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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11-22 20:15

ㆍIP: 115.xxx.86

베팅 (16회)

2. 천사를 만나고 악녀가 유혹하다.

혜원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병원 입구에 서 있는 선우를 향해 그녀가 가볍게 뛰어왔다.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 미인 형에 청순하고 발랄한 모습이었다.

“이 상처는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선우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놀란 그녀가 물었다.

“잠깐 딴 생각하다가 회사 계단에서 굴렀어. 내가 원래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못하잖

아.”

그가 슬쩍 둘러댔다.

“무지 아프겠다. 우리 병원에 가. 내가 공짜로 치료해 줄게. 나 저 병원 간호사잖아.”

그녀가 상처를 어루만지며 병원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손을 끄는 그녀에게 못 이겨 출

입문 앞까지 갔으나 선우는 끝내 사양했다. 실랑이 끝에 두 손을 들어 항복하는 제스처

를 취하는 혜원의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두 사람이 병원 벤치로 가서 앉았다.

“선우 씨 고집은 내가 못 당한다니까.”

빙그레 웃는 선우에게 그녀가 귀엽게 조잘대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병원 응급실에서 난리가 났었어. 어떤 사람이 흉기에 팔이 찔려왔는데 자기

부터 치료를 안 해준다며 기물을 부수고 응급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어. 경찰이 와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되었지 뭐야. 몸에 문신이 엄청 많은 게 깡패인 것 같아. 선우 씨도 그

런 사람 본적 있어?”

“아, 아니.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우리 혜원이 안 다쳐서.”

“다른 직원들은 무서워서 피했지만 난 그 사람 행패 부리는 거 휴대폰으로 모두 촬영했

어.”

당황하는 선우에 비해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뭐. 뭐할라고?”

“그 사람이 나중에 오리발 내밀면 증거물로 남기려고. 나 용감하지?”

“응. 혜원이 대단한데!”

말과 다르게 그는 속으로 뜨끔했다.

“요즘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으로 감원한다고 뒤숭숭한데 선우 씨 회사는 괜찮아?”

“그, 그럼.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없어. 분위기도 좋고.”

그가 얼른 얼버무렸다. 그녀는 선우가 제2금융인 캐피탈회사의 채권 추심 팀에서 근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우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1년 전 병원 부근에서 차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그

의 다리가 골절되어 혜원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여 약 한 달간 깁스를 하며 지낸

것이 계기였다.

병실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청초함과 절제된 듯 한 느낌이 그의 마음에 사뿐히 다

가왔다. 긴 생머리가 바삐 움직이는 동안에 살며시 펄럭이며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와인

색깔의 머리 결이 선우의 시선을 고정시키며 그녀를 바라보게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약이 너무 빨리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링거를 핑계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살포시 다가와 자상하게 바늘을 확인하는 그녀

의 손길은 부드럽다 못해 솜사탕 같았다. 그녀는 하얀치아를 들어내며 미소와 함께 말

했다.

“천천히 들어가게 해 드릴게요.”

이슬방울이 은쟁반 위를 구르는 음성이었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번째 대화였다.

선우는 그녀와 친해지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노트북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유머를 검색

하여 진료시간에 들려주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와 간호사를 떠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퇴원 후 식사 초대에 혜원이 응함으로써 시작된 교제가 지금

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선우의 직업을 물어봤을 때 차마 자신의 일을 이야기 못하고

얼떨결에 그렇게 둘러댄 것이다. 어차피 빚 받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요즘 경제가 안 좋잖아. 혹시 빚 못 갚는 사람이 있어도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마. 그 사

람들 마음은 오죽하겠어. 선우 씨는 안 그러지?”

“그, 그럼. 당연하지. 나는 법적으로 조사해서 문서로만 발송하니까 그 사람들 하고 통

화하거나 직접 볼 일이 없어.”

거짓말을 하느라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이네! 아빠가 조만간 선우 씨 집으로 한번 초대하래. 언제가 좋을지 생각해서 말

해줘. 그렇다고 부담은 갖지 마. 급한 건 아니니까.”

“가능한 빠른 시간에 찾아뵙도록 할게.”

그의 대답에 힘이 없다.

“오늘 우리 영화나 볼까?”

분위기를 바꾸려 그가 말했다. 선우의 제의에 좋아하는 혜원이 얼른 그의 팔짱을 꼈다.

다정한 모습의 두 사람이 병원을 떠났다.

정찬열 2014-11-24 21:41	작가님의 실감나는 글을 함께 하고 갑니다. 다음호를 기대 하면서 ... 온종일 소리없는 비가 나리네요 편안한밤 되시고 승필을 기원합니다.

이인철 2014-11-26 18:26	《Re》정찬열 님 , 이 가을을 보내는 비인가 봅니다... 바쁘신 중에도 방문해 주시는 작가님께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작가님께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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