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순간

  사람마다 인생의 커다란 고비를 한두 번은 겪게 되지만, 나의 경우는 임신과 출산을 즈음하여 어려움이 닥쳐왔던 것 같다. 심신의 고통을 극복했던 서른 중반 무렵의 이야기는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의 순간이기도 하기에 소중한 의미를 두고 기록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대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나는 딸 하나만 잘 키우자는 주의로 살고 있었는데, 딸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매일 동생을 낳아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런데 석 달쯤 들어섰을까 좌측 서혜부에 탈장이 되었다. 처음엔 콩알만 했던 구멍이 태아가 커갈수록 주먹만 해져서 일어나 몇 걸음 내딛기만 하면 장기들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외출이 불가능했고, 나중에는 태아가 위험하다고 해서 직장에도 병가를 내고 아예 누워 지냈다.

  다행히 출산하자 탈장 된 부위는 감쪽같이 수축했으나, 이미 체력은 고갈되어 근력이 없어졌다. 나는 건강을 회복해야겠다고 맘먹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 매일 한 시간 근린공원을 산책했다. 얼마후 체력이 향상되자 옥션에서 1킬로 짜리 모래주머니를 두 개 구입해서 양쪽 발목에 차고 조금 빨리 걷기 시작했고, 곧 인터넷을 뒤져서 근방의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마라톤이라는 다이나믹한 운동을 하는 스포츠맨들은 규율이 엄격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육상부 회원들은 자유롭고 유연하게 연습하였다. 모여서 인사하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뛰기 시작하면 자기의 능력에 맞게 5킬로든 25킬로든, 혼자든 무리지어서든 그날 컨디션 따라 달렸다. 신입회원은 달리기에 필요한 자세나 호흡법 등을 코치하며 고참들이 함께 뛰어주었다. 잇속이 관련된 동호회가 아니어서 경쟁심이나 시기와 알력이 크게 개입되지 않고, 뛰고 난 피로를 간단한 뒤풀이로 해소하면서 친목도 다져 나갔다.

  남편과 함께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바쁜 남편은 규칙적인 연습에 자주 빠져서 일요일 새벽마다 혼자 회원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처음에는 10분을 제대로 뛰지 못했던 폐활량이 커지면서 20분, 30분 체력을 얻어 갔다. 속도에 대한 조급함을 버리고 반동만 주면서 보폭을 작게 달리니 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서 장시간 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 3킬로는 걸어서 들어왔지만 어느덧 5킬로, 10킬로를 온전히 달리기로 완주하였다.

  한강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장마철에도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철퍽거리는 강변을 뛰었다. 육상부 회원들은 비가 온다고 '하루쯤 쉰다'는 얼렁뚱땅은 있을 수 없었고 칼같이 제시간에 모여 연습에 돌입하였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명이 되어갔다. 어느덧 나는 빗속을 달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국 여인에게만 있다는 홧병, 육아로 인한 우울증이 확 날라가는 엔도르핀 분비는, 일주일에 두 번 뛰는 게 아쉬워서, 창고에 버려뒀던 수동식 런닝머신을 주워다가 잠깐씩이라도 뛰도록 만들었다. 학창시절 체력장 등급이 매번 5급에도 못 미치는 무급이었던 내가 마라톤의 열혈당원이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잠실에서 열리는 중앙일보 국제 하프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한 달 전에 미리 문화일보 통일마라톤 첫 하프에 도전하였는데, 10킬로만 뛰다가 하프를 뛴답시고  쿠숀 좋고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신었다. 마라톤화는 똑같은 사이즈인데 양말이 두꺼워졌으니 완주한 그날 밤 당장 엄지발톱에 통증이 왔고 발톱이 들려졌다. 두 돌짜리 딸애가 뛰다가 질끈 눌러 밟자 겨우 들러붙었던 발톱은 피와 끈끈한 액체로 범벅이어서 쳐다보기도 끔찍스러웠다. 연습은커녕 마라톤화를 신지도 못하였다.

  중앙일보 하프 마라톤대회 날짜가 다가오자 외부훈련은 안 했지만, 나의 또 다른 운동 무기인 실내자전거를 베란다에서 꺼내다 매일 20분씩 탔다. 그런데 이게 요상하게도 제자리에서 페달만 밟는 것인데도 폐활량이 늘어나면서 땀이 많이 흘렀다. 발의 근육도 단련되는 듯했다. 나는 아하, 이것이 크로스 트레이닝이라는 것이로구나! 부상 입은 사람들이 달릴 수 없을 때 자전거를 타서 훈련한다더니, 실내자전거도 실외자전거처럼 효과가 있구나! 즐거운 맘으로 매일 20분씩 실내자전거 위에 올라타 페달을 굴렸다.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는 마라톤화를 신을 수 있었다. 일요 연습에서 모두들 즐겁게 뛰는데 왠지 나는 으슬으슬 오한이 났다. 다들 소매 없는 윗도리에 핫팬츠 육상복이었는데 나만 위아래 긴 옷을 입고도 콧물이 흘렀다. 멀어져 가는 회원들을 아쉽게 쳐다보며 왕복 5킬로쯤 되었을 때 되돌아 뛰었다. 회원들을 기다려 함께 추어탕을 먹고 사우나까지 갔다. 고추장과 다대기를 많이 풀어서 소주와 함께 마셨고, 사우나에서도 몸을 지진다는 표현대로 뜨거운 열기에 내맡김으로써 왔던 감기가 얼른 도망가도록 소원을 빌었다.

