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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박재도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박재도
ㆍ작성일 2013-04-03 10:18
ㆍIP: 118.xxx.145
베트남 구찌동굴

오늘은 휴일이다. 그런데 어찌 날씨가 좀 기리 꾸리 하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릴 것 같은 하늘을 보며, 멀리 호찌민시 근교에 관광지로 변모한 구찌 동굴을 간다.


지나는 차창 밖으로 수없이 흘러가는 오토바이 물결의 무질서 속에 이 나라 고유의 전통에 숨어 있는 문화적 질서를 느낀다. 이번이 이곳을 5번째 찾는 길이지만 항상 느끼는 것은 아직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 몹시 불편하다는 것뿐이다.


구찌 그곳이 어떤 곳이냐, 옛 사이공시, 현 호치민시를 진군하기위한 군사작전의 요충지이며, 당시 47년 전 이 나라를 통일한 그 유명한 월맹군(베트콩)의 전승지로 수많은 영혼이 잠들고 있는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연합군이 최신 무기로 26차래 공격을 대대적으로 감행했는데도 함락시키지 못한 전설적인 이들의 전승지다.


구찌 동굴은 원래 프랑스인에 대항하기 위해 1948-1954년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 때 일부가 파여 있었으며, 그 후 베트남 전쟁 때 1967년까지 약 2백 km를 더 파서 현재 총연장 길이는 약 260 km이며, 내부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무럽꿀어 지날 수 있는 폭이고, 깊은 곳은 지하 30 m와 3층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굴을 팔 시 연합군이 퍼부은 포탄 껍질로 삽과 호미를 만들었고 12종류의 함정 속에 인마 살상용 크레모아 지뢰 창칼 무기를 제작했다니 소름이 끼치며, 그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대장간과 식수로 사용한 우물을 보며, 새삼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이 국 만 리 전장에서 아군이 투하한 포탄 껍질로 만든 저 뾰족한 창끝에서 생을 마감한 이는 누구를 위하여 서로 싸웠을까, 저 밀림 속에서…….


대자연의 정글에 피지 못한 꽃으로 생을 마감한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내 귓전에 온종일 맴돌며,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 발전도 파월용사란 핑계로 저 창끝에서 흘러내린 젊은 핏물의 대가를 보는듯하여 진종일 숙연해져 아직도 이승을 떠돌고 있을 영혼들의 영면을 위해 기도드린다.


우리들이 잠시 쉬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잘 가꾸지는 못할망정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허공에 수없이 던져 보지만, 메아리 없이 지는 노을 속에 구찌를 휘감는 백당 강의 누런 물 위에 떠 있는 부평초만 그때의 역사를 간직한 채 침묵으로 쉼의 여울목을 찾는구나.





* 베트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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