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순향
ㆍ작성일	2014-03-26 18:59

ㆍIP: 112.xxx.180

"새 봄의 산책 길에서"

새 봄의 산책 길에서/이순향

어젯밤에 덥다며 보일러를 홀랑 꺼버리는 바람에 새벽이 되니 추워서 잠을 설쳤다.

시골은 안과 밖의 온도 차가 커서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오랜 기간을 단련했는데도 여전히 익숙치가 않아서 우왕좌왕하기 일쑤이다. 서울처럼 은은한 온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건 전원생활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가 있다. 다시 보일러를 돌리고 새벽녘에 잠이 드는 바람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어제 서울에서 오면서 한 약속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 아침 늦잠을 자서 계획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던 거였다.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정하고 쫓기 듯 일어나 틀에 맞춘 시간에 산책을 해야 하는 건 내가 별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늘 릴렉스한 휴식을 좋아 한다.

오늘의 산책은 뒷쪽 임도(林道)로 해서 휴양림까지 한바퀴 도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임도(林道)로 올라서니 주황색의 카펫이 깔린 듯 하다. 작년 가을의 떨어진 낙엽송의 이파리들이 그대로 있어서 레드 카펫 위의 여배우들이 걷던 길처럼 보인다. 간간히 생강나무의 노란꽃들이 톡톡 터지는 중이었고 버들강아지의 금빛 얼굴이 나를 반기는 듯 했다.

"길 가의 있는 것 말고 저기 저 안쪽의 있는 걸로 딱 한대씩만 꺽어 주면 안될까?" 라고 요청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봐야지, 왜 꺽으려고 하느냐, 너도 나도 다 꺽으면 남아날 게 있느냐?? 솔선수범을 해야 할 사람이 그러면 되겠느냐" 며 사설이 길어진다.
"작년에 버들강아지 꺽은 건 화병에서 실컷 보고 동산에 다시 심어준 걸 기억을 못하느냐, 가지 치기하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렇게 비약을 하느냐" 며 옥신각신하다가 보면 결국 항복을 하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가장 뒷쪽의 삐져 나 온 줄기 하나씩만 꺽어 준다.어짜피 나무 모양을 위해 잘라줘야 하는 걸 잘라 주고도 "산책 나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눈에 띄게 들고 있지 말라"며 끝끝내 잔소리를 해댄다. 이것은 매년 새 봄이 되면 일어나는 나와 남편의 고정 레파토리가 된 대화이다.

깊은 산 속으로 지나가면서부터는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길 가의 축축한 땅이 뒤집어져 있었는데 아마 지렁이 같은 걸 잡아 먹는 것 같았다.어느 해에는 우리가 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허겁지겁 도망가는 멧돼지 가족을 본 적도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쇠꼬챙이같은 걸 가지고 다니면서 돌과 나무를 툭툭 쳐서 우리가 지나가는 걸 알려 주기도 했다.

약간 음습한 이 구간이 지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진 길이 나온다. 이 나무는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래 쪽의 사시는 분이 울타리 겸 해서 심은 건데 너무나 잘 자라서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있는 것이 아주 장관이다. 그걸 흉내 내어 나도 몇해 전에 우리집 임도쪽에 심었으나 묘목이 자라기에는 주변의 숲이 너무나 우거져서 나무 줄기들을 쳐 내지 않는 한 잘될 것 같지는 않다. 심을 때의 꿈은 내가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어 누군가가 즐길 수 있기를 바랬지만 그런 날이올 지는 모르겠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 길을 가다가 보면 양지 바른 곳이 나오는데 노란색의 산괴불주머니와 연청색의 현호색이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고, 음지 쪽의 있는 웅덩이에서는 S자의 도롱룡 알과 꺼멓고 몽글몽글한 개구리의 알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어서 아주 생소하고 징그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칭 시골 아이였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남편은 신이 나서 어릴 적의 무용담을 전해준다. "친구들하고 실컷 놀다가 출출해지면 저 도롱룡 알을 꺼내서 쭈욱 빨아 먹고 그랬다니까.."..아이고 그만 그만..~~ 나는 미식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아니 좀전에는 버들강아지와 생강나무 한줄기씩 꺽어 달라고 할 때는 자연훼손이라며 그렇게 반대를 하더니 도롱룡 알을 먹어 없애다니 그건 괜찮은거냐며 반격을 하니 그때는 어릴 적이고 천지분간이 안될 때이니 용서를 해야 마땅하며 배가 고팠을 때였으니 꽃을 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임도에서의 길이 조용한 시골길이었다면 휴양림의 길은 다소 인공적인 부분이 가미된 도시적인 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가운데 큰 길이 콘크리트 로 되어 있는 건 필요에 의한 것 일테지만 흙길이 아닌 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걷다가 딱딱한 길이 싫어진다면 샛길로 들어 갈 수가 있는데 이정표가 곳곳에 붙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샛길로 들어 서면 자작나무 숲도 있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도 있고 작은 옹달샘을 만나면 샘물을 마실 수도 있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이 비밀스러운 장소를 알려 주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있기는 한데, 막상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표정이 없어서 말을 꺼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더구나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체신을 지키느라 꾹 참는다.

봄맞이 산책는 2시간정도 걸린 듯 하다.
이번 봄에도 어김없이 비탈 진 언덕에서는 아기 진달래가 꽃을 피울 것이고 늘 있던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길섶의 야생화들도 알아서 꽃을 피울 것이다. 꽃들의 안부를 두루 살피며 내려가는 길은 미뤄 두었던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하기만 하다..

김숙자 2014-03-26 23:25	'임도'주변에서 작가님의 봄맞이 산책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봄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신비스러운 봄 풍경을 같이 즐기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듯 쓴 봄의 산책 길에서 추억을 회상하며 봄의 전령사들을 맞이하는 좋은 글에서 잘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임도는 어디에 있는 지역(섬 ?)인가요?

이순향 2014-03-27 13:27	죄송합니다..흔히 쓰는 말이 아니라 한문을 넣었어야 하는데..한문을 함께 올렸습니다.. 저도 안 지 얼마 안되는데..소방도로로 쓰이기도 하고 삼림의 관리나 수송을 위해 산 중간에 만드는 거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치느님을 아세요?"

" 패랭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