  대회를 나흘 앞두고는 애 때문에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았던 수달모임에 뛰어들어 언덕훈련을 했다. 우장산 언덕은 단풍잎의 잔치로 아름다고도 적요했지만, 평지만 뛰던 초짜가 뛰기에는 고통스러운 언덕이었다. 헉헉 숨을 쉬면서 꼬부랑할머니가 되어 고개를 넘었다. 이날은 뒤풀이까지는 어려워서 대강 인사만 하고 와서 애들을 챙겨야 했지만, 엄지발가락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완주는 할 수 있을 거야.....

  대회날 아침 우리 식구들은 늦잠을 잤다. 스트레칭이나 몸풀기에 들어갈 만한 여유가 없이 출발선으로 직행했다. 하프코스는 어디로 이동하라고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몰라 떠돌았고 그러는 동안의 심적인 부담이 컸다. 잔걸음으로 종종 달리기를 함으로써 근육이 풀리도록 애쓸 뿐이었다.

  드디어 하프코스 주자들을 찾아냈는데 셀 수 없이 많았다. 옆에는 구경꾼들도 넘치게 있었다. 나는 통일마라톤 때 2시간 16분대였기 때문에 2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갈 작정이었는데,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 내 자리는 너무 뒤였다. 넷타임이 아니라 건타임이라면 뒤일수록 불리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연습이 미진했는데...... 걱정스러워서 슬금슬금 1시간 40분대 주자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었다. 그러다가 이들이 막 달려서 출발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천천히 달릴 거야, 하면서 맨 구석진 자리로 비켜섰다. 그런데 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새 출발 총성이 울렸던가, 사람들이 벌써 뛰고 있었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숙이고, '내 페이스대로만 달리자, 분위기에 휩싸이면 안 돼, 천천히! 더욱 천천히!' 되뇌면서 달렸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인파가 저쪽 수백 미터 앞 머나먼 지평선에서 개미떼처럼 뛰고 있었다. 그 인파가 넘어가면 또 다른 인파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 뒤에는 몇 명이나 달리고 있을까, 돌아보고 싶었지만 보지 않았다. 왠지 실망할 것 같았다.

  타고난 체력이 건강체가 아닌지라, 상의는 추동용 등산복을, 하의는 츄리닝 바지를 입고 달렸는데, 계속 달려도 몸이 더워지지 않았다. 더 껴입을 걸 그랬나, 며칠 머물렀던 감기 탓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잠실은 반대편 차선에서 차량이 줄줄이 멈춰 서서 우리를 구경하곤 하였다. 시민들도 가만히 서서 쳐다보곤 하였다. 어떤 이들은 손을 흔들거나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불과 오륙 개월 전만 해도 나는 마라토너라면 특별난 폐활량의 소유자들, 독종들만이 하는 스포츠라고 여겼다. 구경꾼들도 나를 그렇게 특별난 존재로 여길지 궁금스러웠다. 미국 대통령 네 명 중 세 명꼴로 뛴다는 마라톤, 오프라 윈프리나 요쉬카 피셔처럼 인생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가들의 스포츠! 처음엔 내가 마침 챙이 넓은 골프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이 안 보이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어느덧 마라톤 주자로서 달리는 내가 자랑스러워 스르르 가슴이 펴졌다.

  먹을 물이 마련된 곳에서는 아주 소량의 물만 입에 채웠다. 식수대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한 무리의 페이스 메이커 군단을 만났다. 천용우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2시간 15분대 페이스 메이커가 헬륨 풍선을 매달고 뛰고 있는데 상당한 무리가 뒤쫓고 있었다. 나는 어, 저 사람들만 따라가면 2시간 15분대에 들어갈 수 있겠군, 하고 바짝 붙었다. 평소 연습 때는 누가 같이 뛰어 준대도 손사래를 치며 내쫓던 나였다. 아마도 육상모임에서는 내가 신참인데다 기록이 꼴찌인지라 고참들이 함께 뛰는 게 미안했지만, 페이스메이커는 비슷한 수준들이라 심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안정감도 잠시, 7.5킬로마다 놓인 스펀지를 챙기려고 버벅거리는 사이 어깨를 겨루었던 2시간 15분대 군단들이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서 뛰어야만 했다. 아직도 몸에는 냉기가 가득했지만 될 수 있으면 쾌적한 상태로 뛰고 싶었던 나머지 매번 스펀지의 물을 듬뿍 짜서 어깨를 적시고 뛰었다. 오한이 났지만 뛰는 열기로 참을만했다.

