리
김 경 렬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따라 밤새 함박눈이 내려 천지가 새하얀 설국으로 변해 버렸다. 인적 없는 눈길을 아버지와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고 있었다. 까만 교복을 반질반질하게 다려서 바지엔 칼날 같은 줄을 세웠다. 하얀 카라에 풀을 메겨 빳빳하게 다려서 달고 한껏 멋을 낸 나는 털신도 외투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끝도 없이 걸어갔다. 아버지는 빨리 걸어야 발도 시리지 않고 몸에 열이 나서 춥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어린 나는 깡충거리며 쫓아가느라고 추위도 잊고 있었다. 너무 지루해서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하셨다. 걷고 또 걸었다. 또 물었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느냐고, 아버지는 재를 하나 넘으면 된다고 하셨다.

걷다보니 길이 끊어지고 산이 가로 막혔다. 그 산을 넘으면 지름길이라서 금방 외가에 갈수 있다고 하셨다. 산길에 접어드는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아버지는 산속에는 쇠 바람이 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재를 넘으려고 하니 올라가다 미끄러지기를 여러 번, 그때마다 아버지는 솔가지를 내밀어주셨다. 모진 눈보라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귀와 손이 얼어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손을 호호 불며, 귀를 비벼대며 죽을힘을 다해서 간신히 재를 넘었다.

한숨을 돌리며 온몸에 눈을 털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당신의 명주목도리를 벗어 내게 둘러 주고 계셨다. 비로소 아버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흰 고무신에 명주 바지저고리와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나보다 더 많이 입으신 것 같았는데 아버지도 떨고 계셨다. 순간 사양했지만 아버지는 춥지 않다고 하시면서 목도리를 감아 주셨다.

제천 읍에서 금성면은 삼십 리 길이다. 금성면에는 외가댁이 있다. 외사촌 언니의 혼인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편찮으신 엄마대신 아버지를 따라 나선 길이었다. 겁도 없이 따라 나온 길이 너무 멀고 추워서 후회가 밀려왔다. 언니는 하필 이 추운 겨울에 왜 시집을 갈까?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부드러운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의 사랑을 두르고 있으니 몸도 더 따뜻해지고 생기가 솟았다. 거의 다 왔다는 부픈 마음에 신바람이 나서, 아버지를 앞서 신나게 걷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외가에 도착하였다. 시끌벅적,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풀풀 나는 잔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외삼촌 내외분이 달려 나오며 반색을 해 주셨다. 어린것이 눈밭에 고생하며 왔다고 신통해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언니 방으로 갔다.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서 맛있는 잔치 음식을 먹으며 외사촌 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언니는 꼬마가 이 추운 눈길에 자기혼인을 보러 왔다고 어찌나 좋아하며 예뻐해 주는지 언니에 대한 원망도 눈 녹듯 사르르 날아갔다. 지금도 눈이 쌓인 길을 걸으면 아버지의 명주목도리가 떠올라 가슴이 훈훈해진다. 자녀들에게는 엄하셨던 아버지, 그러나 속정은 한없이 따뜻하고 인자 하셨다. 아버지! 내일부터 목도리를 짜겠습니다. 따뜻한 마음 한코, 그리움 한코 엮으며 사랑의 뜨개질을 시작하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5-03-19 21:54	예전엔 교통편도 좋지 않아 산넘고 들건너 눈보라치는 추운길에 부성애의 사랑이 한껏 묻어 나는 깊은 감명을 봅니다. 늘 편안 하시고 이틀후 행사에 뵙기를 기대합니다.

김경렬 2015-03-19 22:13	정작가님 감사합니다. 흔적이 없어서 외로웠어요. 제가 많이 노력해야 하나봅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행사에 제가 못알아 봐도 아는척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노복선

2015-03-23 12:29

저희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이북서 내려온 피난민가족이다보니 시골에 친척이
한분도 안계셔서 방학이면 시골로 놀러가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시골에서 고생하며 산길을 걸어갔다는 것 조차도 서정적인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듯 합니다
아마도 제가 어려서 부터 시골서 살고 싶어하고
지금 전원생활하는 것도 어려서의 부터 동경의 대상이던
지금 읽은 명주목도리의 주인공이 되어 저도 그산을 마음으로 넘어 갔습니다


김경렬	마음이 예쁘기도 하시지 그시절의 시골과 지금의 시골은 천지 차이랍니다. 시골에도 아파트가 많아져서 오지쯤 되야 시골 정감이 나지요 오히려 지금 노 시인님의 전원 생활이 더 나을것 같군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3/24 18:14

형아는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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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영합니다		admin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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