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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2-09-02 09:47
ㆍIP: 112.xxx.120
폰섹으로 만난 새댁
폰섹으로 만난 새댁 / 임정수





"여보세요?"
"오빠~나 지금 흥분했어."
한마디만 척 들어봐도 분명 장난전화임을 알 수 있다.

"뭐? 나보고 어쩌라고?"
"어서...어서..."
"어서...뭐?"

설마 착신전화는 아니겠지?
장난전화로 요금을 올리는 건 아닌 것 같고...그렇다면 이것이 말로만 듣던 폰섹??

"아앙~오빠...미치겠어..."
분명 중고생 정도쯤 되는 앳된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스무살 전후로 생각되어 지는데 개인적으론 이십대 초반쯤 되는 목소리였다.

"아흑..오빠...나지금 뭐하는지 알아?"
'쳇, 내가 알게 뭐야...'

장단을 맞춰주었더니 이젠 더욱 노골적으로 나온다.

더이상 들어봤자 별로 득될게 없겠다 싶어 그냥 끊었더니 한참 후에 다시 걸려왔다.
이런 전화를 수없이 듣다 보니 한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은 저마다 특이한 엑센트의 높낮이를 지니고 있다.
인물이야 아직 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사람에 대한 뚜렷한 개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날 바람도 쐴겸 엠파이어 호텔에 쇼핑을 갔는데 그곳에서 장난전화의 주인공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삼층으로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에 위를 올려다 보니 바로 내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응, 알았어...전화번호? 잠깐만..."
전화번호라니 이번엔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일까?

분명 얼마전에 장난전화를 걸어온 그여자의 목소리인데...
아니면 어떡하지?

속으로 오만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그녀가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소릴 들었다.

"불러줄께, 잘적어...01* - *** - ..."
'그다음 번호는 보나마나 이칠육공일거야' 이렇게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큰소리로
"이칠육공"이라고 해버렸다.
그것도 그녀와 거의 동시에 한 말이다.

우린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이상하다싶어 뒤를 돌아보며 내려다 보았고 나는 올려다 보며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어..어..."

놀라고 당황한 그녀는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또한 놀라긴 마찬가지...

길을 가다 적어도 두어번은 마주쳤던 적이 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젖먹이 어린 애가 하나 정도는 있는 걸로 아는데...

언젠가 한,두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가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그녀 역시 나를 본 적이 있기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서로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이러쿵 저러쿵 긴말을 한들 뭐할까.

그녀 앞쪽엔 사람이 없어도 내 뒤쪽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기에
일부러 소리내어 말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우린 서로를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겉으론 웃으면서도 머리속엔 정신없이 그녀를 분석하며 정체파악에 하느라
나의 두눈이 핑핑 돌아버릴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빨라졌다.

아무리 보아도 이십대 초반정도.
약간 미인형에다 호리호리 하면서도 마르지 않은 날씬한 몸매였다.

전화상의 목소리로 봐선 외형적인 성격에다 활동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말상대가 없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중인격적인 면도 조금은 있는 것 같고...

암튼, 아주 짧은 순간에 그녀에 대해 많은 걸 파악했다.
물론 나혼자서 괜히 머릴 굴려본 것이지만...

"아이~오빠...놀랬잖아.."

조금은 무안했던지 내 뒤의 사람들을 인식하면서 우리가 전부터 친했던 사이처럼
팔짱을 끼며 안기는게 아닌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은 생각도 들긴 들었는데 그 새댁을 생각하니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마음같아선 한마디 "어...아지매 니 누군교?" 하면서 톡 쏘아부치고 싶었지만 말이다.

알고보니 이사 온지 얼마되질 않은데다 비슷한 또래가 없어서 얘기할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한두번 장난전화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여자들은 생리때만 되면 쇼핑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도둑질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새댁은 그런 건 없는데 한두번 장난 전화를 하다보니 거기에 맛이 들려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건 너무 오래 방치해두면 큰병이 생길 수 있으니 앞으론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대신에 장난전화가 하고싶을 때면 조용히 만나서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다.
다른건 아무것도 안하고 손만 꼭 잡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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