  페이스 메이커를 놓친 내 시야에 어느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 일색인 하프코스 주로에서 그녀는 중간 길이의 단발을 한 20대쯤으로 뵈는 외모였다. 물론 얼굴은 알 수 없었지만 뛰는 폼이 그랬다. 사뿐사뿐 뛰는 폼이 마라톤 초보는 아닌 듯했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뒤에 붙어서 보폭을 맞춰 뛰었다. 그런데 그녀는 물도 안 먹고 스펀지도 줍지 않았다. 매번 물을 마시고 스펀지로 어깨를 축여야 했던 나는 잠시 잠깐 그녀를 놓쳤다가 얼마쯤 달리면 다시 시야로 몰아넣곤 하였다.

  마라톤은 체력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뛰는 것임이 문득문득 깨달아졌다. 때때로 아이, 죽겠어, 헉헉, 힘들어, 하는 탄식이 내 안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으으으, 어어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음이었다. 그녀와의 거리는 더욱 벌어져서 처음의 2미터를 유지하던 것도 허사고 나중에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리가 자꾸 끌렸다.

  이런 내 머리에 옛날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부시시 떠올랐다. <뛰지 말고 걸어라>라는 영국 영화였는데 거기서 남자 주인공은 올림픽 출전주자였다. 어찌나 외모가 핸썸하고 멋진지 출발선에서 총성이 울릴 때만 해도 관객은 그가 마라톤 주자인 줄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총성이 울리고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막 따라갔을 때, 남자주인공은 오리처럼 엉덩이를 씰룩이며 걸어나갔다. 올림픽에 경보대회가 있는 줄도 몰랐던 옛날이라 너무 의외의 포즈에 피식, 웃음이 나왔던 장면이었다. 보통의 영화라면 여주인공이 뇌리에 남는데 그 영화만큼은 남주인공만 기억되도록 만든 클라이맥스였다. 나는 다리를 끌며 뛰다가 경보대회 때 그가 했던 동작을 따라 하였다. 피곤한 내 다리는 뛰나 걸으나 매한가지인 속도였기에 팔을 크게 흔들고 엉덩이를 씰룩이면서 경보 선수처럼 걸었다. 그러다가 컨디션이 회복되면 다리를 벌려 뛰고......

  어느덧 잠실종합운동장의 도로가 나타났다. 조금은 더 힘을 내어 달릴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막상 스퍼트하려니 맘먹은 대로 달려지지가 않았다. 이즈음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아빠를 기다리는 엄마와 꼬맹이, 그냥 선 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욱이 주로가 계속 좁혀지므로 속력을 높일 수가 없었다. 촘촘히 열을 지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드디어 트랙, 우리는 너나없이 달렸지만 스퍼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개가 되는 대로 다리만 옮겨 놓는 듯했다. 나는 얼마 전 이 트랙을 5킬로 주자로서 달렸다. 그때는 죽을 것 같아 신음을 흘리면서 뛰었던 라스트였다. 그런데 지금은 괴롭지 않았다. 몸이 마악 풀려서 편안한 순간이었다. 나는 다리를 조금 빠르게 놀렸다. 속도가 올라갔다. 더 빠르게 앞사람 한 사람, 두 사람을 제치고 나아가는데 바로 앞에 단발머리의 그녀가 뛰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추월하고 그녀 앞의 사람도 앞질렀다. 도착지의 건타임은 2시간 9분대를 가리키고 있었다(넷타임 2시간 7분대). 예상보다 빨랐다. 분의 숫자가 9에서 10으로 넘어갈까 봐 조바심이 난 나는 다리를 더욱 빠르게 놀려서 골인점으로 들어왔다. 성공이었다!

  완주 후 남편과의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잠시 배고픔과 오한의 시간이 길었지만, 추위를 면하려고 차 안에서 먹었던 컵라면은 삼십여 년 내 인생에서 제일로 맛있고 따뜻했던 컵라면이었다!

  이듬해 나는 동아마라톤대회에서 42.195킬로 풀코스를 완주하였다. 풀코스 완주 후 마라톤과의 인연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육아휴직이 끝나 직장에 복귀했고 여러 가지 일이 산적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질 체력으로 항상 체육교과에는 자신이 없던 내가 사십 대 초반에 학교의 체육부장을 역임하고, 초등학교 교사 체육발표 연구대회에서 서울시 1등급을 한 원동력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의 영광이 내 심장에 각인되었기 때문임을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내 인생에 앞으로 영광의 순간이 또 찾아온다면, 체력보다 강한 것이 정신력임을 일깨워준 마라톤과의 인연 덕분임을 나는 확신한다.