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정숙
ㆍ작성일	2013-12-16 11:45

ㆍIP: 59.xxx.127

한 통의 편지로 매일매일을 살고 싶다.

한 통의 편지로 매일매일을 살고 싶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였을 때는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노트를 마련해 그곳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며 돌려보기도 하고,
나 혼자 볼 수 있는 노트를 만들어 은밀한 이야기나 어느 머슴애가 참 괜찮다는 이야기,
누가 미워죽겠는데 마음이 여려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적어놓은 이야기,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노래 가사들이나, 어느 소설가나 시인들의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을 적어놓기도 했던 그 노트 중에 한 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온갖 상상으로 또는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들로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필로 써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절실하게
좋아해 보지도 않았는데 그 감정들을 어떻게 알고 느낌을 살리면서 글을 써주었을까 싶다.

또다시 내게 그렇게 쓰라 하면 절대로 그때처럼 다시 쓰지는 못할 거 같다.
오글거리고 온몸이 소름 끼치는데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써주었는지 모르겠다.
한번은 웃지 못할 촌극이 있었는데, 학교 다녀와서 나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방에 엎드려 누워서,
예쁜 편지에 짝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편지를 쓰고 있는데,
다섯 살 차이 났던 막내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방으로 들어온 줄도 모르고
편지지에 쓴 내용이 “무척 좋아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데,
편지지를 덥석 빼앗아 가더니
“너 따라 나와 봐”하면서 집 뒤쪽으로 데리고 가서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작대기 하나를 들고 와서는 전후 사정 물어보지도 않고,
나의 각선미가 쭉쭉 뻗은 다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다.

내 다리가 그때만 해도 자타가 인정하는
요즘 아이들 말처럼 쭉쭉 빵빵 인데다가 피부까지 뽀얀 다리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인해 줄 방법이 없으니 아쉽지만,
아무튼 너무 억울해서 소리 지르고 왜 때리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왜 때리느냐고 엉엉 울면서 소리 지르는데, 내가 너무 울면서 소리 지르니까
오빠도 이상했는지 그때야 상황을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친구들이 연애편지를 써달라 해서 써주고 있다 했더니,
어이가 없는지 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쓰냐면서 훈계 아닌 훈계를 듣고는
다시는 그런 부탁 받아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었다.
사실 오빠는 막내인 나를 챙기기 위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나눠주던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어린 내게 갖다 주곤 했었다.

오빠도 배가 고팠을 텐데 어린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친구들한테
뺏길뻔한 일도 있었는데 동생 생각해서 끝까지 지키고 집으로 가져와
동생이 좋아하면서 받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챙기던 그 어린 동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편지에 보고 싶다느니, 그립다느니, 잠을 못 잤다느니 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으니 많이 놀랐렀던 거 같다.

그렇게 학교 다닐 때 대필해 주던 연애편지들과 성인이 되어
연애하면서 우표도 붙이지 않은 편지를 써서 건네주기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 외엔 예쁜 내용이 담긴 편지를 언제 써보았을까?
간혹 딸아이가 예쁘고 독특한 편지지와 봉투를 사오면
나도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다.

소녀였을 때는 망설임 없이 잘 써내려 갔는데 어쩌면 이렇게 막막하게 생각이 안 날까 싶다.
더군다나 지금은 이렇게 각종 메시지로 소통할 수 있고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로 인해서 정작 편지에는 써야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누군가 대상을 정해놓고 쓰려 하면 이미 수다를
다 떨었고 메시지로 주고받았기 때문에 쓸 내용이 막막하기만 하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혹시 내게 예쁜 편지를 손 글씨로 써서 보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 글씨의 편지를 내 생각하면서 사랑과 정이 듬뿍 들어간
편지를 받는다는 건 행복이고 기쁨이 두 배가 아닐까 거기다 가슴이 또 얼마나 설렐까.

예쁜 편지와 봉투를 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볼까 그 사람이 받고 좋아서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상상을 하면서, 손 글씨로 쓴 편지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 날인 도장이 찍힌 편지를 그리워하는 나 자신에게라도 옛 추억으로 돌아가 편지를 써볼까 봐,
아직은 남아있는 감수성으로 둔탁한 이야기도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어지러운 이야기도 아닌
순수한 사랑과 누군가에게 하지 못했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로 편지를 써볼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편지를 받아보고 싶지 않으세요?
몇 마디라도 적힌 예쁜 편지를 써서 한 지붕에 사는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운 사람, 미안한 사람, 오해로 인해 만나지 않는 사람,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나 엽서를 보내면 아마도 받는 사람은
어떤 서운한 감정이 있는 사람이 받았다면 풀리지 않을까,

우리 편지를 써서 보내보자 꼭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 날인 도장이 찍힌 편지를.
어때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죠?
편지란 그렇게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을 주기도 하고
기다리는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이 판지는
요즘 시절에는 옛이야기가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주응규 2013-12-17 09:18	곱게 내리신 글향에 추워를 녹여봅니다 감사합니다 연말 몸과 마음이 바빠집니다 건강하시고 알찬 마무리 하십시요 언제나 행운이 함께하시고 주옥같은 글 많이 내리십시요 올 한해 고마웠습니다 새해에도 많은 사랑 부탁합니다^^

박정숙 2013-12-17 19:31	《Re》주응규 님 ,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두달의 마지막 달... 올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이맘때면 더 가슴이 시려오기도 하더라구요... 그 시린 가슴 이렇게 따뜻함으로 이끌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사랑도 여행이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