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4-26 15:03

ㆍIP: 118.xxx.100

책으로 글 보는 세상이 아닌데,

사람은 한 번 입력된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입력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다.
저를 포함해 글 쓰는 문인들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옛날 활자로 인쇄하던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지키는 원칙은 활자로 조판하여 인쇄한다는 전제로 정해진 원칙들이다.
이전에 문인이 글을 쓰고 받는 대가는 2백 자 원고지 장수로 계산해서 받았다.
따라서 원고지에 여백이 많이 남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능하면 이어 쓰기로 여백을 줄이려 했다.
大家의 경우를 제외하면 여백이 없도록 칸을 메워 쓰는 것이 문인의 도리였다.

예전에는 글은 단문으로 끊지 말고 길게 이어 쓰는 글을 잘 쓰는 글이라고도 했다.
이러다 보니 글을 길게 이어 쓰려고 노력하게 되고, 길게 이어서 쓴 글은 보기가 어렵게 마련이다.
따라서 보는 이의 시각적 혼란을 방지하고자 시작할 줄의 첫 글자를 한 칸 들여 쓰도록 했다.
재판의 판결문 중에 어떤 것은 수십장에 달하는 문장이 하나로 이어진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문장을 보고 대단한 작문력이라고 칭찬하던 시대도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도 유사한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지금은 책으로 글을 보는 시대가 아니다.
아는 아우 중에 나름 알려진 작가가 있는데 하는 말이, "형님 요즘은 책이 천부만 팔려도 대박
입니다." 그러니 인쇄된 책을 보던 종이책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종이책을 만들던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소운도 온라인상에 글을 쓰면서도 종이책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끝까지 길게 쳐서 벽에 부딪혀야 다음 줄로 내려치는 꽉 찬 글을 습관처럼 써 왔었다.
석 줄부터 일곱 줄 정도로 문단을 나누고, 한 칸의 여백도 없이 글을 채워서 두부모 자르듯
일정한 규격으로 문단을 글자 수까지 일정하게 맞추고, 이를 자랑으로 생각했다.
수식어를 넣고 빼고, 단어가 길거나 짧으면 유사 단어를 찾아서 글자 수를 조정하는 방법
까지 동원해서 글의 길이를 조정하며. " 글자 수까지 정확히 맞출 수 있어"
이걸 자랑이라고 생각하던 무지를 범했다.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이 내 글을 보더니 쓴소리 한마디 했다.
요즘 이렇게 글 쓰면 젊은 사람들은 읽지도 않아요, 한눈에 들어 오른 길이로 글을 써야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읽어야 하고, 그렇게 붙여 쓰면, 칸이 헷갈려서 어디까지 읽었는지
더듬어 찾아야 하는데 누가 이런 글을 읽겠어요, 듣기는 거북했지만,
-아! 맞는 말이다,

이백 자 원고지에 쓰는 글도 아니고, 원고지 장수 따져 고료 받을 일도 없는데 왜, 종이
아끼는 옛 버릇을 그렇게 고집한 것인가? 생각을 바꾸기로 하고 내 글을 읽어보니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눈을 좌우로 굴리다 못해 고개까지 돌려야 할 만큼 글의 길이가 길고,
단문이 아니라, 글의 앞뒤를 연결하느라 머리까지 굴려야 하니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지금은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 세상이다. 문장이 길면 우선 생각을 연결해야 하니 피곤해서 읽지 않게 되고 문단을 나누지 않으니 읽다 보 면 행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바짝 써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이런 옛 방법은 다 종이책으로 인쇄하고, 고료를 따지던 시대에 고료와 종이를 아끼려는 산물인데, 이 좋은 시대에 왜 구태의연한 방법에 목을 매고 어렵게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글은 한눈에 들어오게 짧게 쓰고, 單文化 한 글로 읽는 이가 빨리 의미를 깨닫게 돕고, 문단 사이를 한 칸씩 띄어 시각적 피곤함을 덜어주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올바른 글쓰기라는 생각을 왜 진작 못 했을까? (이 문장 일기가 어땠습니까?)

우리가 말하는 문법이나 띄어쓰기는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덜 헷갈리니 그렇게 하자는 의미로 언제라도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한다.
모니터로 보려면, 여백이 많아야 글을 읽어도 덜 피곤하고, 과감하게 單文化 하고 또 칸도
벌려 줘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하지 못하면, 결국 독자와 필자는 따로 놀게 된다.
아니, 젊은 세대가 새로운 문학 영역을 장악할 것이고 틀딱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교보 문고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여백이 적은 책은 피하게 되더라,
글자도 크고 칸도 잘 띄우고, 여백도 많은 책에 손이 가는 세상이다.
공재룡 시인님의 댓글을 보며 생각했다. 참 읽기가 편하다. 세상 이치에 밝은 분이구나,

*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일 뿐입니다.

