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3-12-31 11:46

ㆍIP: 183.xxx.46

야생화 가꾸기

연희동 김숙자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나는 야생초나 야생화에 관심이 별로 없다. 어릴 때 살던 우리 마을은 여름이면 온통 초록 풀과 들꽃들이 만발하였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야생초가 지천인 들판에서 들꽃이나 크로바꽃은 장난감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놀이의 재료가 되곤 하였다. 꽃으로 반지와 화관을 만들어서 끼고 쓰고 다니며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것보다는 장난감으로써의 멋을 즐기는 어릴 적의 자연환경이었다

중학교 이후부터 도시로 유학하여 농촌생활은 벗어났지만 풀과 나무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결혼초엔 남편의 직장(농협)관계로 넓고넓은 푸른 초원에서 젖소들이 풀을 뜯는 서삼릉목장에서 3년 반을 살았다. 아이 둘째와 셋째를 낳을 때 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니 그들의 고향도 푸른 초원 서삼릉 목장이 되겠다.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초원에는 커다안 느티나무와 소나무의 군락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소들이 풀을 뜯다가 뙤약볕을 피해 쉴수 있는 나무그늘의 쉼터이다. 장남은 4~5세의 어릴 때에 개구리를 쫒으며 풀밭을 뛰어 다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고 말한다. 이렇게 자손까지의 풀과 나무들과의 인연은 이어져가고 있다.

시골의 농부들은 사계절 중 봄, 여름, 가을을 이겨낼 수 없는 풀들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요즈음은 밭을 비닐로 다 씌워 풀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농부들의 일손을 덜며 농촌생활의 발전된 모습의 한 단면이긴 하나 잡초들은 여전히 농부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지금도 나는 2~3 개 월에 한 번 씩 시골에 가서 풀들과의 전쟁을 하고 온다. 여러 종류의
유실수 나무와 소나무 밑에서 자란 풀들은 키가 허리까지 찰 때도 있다. 이웃에게 '예초기'로 잡초들을 베어내게도 하지만 주인의 손길도 많이 간다. 노부부는 소득도 없는 나무들 관리와 풀밭을 매느라 온 힘을 다 쏟고 있다. 그러니 풀이나 풀꽃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며칠 전에 같이 운동하는 어느 지인께서 작은 화분의 야생화를 선물하셨다. 보잘 것 없는 잎과 줄기에 대롱대롱 맺힌 꽃망울의 아름다움은 야생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고 가꾸어보고 싶은 충동이 조금 생겼다. 연약한 줄기와 잎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다가 월동을 하고 봄에 새싹을 틔우며 꽃이 계속 피고 진단다.

작은 야생화를 선물 받은 이후부터 시간만 나면 남편과 서오릉을 찿는다.
'이렇게 작은 줄기에서 많은 아름다운 꽃잎을 어떻게 피워낼까?'
화원 앞에 늘어선 수많은 꽃들을 살핀다. 아기의 손만한 크기에서 수십 개의 꽃송이가 달린 나이배기 야생초가 신기하다.

양귀비, 물망초, 왕별꽃, 바늘꽃, 허브세이즈, 붓꽃, 왕원추리꽃, 우단동자꽃, 즈인화. 백장미, 작약, 마가렛, 찔레꽃, 인동초, 부레옥잠, 연꽃, 거북손, 미모사, 맨드라미, 아마존,
오색마삭줄, 페어리스타, 송엽국, 여우꼬리풀, 노리야, 달맞이꽃.....,
정원 한 쪽 구석에 야생초의 꽃밭을 만들었다. 틈틈이 위에 적힌 야생초들을 모두 사다가 심는다 우거진 단풍나무와 소나무의 그늘을 피해가면서 돌길도 만들었다.
꽃가게 주인은 양평의 강가에서 채취한 강가의 돌이라 비싸다며 돌의 값을 다 받는다. 남편은 무거운 돌을 적당한 위치로 요리조리 옮겨 놓는다.
"허리 조심하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을 옮기는 남편이 꼭 항우將士(Hercules)같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할 때는 몸을 아끼지 않는다.

시골집의 관리도 우리부부에게는 너무 무리니 처분하자고 하면 '버럭' 화를 낸다.
몇 해 전에 그 집과 땅에 대해서 관심도 없는 아이들 셋에게 공동명의로 증여를 하였다.
그리곤 그 많은 나무들의 관리를 혼자서 힘들게 하면서도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시골집에 대해서 관심을 갖을 때 까지 이 일이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갖을 때는 우리 나이 때 쯤이 아닐까?'
씁쓸한 미소가 스친다. 남편은 자기 생가의 일이기 때문에 힘든 내색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 같다.

잡초들을 아주 싫어했던 나지만 야생초 가꾸는 일을 이렇게 시작하였으니 남편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남편과 나는 눈만 뜨면 화단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도 주고 꽃들의 습성도 살핀다.

물망초는 꽃의 색깔과 모양과 줄기의 모습이 붓꽃과 비슷하다. 서오릉 화원을 다 돌아보고 흰색의 꽃, 물망초도 구했다. 이 꽃의 습성은 특이하다. 이른 아침에 꽃잎을 활짝 피웠다가 오후가 되면 송알송알 꽃망울로 변하다. 꼭 청포도알 같다.
꽃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Forget me nots'

미모사는 이름도 예쁘지 않다. 왜 뱀이 연상될까?. 좀 으스스하다. 습성도 특이하다.
건들기만 하면 잎을 모두 오므린다. 슬금슬금 움직이는 모습이 꼭 벌레처럼 보인다. 해가 지고 저녁이면 꼭 검은 번데기처럼 잎을 오므리고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이면 잎을 활짝 열고 햇님을 맞이한다. 주말에 친손과 외손들이 오면 관찰하도록 손들의 수만큼 사놓았다.

취미생활은 목적을 갖고 적당한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즐겁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데 큰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취미생활로 여가를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하잖게 여기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야생초가 老夫婦에게 지루하지 않는 日常의 樂이 되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 감당할 수 있는 노동력이 아직까지는 허용된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거기에 또, 적은 비용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라 누릴수 있는 여유가 아닌가 싶다.

요즈음 야생초를 가꾸는 계기로 노부부가 화원을 자주 찾는 幸福한 日常을 그려본다.

야생초의 모습들
밀림같은 시골집의 텃밭입니다. 이 잡초들을 어떻게 하지요?
두 부부는 6월22~29일 까지 밀림같은 시골집을 이렇게 손질했습니다. 상경하는 길은 파김치가 되어 휴게소마다 쉬며 왔지요. 풀밭을 정리한 시골집은 공원처럼 보기 좋으나 아무도 보지 않을 빈집입니다. 9월 하순에 갈 예정이다.
2012년 6월 6일

야생초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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