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죽음

율하 김남식

꽃이 활짝 핀 춘 삼월의 저승 꽃밭에 물을 뿌리고 꽃잎에 시를 읇어 주고자 가고 싶어 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아마도 방년 45세 불혹의 흔들리지 않는 인생에 철학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택하여만 했던 매우 곤란한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한 달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죽은 자가 갔던 길에 글 문이라도 지어 혼을 위로하고 끈끈했던 우정이라도 노자 돈으로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년 전 여름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어느 문단에서 알게 되었는데 것 모습만 봐도 얼른 알아볼 정도로 순박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임을 알아챘습니다. 나보다 한 달 더 빨리 등단을 하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았지만 오가는 예기 속에 친구가 되었지요.

그런데 시인이 그렇게도 빨리 되고 싶을 만큼 준비되지 못한 실력이 그만 스스로 회의를 가져 왔던 차에 그 문단은 오직 이 끗의 경영만 추구하고 진정한 문학을 추구하지 못하고 폐해를 저지르는 각종 잘못이 당시의 시인들에게 크게 실망으로 작용하여 많은 분이 타 문단으로 떠나거나 절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당시 저 또한 가슴 아픈 마음으로 방황하고 문인의 길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였어요.

물론 나는 등단하기 전에 많은 세월을 글쓰기를 하던 사람이었기에 대략 대한민국 문단의 열악한 현실의 바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겪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지요.

다음해 봄이 오고 내가 꿈꾸던 시인의 집을 열 개 되었고 조용한 시골 모퉁이에 200여 평 규모로 차려서 시화를 전시하고 음식을 팔고 대화의 장소를 운영하고 몇 달이 흐르고 있을 때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 회원들을 모시고 여름휴가 겸 놀러 온다고 하여 7명 정도가 방문하였고 한나절 소담스런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모기향 두어 개가 다 타버릴 신간도 넘었고 돌아가던 발걸음까지도 줄줄 웃음이 흘렀었지요. 우리는 후에 그만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었고 친인척보다도 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한해가 흘러 그는 타 문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자꾸만 나를 그쪽으로 초빙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달 그곳에서 활동하다 보니 전에 있었던 문단보다는 사실 조금 좋았습니다. 막상 낯설기만 할 것 같았는데 아는 시인이 여러 명 있어서 무탈한 입성과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나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더 빨리 중요 보직을 거치면서 그를  문단에 나보다 더 높이  추천하게 되었지요. 나의 부탁이라서 그랬는지 잠시 고민을 하더니 흔쾌히 수락하였고 한해를 잘 보내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꽁지를 빼고 잘도 도망하여 달아나며 마중은 짧은 시간을 흘려보냈고 얼마 후 그런데 그 친구 가정생활이 어려움이 밀어닥쳤고 사업도 벼랑 끝으로 내밀리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문단 또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실체가 보이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해 2월의 달력을 찢을 즘에 문단의 직함을 사표를 내야겠다고 전화가 왔고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은 또다시 격한 실망과 절망을 표현하여 그저 잘해 보자는 말로 달래여야만 했었는데 왜냐면 어느 문단을 가도 우리나라 현실이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달래볼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저런 일이 겹치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시인으로서 스스로 자질과 실력에 대한 가슴 깊은 고백이 나를 마음 아프게 하였지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내게 부탁하였던 급전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작은 우정은 부실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차에 나의 고향 내가 사는 이곳으로 휴양 와서 쉬고 싶다고 했던 마음속에 다른 무엇이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진정한 친구로서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요.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리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고 약육강식의 사회를 빙자해서 있는체하고 자랑을 하며 거들먹거리는 나쁜 사람을 보면 불의를 못 참듯이 친구의 강직한 성격이 한바탕 했던 모양입니다. 때마침 좋지 않은 여건으로 고뇌하고 있었던 차에 빌미가 되었던지 며칠 지나지 않아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새로이 출발하면 경제가 좋아 질 줄 알았고 희망의 시어를 항상 품에 안고 살던 당신의 순박한 마음만은 진정한 시인이었던 그가 불과 물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유황이 타오르고 안개가 가로막힌 천상을 가야만 했었던 길엔 우리가 모두 꿈을 깨트리는 잘못된 살인자요, 하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나라 때 살았던 “여주선생”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여주선생은 이승에서도 밤이면 저승 재판관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신문에 기사화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이 세상에 왔다가 자살한 혼령은 소중한 목숨을 끈은 죄로 10번을 처형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는 가 봅니다. 물론 시신을 직접 살해한 당사자는 없지만, 이 사회가 죽게 만든 희생양이고 인간 속에서 아름답게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시인 아닌 시인이었던 그를 우리는 잊어버려선 안 됩니다. 그리고 저승에서 어렵게 보낼 수도 있을지 모르는 그를 위해 명복을 진정으로 빌어 천복이 원위대강하고 영체가 온전하고 구천을 떠돌지 않게 각자의 마음으로나마 충분한 위패안치를 위시하여 묵념으로서 또는 기도로서 다 같이 참여하는 미덕의 눈을 감고서 한때 동지였던 사랑을 보여 줍시다.

김 시인에게!

율하 김남식

꽃나무가 그립다고

마음결도 하양 하여

놀자 하며 웃던 그네가

수많은 글과 정을

한꺼번에 두고 갔구려!

흰 저고리 적삼 자락

엽전 하나 입에 물더니

안개 낀 천상 길에 앉아

시 하나 또 지으려 하오!

그곳은 별 일곱이 보이고

오작교는 보일런지

까만 밤 이곳처럼 구별되어

밝아지면 좋으련만

어디쯤 올라가고 있소

중천에 기대면 차갑고

머물 곳이 없을 진데

이 밤엔 꼭 자운별 올라

맺힌 이별 미소 짓게 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