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6-10-12 12:29

ㆍIP:

앵두
그녀가 꼬마 계집애를 대리고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조금은 낯섫은 분위기입니다.
“애야 몇 살이니?”
하고 물어본 나에게 올해 열 살이라 하니
아마도 십년만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 이슬이 촉촉이 맺히는 것이 보입니다.
나도 하마터면 눈물 고일 뻔 했습니다.
“잘 살고 있니? 어떻게 살았니?”
나의 물음에 그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립니다.

그녀는 나의 이종 사촌 동생입니다.
얼마 전부터 내 곁에서 사라졌던 그녀를
우리들의 동생이 땅으로 돌아가는 자리에서 다시 만난 겁니다.
“오빠 ! 나도 소주 한잔 줘!”
하고 종이 잔을 내 밉니다.
“이녀석이 왜이래?”
하면서 한잔 가득 그녀의 잔에 소주를 채워 줍니다.
‘삶의 질곡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으면 그러니....’
‘지나온 길이 그리도 한스럽고 힘든 길이었니???’

사실 동생이라야 나하고 동갑이고
그저 3개월 정도 나보다 늦게 태어났는데도
어려서부터 깍듯이 오빠라 부르며 잘 따랐습니다.
아니 어쩌면 오빠를 관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이 동생의 아버지이신 이모부는
동서 이기전에 친구였으니 아주 가깝게 지냈죠.
언제인가 두 집이 어려울때는 (아마도 제가 고등학교 때)
같은 집에서 몇 년을 같이 산적도 있답니다.
우리가 오형제고 이모네가 오형제 이니
방 4개인 집에서 버글 버글 거리며 살았었죠.

저보다 세살이 위인 친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나를 따르고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인생 상담도 하곤 했는데 항상 내 얘길 조용히 듣고 나선
날보고 ‘애 늙은이’라 놀리곤 했었죠.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앵두같이 이쁘다고
‘앵두야~ 앵두야~’하고
불러서 본 이름보다 ‘앵두’라고 부르는 게
더욱 친숙하여 그렇게 부르곤 했답니다.

“앵두야~ 너는 5십이 넘었어도 안 늙고 이쁘네?”하니
“오빠도 하나 안 늙었구만...”
“올캐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 너무도 기분이 좋다...”
“오빠야 술 한잔하자!!“ 합니다.

내가 군에가기 전에는 앵두는 내 애인이었습니다.
아니 내 애인인척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고 해야 옮은 표현 일껍니다.
어디를 가도 같이 간다고 따라 나서는 앵두는
내 코디를 일절 책임지고
내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곧잘 같이 갔는데
그 당시 168센치의 키에 늘씬한 몸매에 센스 있는 옷차림은
항상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 이었죠.
그런 여자친구 하나 소개시켜 달라고 앵두에게
혹은 나에게 부탁하곤 했는데
단, 한 녀석에게 사촌 동생인 걸 들켜서
그녀석의 사귀게 해달라는 갖은 협박에도
괜히 소개해 주기가 싫더라고요.

허긴 앵두가 사귀어 보라고 나에게 소개해준
앵두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다 이쁘고
날씬하고 세련미 넘치는 생기발랄한 아가씨들이었지만
괜히 싫어서 만남을 기피하곤 했었죠.
그런 날보고 앵두는
“오빠는 숙맥이야?”
“개들이 얼마나 콧대 높은데?”
“우리 오빠라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그렇게 수줍어하고 안 만나줘?“ 하며
놀리는 건지 즐기는 건지 웃어대던 앵두....
아마도 사촌 형제였지만 그런 정을 뛰어 넘는
남다른 정을 느꼈던건 아닌가 합니다.

“오빠야~ 정말 보고 싶었어~”
“그런데 오빠 볼려면 이모도 봐야 돼서 이 악물고 참았어.”

그녀는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이모부가 일찍 돌아가셔서 일찌감치 산업 전선에 뛰어 들었던
앵두는 이모의 이기적인 고집으로
맘에도 없는 사람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놈의 조금의 재산 때문에 사위덕 좀 보려고
키도 작고 마음도 작은 신랑과 억지로 결혼해서
아들을 둘 낳았지만 역시나 살아가며 자기 삶이 아니라 판단하고
가족들을 피해서 깊은 산속 절에서 숨어살며
더는 결혼생활 지속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앵두를
이모와 내 어머님이 찾아가서 별 수모를 다 주며
가족에게 돌아가길 종용했지만 끝까지 항거하던 그녀....

