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순향
ㆍ작성일	2014-03-20 12:02

ㆍIP: 112.xxx.180

" 패랭이꽃"

패랭이꽃/이순향

나에게 꽃을 심을 꽃밭이 생기자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건 패랭이꽃이었다.

유년을 기억하자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꽃으로 긴 방죽 아래에 간간히 피어 있던 연분홍빛 패랭이꽃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들키지도 않을 작은 꽃이었다.
물감으로 그린 듯한 색의 조화는 내 마음을 울렁거리기에 충분했는데 그 작은 꽃 속에 들어 있는 분홍,진분홍,하얀색의 색깔이 골고루 들어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지금까지 유난스럽게 색깔의 대한 호들갑이 있는 건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꽃씨를 살 때 홑패랭이의 사진을 확인했었고 예전의 기억하던 패랭이꽃과 같아서 금방이라도 꽃밭에 온 것 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기까지 했었다. 씨앗 크기가 아주 작아서 모래에 섞어서 뿌려야 하고, 평지보다는 바위 틈에서도 잘 자란다는 설명을 들었다. 패랭이가 석죽과에 속하는 건 바위하고도 관계가 있어서였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니 초보가 기르기에는 안성마춤인 꽃이었다. 더구나 다년생이라니 금상첨화였다.

바위를 넘나들며 씨앗 뿌리기를 한 후,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했다.

같은 날 뿌렸던 씨앗들은 새싹을 보이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데 유독 기다리던 패랭이만은 잠잠했다
급기야 흙을 살살 헤쳐 보며 안나오고 뭐하는거냐며 닥달을 하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운다며 빈 땅에 대고 야단을 치기도 했지만 결국 그 해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것도 나오지를 않았다.
기온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나의 어설픈 씨앗뿌리기 솜씨가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날 심었던 다른 씨앗들이 나온 걸 보면 혹시 패랭이 씨앗의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는 했다.

처음 만든 꽃밭이었지만 의외로 꽃들은 때가 되면 차례대로 꽃을 피워 주어서 각각의 개성으로 나를 감탄케 했다.
꽃분홍색의 앵초를 시작으로 조롱조롱 은방울꽃, 보라색이 압권인 매발톱, 함박 웃는 함박꽃, 고고한 보랏빛 난초,달콤한 향기의 라일락 등 쉴 새없이 피는 꽃들 때문에 패랭이의 대한 아쉬움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듬 해 새 봄이 다시 찾아 왔다.
계속해서 바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오랫동안 꽃밭을 찾지 못하다가 봄꽃들이 하나 둘 필 무렵이 되서야 가게 되었는데 너무나 큰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위 틈에서 삐죽 삐죽 올라 온 꽃대에, 형형색색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어서 마치 뭉게 뭉게 피어 있는 꽃구름을 보는 것 같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살펴보니 패랭이꽃이 맞기는 한데 내가 알던 홑패랭이가 아니고 밤송이처럼 올라 온 수염패랭이였다.수염패랭이의 꽃송이는 작은꽃들이 모여서 이룬 거여서 함박꽃처럼 컸다
내가 기대했던 소박한 패랭이가 아니었지만, 나는 단박에 수염패랭이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우뚝 우뚝 서 있는 모양새는 마치 시시하게는 꽃을 피우지 않겠다며 땅속에서 갈고 닦은 듯 했다. 수염패랭이의 꽃말이 뜻밖에도 의협십이라고 해서 꿰어 맞춰 보니 그럴 듯한 해석이어서 제대로 갖추고 나오느라 한 해를 거른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꽃송이는 탐스러웠고 꽃송이 속에 작은 패랭이들은 각각의 색이지만 조화를 맞춘 듯해서 멀리서 보면 작은 구름이 꽃밭에 둥둥 떠 있는 듯 했다. 개인적인 내 꽃밭이니 내 마음대로 수염패랭이를 클라우션이라고 개명을 했는데 구름의 클라우드와 카네이션 비슷한 느낌의 꽃이라고 해서 합성어로 만들었다. 내 꽃밭에서만 통용이 되는 것이니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그만큼 나에겐 각별한 꽃이 된 것이다..
애초에 원하고 기대했던 꽃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얼굴로 찾아 온 수염패랭이(클라우션)..
멀리서 뚜벅 뿌벅 걸어 왔을 나와의 인연이 무척 소중하다.

봄비가 내리는 아침, 이 비를 맞으며 분주해 질 꽃밭의 소란스러움이 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김숙자 2014-03-21 08:31	야생화 패랭이를 가꾸는 여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잔잔하게 펼치신 고운 글에 잠시 머믈고 있습니다. 5월이 오면 바위 곁에 펼쳐진 꽃밭이 장관을 이루겠어요. 좋은 글 많이 읽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주응규 2014-03-21 11:17	좋은 글이 가슴에서 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기쁨 가득하시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이석희 2016-08-25 00:29	아, 정말 멋집니다. 아름다운 꽃밭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합니다.

"새 봄의 산책 길에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