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05-26 23:12

ㆍIP: 61.xxx.243

루즈가 묻어 있다.
루즈가 묻어 있다.
김 경 렬

몇일전 치열한 경쟁을 거쳐 대리로 승진한 그는 출근 시간이면 어느 때 보다 즐겁고 신바람이 난다. 그무렵 늦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려 더워지기 전에 출근을 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양복저고리를 걸치고 묵직한 가방을 메고 부리나케 지하철을 향해 걷는다. 2호선 전철은 항상 인산인해다. 몸을 구겨 넣듯이 억지로 승차하지 않으면 차를 놓치기 일쑤라서 있는 힘을 다해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그는 얼마 전 주택을 장만하고 승진까지 했으므로 자동차쯤은 순위가 밀려도 괜찮았다. 조금도 지하철 출근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시내버스회사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버스이용 승객들이 몰려와 지하철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두 대를 보내고서야 겨우 전철을 탈수 있었다. 출근을 하는 그의 몸은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에너지 절감 캠페인이 계속 되더니 직장 마다 선풍기를 돌리며 캠페인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사무실도 예외 없이 닫혔던 창문이 열리고 종일 선풍기가 돌아갔다. 일 벌레인 그는 오전 내내 일에 파묻혀 더운 줄도 모르고 일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자 회사 앞의 냉면집으로 내려가 살얼음이 가득한 냉면 한 그릇으로 시원하게 더위를 날렸다.

계산을 끝내고 나오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넌지시 불렀다.
"셔츠에 무엇이 묻었네요, 잠간만 기다리세요. 약으로 닦아 볼께요"
아뿔사! 셔츠에는 붉은색 루즈가 묻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스프레어를 열심히 분사하고 물수건으로 박박 문질러 닦아주며, 이대로 그냥 집에 가면 공연한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고 했다. 요즘엔 전철이 복잡해서 여자들 화장이 묻기 일쑤라고 이해를 해주니 위로가 되었다. 그는 아주머니 덕분에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날따라 밀린 서류를 정리하느라 늦도록 일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시장 끼를 느껴 포장마차에 들려 우동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을 기우리고 귀가를 하였다. 기다리던 아내는 셔츠를 받아들자 아침에 새 셔츠를 입었는데 왜 이렇게 지저분해졌냐고 따지지 않는가? 그는 지은 죄도 없이 가슴이 벌렁 거렸다. 얼결에,
"책상에서 뭣이 묻어서 닦았더니 그러네"
"뭣이 아니고 루즈네, 여자 루즈 라고요"
결국 냉면집 아주머니얘기를 해주었다. 아내와 자주 갔던 집이라 믿어 줄것이라고 믿었다.

아내는 뾰루퉁, 집안은 온통 냉각의 바다! 아내가 돌변했다. 아내의 머리에서는 예쁜 여자가 남편의 팔에 메달려 웃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참을수가 없다. 술 냄새가 나는걸 보면 술집 아가씨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더화가 났다. 지금 이 순간은 매사에 긍정적이며 상냥하던 그 아내가 아니었다. 착하고 소심한 그는, 냉냉한 아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져서 밤새 잠을 설쳤다. 이튿날 출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는데,
"12시에 냉면 집으로 와요!"
뭐야 확인 하러 오겠다는 게야? 아내 단속도 못하는 위인이라고 망신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12시가 되자 어제 그 냉면집으로 갔다.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수박 접시를 내놓았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아내를 찾았다. 아주머니는 생글 거리며 아내가 수박을 사 들고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긴한 볼일이 있다면서 급히 갔다고 했다. 수박도 냉면도 꿀맛이었다. 오후에 그는 '오늘만은 일찍 오라' 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하려고 회사를 나서는데, 반짝이는 새 자동차가 스르르 다가와 멈추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궁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때 자동차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왠 여인이 나오지 않는가? 깜짝 놀랐다. 그 여인은 아내였다. 아내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동차 키를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젠 루즈를 묻혀 올 일이 없겠죠?"
함박웃는 아내의 모습이 달덩이 같다.