정찬열 2017-04-26 19:12	소운작가님 참 좋은 지적 해주셨습니다. 문법에 박식하지 못한 제가 가장 고민하고 우를 범한 부분입니다. 당초 이공계에만 해박한 사람이 장애인이 되고 부터 문학을 접하면서 공부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질책을 하면서 어깨넘어로 배워가고 있는중에 밝혀주신 좋은 글 감사히 배독했습니다. 평소에 무심코 쓰던글도 이제는 조심이되어 손이가질않은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글에 감사드리며 늘 건안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백낙은 2017-04-26 20:25	소운 작가님. 안녕하세요. 멋진 글 다시 한번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따로 글쓰기를 공부한 적도 없어 글을 잘 쓰시는 분을 보면 늘 부럽답니다. 저는 목사로서 설교를 해 왔던 것이 몸에 배어 늘 설교조로 글을 쓰고 있는듯 하여 퍽 조심하지만 뜻대로 잘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 사람이라 요즘 사람들이 잘 읽지도 않는 책에 의존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깨우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이석희 2017-04-27 06:08	박목철 작가님! 고운 글 단숨에 배독하였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 중에 휴대폰을 꺼놓기에 통화하기가 매우 힘이 드는 이가 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되어 만나 물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여기 저기서 연락이 와서 귀찮다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은 내가 연락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만든 기계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항상 그대로인 경우를 경험하였습니다. 글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 관계의 답은 역시 배려인 것이었습니다. 어! 그런데 이 글도...ㅎㅎㅎ

박목철 2017-04-27 20:03	《Re》정찬열 님 , 요즘 썰이라는 얘기 거리가 조횟수가 대단합니다. 저도 한번씩 들어가 보는데, 짧은 문장이 동영상으로 넘어 갑니다. 길어야 열 댓자 정도, 더 문장이 길면 읽지 못하고 넘어 가게 되지요, 생각 할 틈도 없습니다. 글을 대하는 순간 바로 뜻이 통합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런 글을 읽더군요, 그런 눈으로 보니, 길게 칸을 채운 글을 읽으려면 대단히 불편합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글의 길이를 아주 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컴에 입력되는 글의 길이를 다 채우면 너무 갈다는 생각입니다. 아래로 넘어가는 것은 불편하지 않더군요, 어떤게 맞는지 저도 헷갈리긴 합니다.

박목철 2017-04-27 20:09	《Re》백낙은 님 , 위원장님, 글쟁이는 원래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저는 가능하면 글을 꼭 읽고 댓글을 달려고 노력합니다. 칸을 띄우지 않고 이어쓴 글이나, 수평으로 끝까지 이은 글은 읽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책이라면 몰라도, 모니터로 보는 글은 시작글을 한 칸 물리는 것 보다는 한 줄을 아예 비우는게 훨씬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조판 할 글이 아니고 요즘은 활자로 조판 하지도 않더군요, 모니터로 보는 글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좋은 신 말씀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4-27 20:11	《Re》이석희 님 , 이석희 작가님, 한 번 든 버릇은 고치기가 아주 어렵더군요, 나이가 들면 고집을 버리라고 충고도 많이 받습니다. 나는 고집이 없다고 우기는데, 주변에선 아니라고 한답니다. ㅎㅎ 댓글에서 또 깨우칩니다. 감사드립니다.이석희 작가님,

김종덕 2017-04-27 21:34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작가님의 의견에 많은 부분 수긍합니다. 일단 글을 쓰고 난 후에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되기때문에 요즈음은 디지탈 시대라 독자들을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꼭 맞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프레젠테이션으로 많은 부분의 의견들을 주고 받기 때문에 뼈대가 무언지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고 명확한 것이 디지탈시대는 좋겠지요. 하지만 문학은 발표자료가 아니고, 특히 작가의 정서가 들어아야 하기때문에 은근하게 마음을 전달할수 있는 아나로그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디지탈을 아우르는 아날로그 작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길지 않아도 마음을 전달 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공감을 가집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4-29 10:43	《Re》김종덕 님 ,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사실 의견 전달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평생을 글을 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살았습니다. 문학 작품이 아니라, 평가서, 의견서, 타당성 평가, 건의서 등 주로 의견을 전달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글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문학작품을 써도 자꾸 뭔가를 전달하려는 버릇이 있답니다. ㅎㅎ 버릇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제 의견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전달 방법에 대해 시대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는 정도 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김종덕 작가님,

김경렬 2017-04-30 07:09	어떤분이 수필이나 소설은 왜 이어 쓰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읽느라고 힘들때도 있다며, 차라리 끝내는 문장마다 줄을 바꾸면 보기도 편할텐데 불평을 하더군요. 같은 맥락이지 싶습니다. 건강 하시지요. 늘 좋은 말씀 잘 배독하고 있습니다.

이와미 긴잔(石見銀山)의 눈물,

캄보디아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