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黃牛)의 변(辯). / 수필가 / 황우 목사 백낙원.

 나는 내 호(號)를 황우(黃牛)라고 지었다. 어떤 사람은 왜 하필이면 호를 황우라고 지었는가라고 묻는다. 나는 무작정 황소가 좋아서 그렇게 했노라고 대답한다.

 황희 정승과 밭가는 황소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하다. 소가 사람의 말을 어찌 알아듣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소는 수천 년 동안 인간들과 함께 생활해온 가축으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경상도 지방에서 소를 부리는 소리는 대충 이러하다. 앞으로 가라도 할 때는 “이랴. 이랴.” 왼쪽으로 가라고 할 때는 “어디, 어디”, 오른 쪽으로 가라고 할 때는 “노로, 노로”, 서라고 할 때는 “워, 워” 뒤로 물러서라고 할 때는 “물러 물러”이다. 그 외에도 일어나, 올라서, 돌아, 발 들어, 먹어 등등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소는 인간의 말을 가장 많이 알아듣는 짐승중의 하나인 듯하다. 그래서 황희 정승의 질문을 받은 농부가 소가 알아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대답한 것이 아니겠는가.

 소가 언제부터 인간과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언제부터 농경에 참여해 왔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인간과 가장 오랜 동반자임에는 틀림없다.

 어린 시절 나는 농촌에서 나서 농촌에서 자랐고, 농사일도 많이 해 보았기 때문에 소가 농경문화에 끼친 영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아버님은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시면서 일을 하셨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어릴 때 소는 한 식구요 가족이었다. “소가 반 살림” 이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애지중지 했다. 끼니마다 소죽을 끓여서 먹였고, 겨울이면 추울세라 짚을 깔아주고, 덕석을 입혀주곤 했으며, 찬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마구간에 문을 달아 주곤 했다. 여름이면 소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기 위해 산이나 들로 몰고 다녔으며, 밤이면 모깃불을 피워주었고, 일삼아 파리도 잡아주면서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무럭무럭 잘 자라 새끼라도 한 마리 낳아주면 그 새끼 잘 키워서 팔아 자식들 학비를 마련하거나, 아니면 논이라도 몇 마지기 사게 되면 살림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가 쇠죽을 잘 먹지 않으면 그 옆에 앉아서 같이 걱정을 하였고, 이심전심 주인이 울면 소도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어쩌다가 소를 시장에 몰고 나가 팔기라도 할라치면, 부모님들은 소고삐를 잡고 우시기까지 하셨고, 텅 빈 마구간에 들어가 소리 없이 울기도 하시는 것을 보았다.

 또 송아지를 떼어 파는 날에는 어미 소도 울고, 우리 가족도 울고, 모두가 밤새워 울었다. 그러다가 또 소 한 마리 사오는 날이면, 온 가정에 웃음꽃이 피는 것이다. 소가 건강해서 새김질도 잘하고 명랑하면 온 가정의 분위기도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소가 맛있게 쇠죽을 먹을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것을 지켜보면서 입맛을 다시곤 했었다. 소가 새김질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맛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소에게는 위가 넷이 있는데, 혹위, 벌집위, 겹주름위, 주름위 등이다. 소는 시간만 있으면 벌집위(제2위)에 있던 여물을 다시 게워 야금야금 씹어 다시 삼키면, 겹주름위(제3위)를 지나 주름위(제4위)로 내려간다.

 소가 농사를 지어도 알곡은 모두 주인이 먹고 죽정이나 지푸라기만 먹는다. 고구마 농사를 지어도 고구마는 주인이 먹고 소는 덩굴만 먹으며, 콩 농사를 지어도 콩은 주인이 먹고 소는 콩깍지만 먹는데도 힘이 장사다. 그 이유가 바로 네 개나 되는 위에서 영양분을 알뜰하게 섭취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논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고, 등에 태워주고, 새끼 낳아 살림까지 키워 준다. 소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소는 일평생 코를 꿰인 채 주인이 이끌면 싫다는 소리 한 번 못하고 일을 한다. 새끼 낳아 주인에게 땅 사주고 집 사주고, 주인 집 아들 공부시키고 장가까지 보내 준다.

그러다가 늙어서 쓸모가 없어지면, 도끼로 머리 맞고 죽는 신세가 된다. 죽고 나면 가죽으로는 구두 만들고, 뼈는 곰국 되고, 피는 선짓국, 살찜은 불고기나 갈비탕이 된다. 인간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그 바다를 열두 소가 받쳤으니 셋은 북을 향하였고, 셋은 서를 향하였고, 셋은 남을 향하였고, 셋은 동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다.”(역대하 4:4절)고 하신 말씀처럼 첫 번 성소의 바다를 받친 것이 열두 마리 소였다.

그리고 소는 옛날부터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몇 안 되는 동물 중의 하나이다. 굽도 갈라졌고 새김질도 하는 정결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소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오지만, 사무엘 상 6장을 보면,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암소는 하나님의 법궤를 메었기 때문에, 뒤에서 새끼가 소리를 질러도, 젖통이 터질 것만 같아도,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고, 목이 타는 것 같아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암소는 몸 바쳐 번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어릴 때 나의 별명도 ‘황소’였다. 내 또래의 아이들보다 힘이 세다고 붙여진 별명이었지만, 그 별명이 왠지 싫지가 않아서 그렇게 불러 주기를 바라곤 했었다.

 근자에 와서 서예를 좀 한답시고 호를 정해야겠기에 생각다 못해 “黃牛”로 정했다. 그것도 서양에서 들어 온 물러빠진 얼룩소가 아니라, 누런 빛깔의 在來種 황소, 그것이 나의 호가 된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라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소가 경운기에 밀려나서 한 평 우리에 갇혀 서양강냉이 먹고 비육우가 된다. 몸만 탱탱 불어나서 잡혀 죽을 때까지 세상구경 한 번 하지 못한다.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끌려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입에 수도 파이프를 물리고, 배가 터지도록 물을 먹인다. 또 먹은 물이 온 몸에 퍼지도록 몽둥이로 두들겨 댄다. 이렇게 기구한 운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봉사해 온 소들에 대한 인간의 보답이니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소는 반란을 꾀하거나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소가 좋다.

얼룩덜룩 젖소도 말고,

털 검은 흑소도 말고,

우리 땅, 우리 얼굴,

우리 마음의 색깔 닮은

누렁이 황소가 좋다.

더디더라도 소걸음으로,

빼앗기더라도 보복하지 않으며,

배신을 당해도 탓하지 않는

누렁이 황소로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