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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상훈
ㆍ작성일	2019-05-03 20:41

ㆍIP: 220.xxx.168

화두, 그 빌어먹을

김상훈

연초록빛 눌눌한 하늘, 바람 한 쌍 시비가 멎자 꽃비가 내렸다. 하늘 갠 날 눈부신 변이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옥란(玉蘭) 가지에 앉아 잰걸음 잣 디디며 귀 따갑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꾀꼬리. 그 소리는 투박한 원시성을 감추지 못하고 수려한 우관(羽冠)이 떨리도록 아침 강 노 저어 가는 피 울음이었다. 그때쯤이면 필시 마당 어귀에 쌓인 꽃잎을 쓸어내라는 큰 스님 당부도 까맣게 잊은 채 아침 식곤증으로 어디선가 입 달싹거리며 졸고 있을 동자승이 떠올랐다.

하루 중 절반은 분명히 눈부신 낮이건만 달포를 암자에 머물면서 이상하게 나는 달빛 없는 밤과 새벽만 무수히 보았다. 아침에 잠시 마당 어귀에 내린 꽃비를 보곤 아침 공양도 거른 채 곧바로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부신 낮을 볼 수 없었던 이유였다. 어제의 희로애락은 거짓이고 오늘의 희로애락은 진실이네. 어째서 그런가. 절집에서 공양 보살로 있기엔 너무 앳된 공양주를 보고 계속 의문을 품었던 것처럼 어느 날 새벽 큰 스님으로부터 이런 화두를 받곤 머리가 지끈거렸다.

빌어먹을, 대체 그 화두랑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산하는 날까지 그 화두는 종내 풀리지 않았고 내 배낭 속엔 앳된 공양주가 넣어준 누룽지가 들어 있었다. 하산길에 그동안 수없이 보았던 새벽을 떠올리면서 새벽은 확실히 백발 선승이 학이 되어 날아오를 때 떨어뜨리고 간 쪽빛 사리(舍利)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아주 까마득하게 젊었던 시절, 어느 암자에 잠시 머물면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이 됐던 화두였다. 그 화두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 벌목 당한 기억 사이로 -

정찬열

2019-05-06 20:52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벽란 분과 위원장님~~
계속되는 연휴 잘보내셨는지요

기억에 희미한 젊은 날의 산사에 머물렀던
시간의 내공깊은 사안에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때 풀리지 않은 화두에 넘 신겨 쓰시지 마세요
오늘의 현실은 두둥글게 겹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귀감에글 잘 보았습니다.


김상훈	예전에 보신 글이겠지만 계절과 맞아서 다시 한 번 재방송해 봤습니다. 어쨌거나 그 화두로 지금까지 골머리를 앓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진짜 그게 무슨 뜻일까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일착으로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5/7 12:43

김상화

2019-05-07 05:48

`김상훈`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반갑습니다.
일찍 방문해 댓글을 달지 못했네요
내 생활이란 산에 다녀와서 수필 한 편 쓰는게 고작인데
무엇이 그리 바쁘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핑계가 아닐는지요
과거를 잊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머릿속에
간직하고 계시나 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무슨 화두인지는 몰라도
장미꽃 향에 담아 날려 보내소


김상훈	누가 그러더군요. 바쁜 척이라도 해야 사는 것 같다고. ㅎㅎ 저도 무척 바쁜 척 하는 사람입니다. 바쁜 척과 잘난 척은 전혀 다른 개념이니 아무리 바쁜 척해도 밉지는 않겠죠. 저는 루스 작가님 그 건재함이 자랑스럽습니다. 늘 그렇게 바쁘게 보내세요.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5/7 12:46

장춘희

2019-05-09 19:04

어제는 흘러간 물이라서 붙잡을 수 없고
고양주보살이 선생님께 넣어준 누룽지가
오늘인가 봅니다.

스님들이 주는 화두가 의외로
깊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주는 화두와 받는 답이 틀린들
무슨 대수일라구요.
건강하십시요.


김상훈	그 화두를 지금까지 생각할 리는 만무지요. 그러나 더러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ㅎㅎ 풀어보는 재미랄까요? 바쁘신 거 같은데 잊지 않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10 02:27

김종덕

2019-05-10 17:52

김상훈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참 그 놈의 화두, 풀리면 화두가 아닐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왜 씨름을 해야 하는지도 그 아픈 골머리도 지금 사는 현실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상훈	꼭 풀어야 할 숙제나 과제도 아닌데 요상한 말 던지는 스님들이 더러 요상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어딘가를 쿡 찌르는 듯한 그러면서도 정체를 알 수가 없는...... 다녀가심에 감사드립니다.	5/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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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영합니다	4	admin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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