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3-12-31 12:21

ㆍIP: 183.xxx.46

늦가을에 쑥을 뜯으며

                    늦가을에 쑥을 뜯으며                                        연희동 김숙자 "어이, 이 쑥국 산소 앞에서 뜯은 쑥으로 끓인거야?" 남편은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탑탑하게 끓인 된장 쑥국으로 아침상을 들며 산소 앞이란 말에 억양이 높다. "아이고, 비탈진 곳에서 한주먹씩 움켜쥐며 바쁘게 쑥을 뜯을 때 할미를 도와주진 않고요......." 남편은 시골에 자주 오는 이유 중 하나가 산소 관리 때문이다. 산소 주변의 잔디는 조금만 소홀히 하여도 잡초에 밀려 소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골에 올 때마다 산소에 가서 손질을 한다. 늦가을의 아침은 쌀쌀하다. 산 밑에 있는 집 주변엔 대나무.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감나무, 호두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에워싸여 있다. 거기에 커다란 바위가 축대처럼 집 옆에 있어서 따스한 햇볕은 좀 시간이 지나야 집안으로 들어올 것 같다. 노부부는 아침 일찍 선산엘 갔다. 내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어제 봐둔 탐스러운 쑥 무더기 때문이다 조상님들께 인사드리고 바위축대 밑으로 내려온다. 양지바른 이 곳엔 파릇파릇 쑥이 돋아나 새봄을 연상케 한다. 가평에 있는 솔안마을의 쑥밭이 생각난다. 지난해 가을 덤불 사이로 소복이 돋아난 쑥밭을 사진 찍어 카페에 올려주던 최순화 회장님이 무척 부러웠었다. '그 탐스럽던 쑥을 어떻게 하였을까?' 정신없이 쑥을 뜯는다. 다듬고, 삶고의 뒷손질 감당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릇이 마땅치 않지만 연장을 넣어 온 비닐봉지에 양껏 채웠다. 어릴 적 친구들과 논 두둑에서 쑥을 뜯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도 친구들 보다도 더 많이 쑥을 뜯으려고 거칠게 뜯었던 것 같다. '지천으로 돋아난 쑥을 다 못 뜯어가서 어떻게 하지?' 이렇게 나이가 들어 늙었어도 하찮은 것에 욕심을 부리는 근성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 늦가을 날씨답지 않게 햇살이 내려앉아서 돌축대 주변은 따뜻하다. 비닐봉지에 가득 채운 쑥을 들고 바위축대를 요리조리 오른다. 산소쪽으로 올라와서 멀리 펼쳐진 들판을 바라본다. 가슴이 확 트인다. 색동으로 단풍든 뒷산, 앞산, 옆의 산들이 가깝게 또 멀리 둘러싸여 있다. 꼭 병풍처럼 보인다. 땀흘리며 일하던 철(농번기)이 지나버린 시골풍경은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오직 자연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들판은 흰 비닐로 묶은 건초용 볏짚 뭉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마치 잎이 없는 하얀 꽃송이가 만발한 듯하다. 추수하여 거둔 들녘엔 청소가 잘된 시골마당처럼 평화롭다. 이렇게 자연은 사계절의 변화를 주며 특히 가을은 아름답고 늘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 또 '다음의 해는......,' 이란 기대감을 우리에게 준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내고 더 나을 것 같은 내년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다.
  '고당산'의 지형은 생물의 형체처럼 형성되었고 그 모습이 꼭 독수리처럼 보인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양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날개를 펴고 기상하려는 독수리 모양과 같은 산새를 이루고 있다. 독수리 머리(부리)부분의 위치에 선친들의 묘소가 있다. 이 산은 시증조부님께서 물려주신 유산이다. 성묘 올 때마다 이 '고당산'의 지형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한다.
