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대한문인협회 -시 (詩)

ㆍ작성자	채영제
ㆍ작성일	2014-07-30 21:24

ㆍIP: 1.xxx.184

(산문) 일본군 탈영병 가지에 대한 회상

일본군 탈영병 가지에 대한 회상

내가 처음으로 소설(小說)을 읽은 나이는 국민학교(國民學校) 3학년 정도 되었다고 기억된다.

그 소설은 누나의 책장에 꽂혀 있던 “인간(人間)의 조건(條件)”이란 일본인(日本人) 소설가 ‘고미가와 쥰페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가지’라는 28살 난 청년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일본은 대동아 전쟁(大東亞戰爭)을 일으켜 만주(滿洲)를 침략(侵掠)하였을 때였으므로 거의 모든 일본의 젊은이들은 군대(軍隊)에 징집(徵集)될 때였는데 가지는 군 소집을 면제(免除)받기 위하여 만주 촌락 철광 광산(鐵鑛鑛山)의 식민지 노무관리 책임자로 발령을 받는다.

오늘날로 치면 방위 산업체(防衛産業體)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것과 같을 것이다.

가지는 그곳에서 노무관리자로 근무하던 중 일본 군국주의자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는 식민지 노무자(勞務者)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 일을 하다가 결국 일본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要注意人物)로 찍혀 현역병(現役兵)으로 입영을 하게 된다.

당시 가지는 신혼 시절이었으므로 그 직장 근처에 아내 미찌코를 남겨두고 군에 소집되었는데 실로 엄청나고 혹독한 군대생활을 하게 된다.

일본 군대의 병영생활도 역시 비인간적(非人間的)인 불법(不法)과 비리(非理)와 모순(矛盾)투성이였다.

가지의 동료 병사(同僚兵士) ‘신조’는 자기의 형이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였던 관계로 헌병대의 요주의 인물로 낙인(烙印)이 찍혀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탈영(脫營)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바라’라는 동료병사는 체력이 약하여 행군(行軍)에서 낙오하였다는 이유로 선임 병사들로부터 군의 폐물(廢物)이란 모욕과 함께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주인공 가지는 동료 병사들이 군국주의 앞잡이들로부터 온갖 잔학한 행동에 피해를 당하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장을 직접 목도(目睹)하고부터 그들의 입장에 서서 약자를 옹호(擁護)하고 대변하다가 자신조차도 결국 핍박과 왕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전쟁(戰爭)은 인간이란 존재를 얼마나 황폐(荒廢)하고 잔악(殘惡)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뇌(苦惱)하게 된다.

그 후 가지도 그런 일본군의 병영생활(兵營生活)을 견디다 못하여 결국 어느 추운 겨울날 탈영(脫營)을 하게 된다.

가지는 탈영하여 자기의 아내 미찌코가 사는 남만주(南滿洲)로 가기 위하여 눈이 펄펄 내리고 온 천지(天地)가 꽁꽁 얼어 붙어버린 황량한 만주 벌판의 길을 며칠째 굶주리며 걷다가 허기(虛飢)에 견디다 못해 중국인의 노점상에서 호떡 한 개를 훔치게 된다.

가지는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의 중국인(中國人)들로부터 모진 몰매를 맞다가 어떤 청년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 위기를 모면한다.
그때까지 가지의 언 손에는 훔친 호떡 하나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호떡은 가지의 손아귀와 같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가지는 사랑하는 아내 미찌꼬가 살고 있는 집을 지척에 두고 잠시 바위에 앉아 쉬면서 미찌꼬와 다정하게 앉아 그 호떡을 나누어 먹는 환상을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 위로 눈이 밤새도록 내려 가지는 눈사람의 형상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나이에 이 소설을 읽고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던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나도 군대생활을 할 때 실로 엄청난 정신적인 고난을 겪은 적이 있었다.

우 편향적(右偏向的)인 군(軍) 정보기관에서 잘못 조사한 나의 친척들에 대한 좌익 기록(左翼記錄) 때문이었다.
작은아버지는 분명히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아군(我軍) 측의 치안대장(治安隊長)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민군(人民軍) 측의 치안대장이었던 것처럼 잘못 조사된 기록 때문에 하루아침에 나는 ‘요주의 인물’, ‘ 빨갱이 자식’ 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렇게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하던 시절, 늘 보안대에서 감시(監視)를 당하며 거의 연금을 당하다시피 군대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너무나 괴롭고 외로워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살(自殺)과 탈영(脫營)의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지’의 고난과 비교(比較)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며 참고 견뎌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임병사가 되어 제대(除隊)하기 까지 단 한번도 졸병(卒兵)들에게 비인간적(非人間的)인 대우를 한 사실이 없었다.
내가 부대의 선임이 되면서부터는 이른바 ‘줄빳따 (고참 순으로 하급자에게 몽둥이로 구타하는 행위)’ 라는 나쁜 관행을 아예 없애 버렸다.

누구라도 졸병(卒兵)들에게 ‘얼차려’를 시킬 수 없는 부대(部隊)의 전통(傳統)을 확실히 만들어 놓고 제대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그 일본군 탈영병 ‘가지’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닐까 한다.

나는 어떤 소설이든지 2번 이상은 절대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그 후 세 번 정도는 더 읽은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줄거리와 인물들에 대하여는 희미하기만 하다.

인생의 험한 길을 가파르게 달려오면서 이제는 가까스로 이순(耳順)의 산등성이에 걸터 앉게 되었다.
지금의 경륜(經綸)과 시각(視覺)으로써 다시금 그 소설을 읽고 싶다.

아니 크리스천으로서의 눈과 마음을 가지고 그 가지에게 다가가서 찬송가도 같이 부르며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울 메이트가 되고 싶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전혀 그 소설(小說)을 구할 수가 없었다.
벌써 수개월 째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보수동 헌책방까지 모조리 뒤졌지만 허사(虛事)였다.
이미 새 책은 절판(絶版)되었고, 헌책조차도 시중에서는 씨가 말라 버렸다.

꼭 구해서 다시 한 번 밤새워 읽고 싶다.
,
그리고 이 책을 연극하는 딸 知河와 영혼이 해맑은 딸 知允이에게도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백종수 2014-08-01 08:45	시인님의 글을 통하여 "책은 모든이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어린시절 아물거리는 등잔물 심지를 돋우며 밤새워 읽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이른 아침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주응규 2014-08-01 09:25	채영제 시인님의 좋은 글에 오롯이 머물러봅니다 여름의 절정을 이루는 8월입니다 건강한 여름 시원한 여름 나시고 건필을 기도합니다.

이렇게 떠나갈 것을

나의 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