백낙은 2015-05-27 10:22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작가님. 처음 시작할 때는 가정불화라도 일어날 줄 알고 조마조마 했는데ㅎㅎ 아내의 사랑과 기지가 대단하군요. 나는 작가님이 소설을 시작하셨구나 했는데... 재미있어서 만면에 웃음입니다. 이 아참 웃음으로 시작할 수 있어 행복입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2015-05-27 18:50	안녕 하세요? 역시 수필 분과위원장님이 일등으로 달려 오셨습니다. 요즘 짧은 스마트 소설이 대세라해서 한번 써 봤는데 너무 짧았나 봅니다. 목사님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희가 차를 장만하기전에는 이런 일이 많았지만 모르는척 지나가곤 했는데,사실은 제 마음이었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근

2015-05-28 07:46

김경렬 작가님 더운 날씨에 무탈 하시지요?
감각적이며 센스 넘치는 재미있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신혼시절을 문득 생각 나게하는 글입니다.
빈 지갑을 보란듯이 침대맡에 올려 놓으면 아무 말없이 채워놓던 아내
그 맛에 몇번을 그러다 숨겨놓은 비상금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압수당한 기억이 문득 떠올라
한참을 웃어봅니다.감사히 다녀가며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길 기원합니다~^^


김경렬	박정근 작가님! 신혼때를 추억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시절 아내분의 모습에서 넓고 다정하고 배려심 풍성한 현모 양처 모습을 봅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5/28 12:13

이정희

2015-05-29 11:59

하하하하 ~ 재미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 소설이라고 합니까?
이젠 단편 소설쓰셔도 좋으실거 같아요.
센스있는 아내
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가슴이 벌렁대야하는 그 답답한 심정도 다 느껴지는군요.
참 재미있습니다. 김경렬 시인님.
단숨에 읽었네요 ~
다음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


김경렬	정희 시인님! 기다리다 만나니 우째이리 좋은겨~~ 어제 칼기타고 눈깔사탕 두개 갔을 틴디? 퍼떡 반송 하시라요~ 기분 전환이 됬는기랑? 찾아주고 기쁘게해주어 항상 고맙고 고마워요 빨리 해후의 날 오기를 가립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5/29 15:08

김경렬	만날날 기다린다믄서 뭘 가린데 오타도 어느 정도야지.. 한심한 언니가...	5/29 15:21

김선목

2015-05-29 21:21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세요
루즈와 입술자국은 왜그리 못된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입술자국 하나 멋있지 않나요
저도 지금이니까 이런소리 해봅니다 괜스리 죄인같은 기분
음폐하고 싶은 심정 빨간것만 묻혀오면 눈이 벌개지는 아내
작가님 글속에 마이카 시대가 도래할 무렵의 생각이납니다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건강하시고 편안하세요


김경렬	김시인님도 어지간이 묻히고 다니셨군요. 멋있다면 오죽 좋겠어요. 팔이나 등판에 찍히면 애교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술집에서 짓궂은 아가씨 장난도 한몫하여 정말 부부싸움 하는집을 보기도 했지요. 바쁘신중에도 서재를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가뭄에 덥기까지한 날씨입니다 건강 하시고 즐거운 유월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5/29 21:44

정찬열

2015-05-29 21:39

김경렬작가님 작가님 서재에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달덩이같은
여자분 같아요 전 솔찍히 처음에는 남편글을
대필하시는 글인가 하고 의아했지요
아무튼 재치있는 사모님 이 부럽습니다.

작가님의 멋진글 즐감했습니다.
늘 건안 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김경렬	정찬열 작가님 오셨네요 하이브리드 잘 타고 다니시지요? 마이카시대 이전에 비일 비재했던 일화 한토막을 꽁트로 엮어 보았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시기바랍니다.	5/29 21:53

싸리나무 회초리

만인의 카운 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