남편과 나는 산소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11월 중순인데도 잡초는 아주 건강해 본인다. 시골집 밭에서는 나무들의 그늘 속에서도 잘 자란 통통 여문 쑥의 열매와 잡초의 씨를 흞고 왔는데 이곳은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으니 생의 윤회 변화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왜 도움이 안되는 잡초들은 이렇게 생명력이 강할까?' 우리 주변엔 필요한 것은 귀하고 약하고 여리나, 필요없는 것은 흔하고 강하며 짐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남편은 선친들의 산소(봉분)주변에서 잡초를 뽑는다. 난 우리 부부와 후손들이 머물 유택 주변에서 잡초를 뽑는다. 빈 납골당이지만 애착이 간다. 남편은 5년 전애 이 납골당을 설치하고는 자손들을 모두 불렀다.
두꺼운 석판을 개폐하는 작동방법을 미리 연습시키며 납골을 안치하는 자리순서와 내부의 구조 및 연장의 사용방법도 시연해 보였다. '인생의 정리를 자기 의지대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건강), 물질적인 조건이 큰 문제일 것이나, 완전하지는 않지만 능력의 한도 내에서 대책을 세워 미리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시어머님 산소 앞에선 마음이 숙연해진다,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받았을 때의 喜悲의 시어머님 얼굴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어머님은 십 여년 전 (2002년)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아들이 미국 주재원(뉴욕 농협사무소장)으로 임기중에 작고하셨다. 가을추수 끝내고, 농촌의 생활은 조금 한가하고, 산천초목은 단풍으로 이름답게 물들어 있고, 날씨까지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며칠 전에 온 가족들이 연희동 집에 모여서 고인을 그리워하며 고인이 생전에 못 보셨던 새 식구들(증손들)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곤 이곳 선산엔 생산성 떨어지는 백수의 노부부가 온 것이다. '고인의 삶이 아주 완전하고 정갈해서일까?' 살아계실 때는 느끼지 않았던 존경스러움과 연민과 잘 모시지 못한 후회로 종종 가슴을 아리게 한다 쑥은 뜯기보다는 다듬기가 훨씬 더디다. 욕심을 부려서 거칠게 많이 뜯었지만 열심히 다듬는다. 흔히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엔 시작이 반이라고 하자만 끝마무리도 매우 중요함을 되새기며 처진 것 없이 다 다듬으며 지루함을 참는다. 저녁 늦게까지 다듬고 씻은 쑥을 삶아 뭉치 만들어서 냉동고에 넣고 얼리려고 한다. 이것저것 밑반찬의 재료가 냉장고에 가득하다. 상경하는 길에 천안에서 하루 묵을 생각이다. 의과대학 호흡기 내과 교수인 장남은 외양과는 다르게 토종 된장국을 좋아한다. 장남에게 아욱을 넣고 끓인 된장국과 쑥국은 최고로 좋아하는 국 반찬이다. "된장 쑥국 맛있네요." 어미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밥상을 받으며 이 말 한마디로 어미 가슴을 뿌듯하게 할 것이다. 근 20여 년 매식과 외식으로 진력이 난 장남이 안쓰럽다. 서울로 오르내리는 주말부부로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된 아들은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아가, 네 남편이 건강해야 너의 가족이 행복해진다. 식사나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거라" 며느리는 듣고 실천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어미는 만날 떄 마다 잔소리를 한다. 차에 가득 실어온 단감, 곡식, 삶은 쑥, 들깨가루, 밑반찬 등을 며느리와 딸에게 챙겨주며 "아이들 잘 거두어 먹이고, 건강관리 잘 하여라." 또 잔소리를 할 것이다. '그들은 가을 쑥을 뜯고, 다듬고, 삶아서 보내는 촌스러운 이 시어미와 친정어미의 마음을 알까? 모를까?' 쑥의 보따리를 들고 갈대밭 길을 내려오는 촌스러운 이 할미의 마음은 그래도 행복하기만 하다. 그리고 촌스러운 이런 모습과 생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2011년 11월 17일 시골집에서
늦가을의 시골집 빈 유택 관리

고당산

쑥을 뜯으며

주응규 2013-12-31 19:43	김숙자 작가님 곧 수필집 낼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늘 행운을 빕니다

김숙자 2014-01-01 08:39	주응규 시인님 감사합니다. 모두 허천시인님 덕분입니다. 힘을 얻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여러가지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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