그 후 다른 사랑을 만나 잘살고 있다고 이종사촌들에게서
간간히 소식을 접할수 있었던 앵두는
그 수모가 너무도 가슴에 깊숙히 각인되어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아니 절대로 안 잊겠다고 눈물짓습니다.
지금도 앵두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앵두의 이모인 내 어머니는
정말 용서할 수 없어 보고 싶진 않다는 군요.

“이젠 그만 용서하고 이모도 얼마 살지 못하니 한번 들려라..”
“그때야 이모가 어떻게든 애들과 같이 살라고 그리 네 희생을 종용했겠지..“
“엄마나 이모세대 생은 싫어도 자식 때문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니...“
조용히 말하는 내 앞에서 소주한잔 툭 털어 입에 넣으며
다시 또 그렁그렁 해지는 앵두...

“오빠를 내가 얼마나 좋아 한줄 알지?
정말 친척이 아니었으면 어떤 여자한테도 안 보내고
내가 오빠 사랑하며 인생 책임지며 결혼하고 살고 싶었어...“
“그런데 가끔 힘들 때면 오빠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삶이 허무해 지는 거야...”
“오빠 정말 사랑했어....”
눈물이 뚝뚝뚝 이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얘는 애들 들으면 어쩔려구..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어..”
“어때? 오빠를 사랑하는 감정이야 여동생들은 다 있는 것 아니야?”
하며 눈물 속에 배시시 웃습니다.

“오빠 말은 잘 들었던 나 이니까 싫어도 이모 보러 갈게..”
“사실 마음이 이렇게 무너질까봐 오빠한테 연락을 끊었던 거였는데..“
슬그머니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해 옵니다.
괜시리 소주잔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술을 마십니다.
그러나 나오는 눈물은 주체 할 수 없어 슬쩍 손으로 훔쳐 냅니다.

장지에 갔다가 저녘 늦게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앵두의 안부를 묻습니다.
“어때요? 잘살고 있데요? 여전히 그렇게 이뻐요?”
나는 한마디 심드렁하게 대꾸 합니다...
“앵두니까!!”

창밖엔 그때 봤던 앵두의 눈물같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군요.
그리도 꿈 많고 이뻤던 앵두 아가씨..
어른들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힘들고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앵두 아줌마...
이제는 늦게나마 자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앵두...
나와의 유년시절이 조금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앵두의 남은 생의 하루하루들이 지루하지 않고
힘들었던 지난날의 보상인양 행복하게 살기를
오빠는 마음 깊숙이 에서부터 주님께 기도해 본단다..

‘이세상에 스스로 계신 주님이여 앵두에게 더 이상의 시련은 주지 마시옵소서’
‘그녀가 너무도 힘들어합니다.’
‘더 이상의 행복보다 더 이상의 시련은 없게 하소서’

앵두야~ 남은 생은 어린 딸과 사랑하는 이와 즐겁고 행복하게 살거라..

**상사화**

蒼靄/ 최 평균

안에서만
휘감아 맴돌며
사무치는 내님이시여
다가 갈수 없어 가슴은 시리고
님의 그림자 흘려보기가
너무도 애닯고 가슴 아립니다.

살아서 몰래
훔쳐보고 가슴 도려내며
밤새 베갯잇 적시느니
차라리 이 몸 스러져서
노오란 떡잎 가만히 내밀고
내님 지나는 길목 언저리
돌담 밑에 숨어 피어
아침 저녘 고운님을 바라보는
하얗게 빛바랜 상사화 되렵니다.

그러다
내님 나를 밟아서
이 몸이 다시 진다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나는 다시 꽃대 세워
내님 모습에 맘껏 취하렵니다.

어느 날
내님의 옷깃에 이는
바람 한점이라도
잠시 내게 머물러 준다면
나는 작은 꽃잎 매무새 정갈히 하고
하얀 얼굴로 님을 향해
밝은 미소를 살짝 보내렵니다

(그녀의 행복을 빌며 오빠가)

법을 바꿔서라도

어떤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