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3-12-31 12:08

ㆍIP: 183.xxx.46

추석, 장보기

                                                             추석, 장보기

                                                                                      연희동 김숙자

지난 토요일(9/14) 오전에 딸과 외손자를 데리고 일산엘 갔습니다. 몇 가지 더 준비할 추석 맞이 제사 용품과 옆집 어르신 댁에 보내드릴 추석 선물을 사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세웠던 장보기 계획이었지요.

남편은 딸네 가족과의 외출을 아주 좋아합니다. 큰 손자는 앞좌석의 조수석에 앉아서 네비게션의 방향지시를 할아버지께 설명합니다. 할미는 뒷좌석에 딸과 작은 손자와 함께 앉았습니다.
길가의 코스모스, 나무들, 풀잎들은 가라앉은 짙은 색깔로 가을의 모습이 사방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원당을 지나서 구일산 쪽으로 갑니다. 길가의 화원 앞에는 만발한 노란, 흰 국화꽃 화분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가슴이 시려지는 가을이 보입니다.

일산에 가고 오는 중 남편과 딸은 미국 유학준비에 대한 대책과 의논을 계속합니다.
딸은 내년(2014년) 9월 학기에 미국 뉴욕의 명문 Law school 대학인 포탐대학교에 법과대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게 됩니다. 유학 기간은 일 년이지만 그때 형편에 따라서 연수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 손자는 내년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한 학기를 보내고 유학을 가야 할 것 같군요. 요즈음 뉴욕에서의 주거문제와 손자들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정보를 찾느라 고심이 큽니다.
딸은 자신의 공부보다는 아이들 학교 선정에 마음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남편은 뉴욕의 농협 사무소장으로 근무하였기에 미국생활은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10여 년 전이라 많은 변화가 왔겠지만 그래도 아주 어설프지는 않군요. 그때 미국 뉴욕의 9.11 사건을 허드슨 강 건너편 뉴저지에서 목격했지요.
이번 딸의 연수 기간은 남편과 둘이서 딸의 뒷바라지를 할 것입니다. 딸은 공부에 전념하고 우리 내외는 큰 손자의 학교와 작은 손자의 유치원생활에 잘 적응하라고 그 뒷바라지에 전념할 것입니다.
'우리 내외가 없는 연희동 집의 나무들은 얼마나 무성할까?'
벌써 걱정이 되는군요.

일산의 하나로마트 농산물 유통센터는 추석의 대목을 실감하듯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군요. 넓은 광장 같은 매장은 풍성한 물품들로 모두가 풍족해 보입니다. 이것저것 모두를 카트에 실어 놓고 손자들과 장터국수를 먹습니다.
손자들은 따끈한 국숫물에서 젓가락으로 국수를 돌돌 감아서 잘도 먹습니다. 남편은 물국수, 나는 비빔국수를 모처럼 맛있게 먹습니다.

우리 가족은 장보기를 끝내고, 자유로를 달리면서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깁니다. 자유로의 양쪽 들판은 벼가 벌써 누릇누릇하군요. 멀리 보이는 산들은 짙은 녹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듯 보입니다.
큰 손자는 자유로에 꽉 메워 달리는 차종의 생산연도부터 원산지, 고가의 가격까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네 살짜리 작은 손자는 1초도 입을 다물지 않습니다.
" 할머니!, 하하 하자로 끝나는 말은?"
"글쎄?---"
" 띵 잉___할라브지"
"이 번에는 진 진 진 자로 끝나는 말은?"
"진호__!!!"
"딩동댕 ___"
시작하는 말과 끝나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혼자 말 잇기 놀이에 지칠 줄 모르는 작은 손자---

연희동의 집에 오니 오늘 하루의 해가 석양에 걸렸습니다.
딸이 아침에 타고온 제 차에 손자들을 옮기어 태우니 손자들은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딸네 가족이 마포의 저의 집으로 가버리니 연희동의 솔숲의 집은 남편과 둘이만 남습니다.
갑자기, 내일부터 한가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걱정이 눈앞을 캄캄하게 하는군요. 13명의 대가족이 2박 3일간 머물며 지내야 하는 대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식과 손들과의 생활이 무척 즐겁고 기다렸던 시간이 오는데 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때부터인지 이런 집안 행사가 점점 겁이 납니다. 나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명절 휴일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뒷바라지가 힘이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는 체력적인 노화......
젊은 며느리들이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의 병이 난다던데 이런 신종의 병의 증세가 서서히 나에게도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한 일이 싫거나 귀찮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육체적인 노동력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잘 먹고, 편하게 쉬고 가는 것이 이 어미는 기쁘고, 나를 도와주는 거야."
자손들을 위한 모든 일을 혼자 끌어안고 일 속에 묻혔습니다. 손자들도 이날만은 마음껏 뛰놀게 합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손들은 할머니네 집에서는 마음 껏 뛰놀수 있습니다. 위, 아래층으로 손자들 돌보느라 할아비도 정신없습니다.
"할아버지, 저와 함께 바둑두세요,"
"할아버지, 공놀이하자."
시끌벅적한 연희동 집은 사람사는 곳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추석 장을 본 물건들을 차에서 내리는 할아비를 보니 서서히 겁이 나는군요. 어떻게 2박 3일을 보내지요?
'시간이 해결한다'
이렇게 자위하며 앞으로의 일을 잊으려고 합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보냈습니다. 정말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추석 명절도 세월 속으로 지나가겠지요?
이 노부부는 힘들었던 지난 일을 까맣게 잊고, 또 자손들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2013년 9월 18일 연희동에서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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